고동완의 미디어 이야기

2007~8 경제위기는 필연적으로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다.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경제의 분석패널이 올 3월 공동주최한 경제학 방법론의 평가와 대안세미나에서 박만섭 고려대 교수는 학문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주류경제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다 보니 위기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그럼에도 이 같은 자성이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고 주장했다.


주류경제학은 신고전주의를 일컫는다. 신고전주의는 개인의 합리적 판단을 통해 시장이 원만히 작동할 것이라 생각한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의 자동적 조정에 대한 신념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난 2007~2008 금융자본의 위기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 경제 난국의 상황에서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대한 기초와 시장의 자동 조정에 대한 기반은 흔들렸다. 경제 실패는 다른 방향의 대안을 요구했다.


주류경제학으로 일컫는 신고전주의 학파 경제학은 경제를 교환 관계로 보고 시장 위주로 많은 부분을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위주의 설명으로는 경제의 모든 것을 대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는 정치적 선택, 개인의 사상, 권력 구조 등 복잡한 정치와 사회, 문화 관계 속 결과에 따른 복합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시장 위주의 경제학뿐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담겨야 경제학이 설명하는 것의 현실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주류 일변도에서 벗어나 혼합 경제학을 태동하도록 하기 위해선 경제학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이에 혼합 경제학에 대한 사회 저변의 인식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후자폐적 경제학 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후자폐적 운동이란 현 경제학을 경제학의 영역만 고집하는 자폐로 여기며, 이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폐적 경제학 운동은 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모색이 됐다. 사실상 위로부터라기 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미 주류로 공고화된 위로부터의 운동이 힘에 붙일 수 있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운동 배경에는 경제학의 단편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동종 다른 학문과 다른 계열 학문 등과의 접촉, 혼합이 필요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후자폐적 운동이 갖는 문제의식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현 경제학이 다른 분야와의 상호 작용에는 극히 소극적인 데다 수학과 통계학적 표현에는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사회적 접근에는 관심과 이해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대표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특정 학문의 집착에 대한 한계성을 인정하고 동종 학문 내 포함 다른 영역의 학문 간 교류가 진전돼야 한다. 둘째, 경제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시키고 추상적인 상황을 지양하며 현실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 수학과 통계 등 과학적 기반의 설명 비율을 일정 부분 낮춘다. 셋째, 시장 위주의 경제학에서 정책과 제도 등 기타 분야를 어우를 수 있는 경제학으로의 재편을 모색한다.


학문 간 교류의 첫발은 교육이다. 우선 뿌려야만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전에 언급한 후자폐적 운동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국의 경제학 교육상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경우 경제학 이수과정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이론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 사고를 배제하거나 방해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인간이란 개념을 이윤극대화만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협소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러한 해결을 위해 미국에선 역사를 고려하고 경험적 토대를 인식하며 학제 간의 대화를 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 후자폐적 운동이 전개됐다. 독일은 어떨까. 경제학은 정형화된 연구를 거부하고, 현실 경제 문제와 가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소득이 삶의 질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럼으로써 경제사와 사상사 등 공부와 연구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례작업과 현실경제 문제를 쟁점화 시키는 교육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이론이 명백히 파산했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회답을 가장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 입장에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내에서 조차 단 하나의 학파로만은 복잡다단한 경제 현상을 결론지을 수 없다. 나아가 경제 위기 이후는 물론이고 정부 지출의 확대 기조 속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 혼합의 관계로 정립됐다. 서로 주고받는 밀접한 관계에 다다른 것이다. 또 인간을 효율성만 추구하는 개체로 상정하기엔 이타심의 행위로 일어나는 일 등에 대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고 양은 숫자로도 가늠하기 어려우며 사고 전체를 효율성과 이익 위주의 추구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특정 학문 고집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타 학문 영역과의 대화 등 외연을 넓혀야 한다. 경제학은 점점 편협해지고 있으며, 경제학의 개혁을 위해선 경제학 내외 비판들이 건설적으로 소통되도록 요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이른바 경제학 제국주의가 문제로 대두된 배경에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이 사회 및 역사와 절연하여 대상을 제한한 데에 있다.


경제학은 어느덧 수학에 기반을 둔 과학적 지식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말았다. 첫째, 경제 현상에 대해 수학적 표현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단순화 과정이 발생하며, 현실성은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행 주류경제학은 수학적 표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경제의 일부분인 인간 생활 역시 숫자로 완전한 현실을 대변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물음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경제학은 가치 판단을 없앤 과학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셋째, 경제학은 정치적 산물이자 논쟁이므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근거다. 즉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과학주의적 접근을 통해 경제학의 현실 설명력이 약화되었다는 문제의식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학주의적 접근이 정교화 되는 대신 현실 적용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경제학이 일반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제들을 밝혀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과학주의적 접근, 수학과 통계학적 기반의 경제학은 살펴본 것처럼 문제 해결의 한계에 봉착한다. 따라서 과학주의적 설명의 비중을 낮추고 이에 보완하는 비중을 늘려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시장 위주의 경제학에서 정부 정책과 각종 제도 등을 적극 반영한 경제학으로 거듭날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당장 복지 지출이 늘어감에 따라 공공영역이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커져가고 있다. 또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 개혁 논의 등의 제도 결정의 향방에 따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도 여전하다. 경제 무대에서 정부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우리나라의 70~80년대 고도성장 시기를 돌이켜볼 때 정부는 경제 계획과 규제, 개입을 통해 경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한편으로 일전에 언급한 후자폐적 운동 차원에서 기존의 자폐적 경제인을 문화와 역사, 제도 가운데 변화와 연대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과제와 연결된다. 나아가 독일 역사학파의 전통이 후자폐적 경제학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학파의 관점은 제도학파로 이어지며, 사회경제학으로 연결된다. 후자폐적 경제 운동이 역사와 제도적 맥락에서 경제행위를 이해하는 학문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후자폐적 경제 운동과 맞물려서 경제학의 변화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시장이라는 것이 경계선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정해지는 만큼 어떠한 시장도 완전한 자유시장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문제도 경제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조안 로빈슨은 제2경제학의 위기에서 제1의 위기는 고용수준을 설명할 수 없었던 이론이 붕괴돼 일어났으나, 2위기는 이론이 고용의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설명 불가능한 이론의 지속은 현실과의 괴리 속에 이론이 속한 해당 학문의 위기를 재촉할 것이다. 문제는 학문의 위기뿐 아니라 위기는 곧 생활 영역에까지 파급을 준다는 데 있다. 현 주류경제학이 시장에 너무 큰 초점을 맞추면서 경제생활의 넓은 영역, 부분을 간과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복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결국 경제학의 변화 모색은 위로부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영역에는 투표를 행사하고,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사회적 공론화가 비교적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은 그렇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과학주의적 접근에 따라 경제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대중의 결과로 사회 운동적 공론화가 더딘 측면이 있다는 것도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경제학은 단편성의 추구, 특정 영역의 집착만으로는 자생을 이어나가기가 힘들 수 있다. 변화는 전방위적 공론화가 진행되어야만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변화 논의의 공론의 장을 어떻게 해서 키울 것인지도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공회 (2012), ‘정치경제학 진흥을 위한 국제발의(IIPPE):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재편으로’, 사회경제평론, 34, pp. 245~275.

홍태희 (2007), ‘후자폐적 경제학 운동과 비판적 실재론’, 경제와 사회, 74, pp. 283~318.

Joan Robinson (1972), 경제학의 제2의 위기, 변형윤 편, 청람, 1981, pp. 63~80.

장하준 (201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김희정 옮김, 부키.

김종목, 주류 경제학자들 자성 않고 침묵, 경향신문, 2013512, 23.

김유미, 위기예측·대안도 못내는 경제학자해외사례 의존 경제학 풍토 '쓴소리', 한국경제신문, 2014322, 11.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