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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감한 내용 피하려 연설만... 이 대통령은 누구?
    쓴 기사/기고 2015. 2. 16. 23:26


    [이슈취재] YS정부에서 MB정부까지 네 정권의 소통문제 분석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4240


    [오마이뉴스 고동완 기자]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불통 논란은 정권마다 반복됐다. 소통하기 위해선 대화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되어야 하지만, 어떤 정권은 그 여건을 조성하는 것마저 머뭇거려 불통을 자초했다. 한 해의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하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절차는 생략한 채 미리 준비해 둔 대본만 읽는 대통령도 있었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화두 중 하나는 소통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지난 2년, 민생 현장 등에 직접 가서 터놓고 의견을 들어왔다"라고 강조했다. ·

    그러나 기자회견 직후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관련기사 : 박 대통령 지지율 취임 후 최저치... TK·50대도 이탈) '회견이 좋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40%에 달했다. 그 배경엔 '소통 부족'(14%)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지지도도 35%로 추락했는데, 그 원인으로 '소통 미흡'(19%)이 가장 높았다. 

    특히 문건 파동에 따른 국정개입 의혹을 명쾌히 풀지 못하면서 소통의 통로가 막혔다는 인상을 더욱 크게 각인시켰다. 과거 정권도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민감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해 불통으로 인식되곤 했다. 현안만 달라졌을 뿐, 정권들이 소통을 다루는 방식과 이로 인한 결과는 비슷하게 반복됐다. 

    [YS정부] 민감한 문제 피하려 TV·라디오 연설... KTV 개국 

    김영삼 대통령은 정권 초반부엔 자신있게 국민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신한국'을 강조하며 '역사 바로세우기', '신경제 혁신' 방안 등을 내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위기라는 암운이 나라에 드리워지자 그에 맞춰 소통도 사그라지는 형국을 보였다. 소통의 전제 조건인 '전달'이 점차 원론적인 내용만 되풀이함에 따라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에서 이를 보수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국민이 느끼기는 어려웠다. 

    김 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2년째인 1994년과 다음 해 1995년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집권 4년차인 1996년에는 회견조차 열지 않고, TV·라디오 연설을 통해 준비한 원고만 읽었다. 5·6공 청산작업이 정국을 휩쓸던 때라 민감한 문제에 답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걸 답변하지 않겠다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청와대는 신년 기자회견을 TV·라디오 연설로 대신한 것에 비판이 일자 1997년엔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회견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와 그 내용이 신통치 않아 또 소통 문제가 대두됐다. 보수성향 일간지인 <동아일보>조차 "기자와 일문일답 시간은 어느 대통령 회견 때에 비해 길지 않은 40분 정도"라면서 "그런데도 김 대통령은 몇 차례나 이제 그만하자며 질문을 가로막으려 했다"고 비판했다. 회견에서 밝힌 경제회생 대책은 구체적 실천 방안이 부족한 원론적인 내용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였던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지난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대통령은 오랜 정치 경험에 의한 '감'이 발달한 정치인이므로 국민과의 소통도 본인의 직감으로 했다"라며 "감에 의지하다가 비체계적인 즉흥적 소통으로 흐른 경우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비공식 사조직인 김현철(김 대통령 아들) 비선 라인이 민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소통 창구로 활용,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라며 "그러다가 건강한 비선라인이 김현철씨의 이권 개입으로 변질되면서 김 대통령의 소통 창구가 급격히 붕괴했다"라고 회고했다. 

    한편,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케이블TV 출범을 맞아 정부 시책을 알리는KTV를 공보처 산하에 개국했다. KTV는 "국민과 정부를 잇는 정보 가교"라고 홍보했다. 매체 기술의 한계로 쌍방향은 아니었지만 국민과의 전달 통로가 생긴 데에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케이블TV를 시청하는 국민은 100만도 넘지 못해 그 전달력은 한계가 분명했다. KTV는 노무현 대통령 들어서 '국민과 소통을 위한 매체' 혹은 '정권 홍보를 위한 도구'라는 의견이 갈려 정쟁의 도화선이 됐다. 

    [DJ정부] 외환위기와 '국민과의 대화'... 국정홍보처 부활 

    김대중 대통령의 고민도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이냐'였다. 김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12월은 IMF로 우리나라 경제에 한파가 몰아치던 시기였다. 기업 연쇄 부도와 정리해고로 가정이 무너졌다. 국난을 해결하려면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설득력을 높여야 했고, 기존 틀을 깬 과감한 형식의 소통을 도입해야 했다. 

    당선 직후 김 대통령은 새로운 실험으로서 신년 기자회견이 아닌 '국민과의 대화'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이 TV를 활용해 국민과 직접 대화에 나선 것이다. 이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향후 국정 계획과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를 노동계에 호소하고,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려 했다. 

    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사 대표를 비롯한 각계각층 대표 10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김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 복리 향상에 성의를 다하겠으니 믿고 기회를 달라"라며 국민에게 고통을 분담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민과의 대화'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실험적이었다. 공중파 3사는 방송 전에 김 당선자에게 가장 묻고 싶은 내용을 PC통신과 팩스로 의견 6366건을 공개 접수했다. 또 방청객만 6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자로부터 자유 질의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5개 지역을 중계차로 연결해 지역민과의 대화에도 나섰다.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호응은 높았지만, 지속적인 소통의 구조를 짜는 데는 혼선을 자초했다. 김 대통령은 옛 문화공보부의 '보도지침' 등 언론 통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대선공약에 따라 공보처를 폐지했다. 하지만 취임 1년 3개월 만에 공보처와 유사한 기능을 원상 복구했다. 지난 1999년 국정 홍보가 약화되고, 이것이 국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에 따라 '국정홍보처'를 신설한 것이다. 

    국정홍보처 신설과 '국민과의 대화' 기획에 참여했던 최진 소장은 "국민에게 무언가 알리는 거대한 채널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커다란 공백을 느꼈고, 정책을 효율적으로 알리는 공적인 소통의 기구를 만든 게 국정홍보처였다"라며 "'국민과의 대화'는 국민이 편안히 묻고 답하는, 역대 정권이 벤치마킹할 만한 한국적 소통 모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노무현정부] <국정브리핑> 창간-KTV 강화... '쌍방향' 소통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문제로 시끄럽던 200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대통령이 의사결정을 할 때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과 일치하지 않게 선택해 왔고, 그 선택을 국민들에게 인정받아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균형 있는 선택을 위해 고민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치는 선택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서 '거침'이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우회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국민에게 전달했다. 발전한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국민과의 소통 통로를 넓히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인터넷 매체 <국정브리핑>이다. 쌍방향 소통도 주저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국정브리핑 기사에 댓글로 소통을 시도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전방위적 소통으로, 그전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말의 언급도 많아졌다. 

    국정홍보처에서 발행했던 <국정브리핑>은 취임 첫 해 노 대통령 지시로 창간됐다. <국정브리핑>은 정책·입법 자료를 국민에게 전하는 역할도 하면서, 언론보도가 오보나 왜곡이라고 판단되면 반론과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정홍보처는 <국정브리핑>을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한 대안 매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기존 매체에 맞서 대안매체를 발전시켜야 한다"라며 정부가 의제를 설정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국정 시책을 알리는 방송 KTV의 강화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공무원이 국민과 소통에 더 열의를 가지고 KTV 기획에 참여한다면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공무원이 KTV를 자주 보고 잘 알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국정홍보처와 기획예산처는KTV 활동을 적극 지원하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정권을 위한 홍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국정홍보처와 KTV는 폐지 논란에 휘말렸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 대통령의 소통 방식을 두고 "변호사 출신인 노 대통령은 설득하는 데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대중과 직접적으로 많이 소통했다"라며 "이를 통해 형성한 여론으로 정치권과 공무원 사회를 압박하는 측면이 있었다"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국민을 설득하려 했지, 청취하고 반응하는 게 부족했던 점이 노 대통령 소통에서 한계다"라고 평가했다. 

    [MB정부] '불통' 지적에 '일방향 전달'로 돌파... 라디오연설

    ▲  2006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연 2008년 신년회견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부터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회견을 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임인 노 대통령이 열었던 신년 기자회견 대신에 '연설'만을 고집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불통 정부의 신년 연설"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견을 여러 번 천명했지만, 라디오 연설 도입에 그치는 등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데 머물러 불통 논란을 더욱 키웠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조차 신년회견 대신 연설을 고집한 것을 두고 "일방적으로 읽기만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 취임 3년 차에 <조선일보>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에겐 언론과의 회견을 통해 국민과 소통할 의무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치열한 현안 문답이 오가는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라면서 "직접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진정한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단 간담회를 열었지만,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에 또다시 직면했다. 이 대통령은 개헌과 남북관계 등 민감한 질문이 이어지자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끝내도록 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2010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소통과 설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더 많이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2년 전 촛불집회 때에도 그는 "소통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공보기능을 다루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 초기와 유사했다. 대선 공약에 따라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고, 공보 기능을 문화체육관광부에 통합했다. 하지만 소통 부족 지적이 잇따르자 다시 공보 기능을 강화했다.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13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국민과 소통해야 했지만, 작은 정부를 표방해 국정홍보처도 없고, 아쉬움이 컸다"라며 소통 부재를 인정했다. 청와대는 '촛불집회' 이후 소통 강화를 명분으로 홍보기획관을 신설하고, KTV 예산을 202억 원(2008년)에서 218억 원(2009년)으로 늘렸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집권 첫 해와 그 다음 해는 지지도가 유지돼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데, 3년차부터는 지지도가 떨어지고 레임덕 현상이 벌어진다"라며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는 집권 3년차에도 소통이 부족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라며 "결국 임기 4, 5년차에도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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