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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영 현대화? 70년 전 미군 막사만도 못하다
    쓴 기사/기고 2017. 7. 4. 22:2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8123

     

    [24개월 병영 기록 ②] 공군 훈련소 내무반과 휴일 풍경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도균]

    이전 기사: 병사 봉급인상도 중요하지만 이 광경부터 봐야

    사실, 입단식이 냉랭해진 건 '휴대폰 사건'도 한몫했다. 입대 이튿날, 불시 검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처음에 훈련병들은 훈련이 있다고 전해 듣고 운동장으로 모였다. 그러나 '위장'이었다. 훈련은 없었고 들고 있던 가방을 조교들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내무반에 돌아가 보니 말끔히 정리해놓고 간 이불과 관물함이 엉망진창 되어 있었다. 훈련병들이 밖에서 수색을 받을 동안, 조교들은 관물함의 안쪽까지, 뒤질 수 있는 건 모두 뒤져놨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입대 장병 중 누군가 휴대폰을 이용해 인터넷에다 훈련 사실을 올려 빚어진 일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사는 휴대폰 소지 자체가 불가능한데, 더욱이 훈련소 내무반에 휴대폰을 반입했으니 일을 크게 키워놓은 셈이었다. 적발된 장병은 영창 신세를 졌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이로 인해 대대장은 입단식 훈시에서 휴대폰 반입 사건을 예로 들며 훈련병들에게 실망스럽다는 뉘앙스를 전달했다. 단체 생활이 대개 그렇지만 군에선 한 사람이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다수가 곤란에 처하는 일이 자주 빚어지곤 한다. 휴대폰 사건이 그랬다. 남들에게 피해가 가질 않게 하려면 좋든 싫든 모두가 규율에 행동을 통일시킬 수밖에 없는 게 군대였고, 규율이 어긋나버리면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도 가차 없이 집행하는 게 군대였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순간이었다.

    전투력을 도리어 약화시키는 내무반

     12년도 훈련소 내무반 풍경. 3년이 지난 15년도 입대 당시만 해도 내무반 모습은 저 풍경 그대로였다. 일부 대대는 노후 시설을 뒤로 하고 신축을 통해 내무반이 한결 깨끗해졌지만 기본 구조는 종전 내무반과 유사하다.
    ⓒ 공군 공감



    훈련이 반복되던 가운데, 5월 날씨는 일교차가 크게 느껴졌다. 아침엔 춥다가 오후엔 더웠다. 밤이 되자 이불을 덮지 않으면 한기가 느껴져 감기 걸리기 쉬운 날씨였다. 아침에 점호를 받는 횟수가 늘수록 내무반에 훌쩍이는 훈련병도 덩달아 늘어났다. 감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거기엔 시설의 낙후도 원인을 제공했다.

    훈련소는 한 내무반마다 10명을 훌쩍 상회하는 인원이 들어가서 지낸다(관련 기사: 병사 봉급인상도 중요하지만 이 광경부터 봐야). 몸을 조금만 뒹굴면 바로 옆 사람에 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잔다. 누군가 밤새 기침을 달고 콜록거리면 감기가 퍼지기 쉬운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 환절기까지 겹쳐 훈련병 상당수가 감기를 달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는 메르스 여파로 훈련병들 모두에게 마스크가 지급됐던 터다. 그럼에도 감기의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며칠이 지난 뒤 감기를 떨쳐내도 이내 다른 감기에 전염되기 일쑤였다. 그때 감기가 생애 가장 강했던 것 같다.

    그다음 해 자대에서 맞는 5월은 훈련소와 확연히 달랐다. 생활관에 감기 환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대에선 한 호실마다 5명 내외가 지냈다(5명이 지내는 것도 특수한 경우다. 같은 울타리에 있으면서 다른 부대의 경우 한 내무반에 10명 이상이 지냈다). 각자 쓸 수 있는 1인용 침대와 사물함 가구가 할당됨은 물론,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뒀다. 덕분에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부대낄 염려가 없었다. 질병의 전파력이 한층 감소했음은 물론일 것이다.

    1940년대 미국 병영만도 못했다

    자대에 배속되고 후임, 선임할 거 없이 물어봤다. 훈련소에 감기 환자가 많았느냐고. 입대한 계절에 상관없이, 이구동성으로 유독 훈련소에 감기 환자가 많았다고 했다. 그 배경엔 감기가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내무반의 오래된 구조가 있을 것이다. 장병의 건강과 전투력 유지, 향상을 위해서라도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우리나라 내무반 수준은 1940년대 미국의 병영만도 못한 실정이다. 2차 대전 당시 종교적 신념으로 총 들기를 거부한 어느 한 병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핵소 고지>에선 1942년 미국 훈련소의 병영이 나온다. 널찍한 공간에 전원 일인 침대에다 개인용품을 담는 사물함도 철제형으로 여닫게끔 되어 있다. 이것이 군이 병사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각차이가 아닐까?

     2차 대전을 그린 영화, <핵소 고지>의 미국 훈련소 풍경이다. 70여년 전 모습이지만 병사 전원이 1인 침대를 쓰고 있고 활동 반경도 제법 넓다.
    ⓒ 영화 <핵소 고지> 스틸컷


     영국군 내무반의 풍경. 우리 군 내무반도 최소 이런 내무반으로 변모해야 하는 거 아닐까?
    ⓒ 팬저의 국방여행


    우리 군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7조 원가량을 들여 생활관 현대화 사업을 완료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도 수십여 명이 한 내무반에 지내는 경우가 태반이고, 주위 입영했거나 전역한 후배,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장판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자는 장병도 수두룩하다. 주한미군에서 시행 중인 2인실엔 못 미치더라도 병사의 건강과 최소한의 사생활(이 부분에 관해서도 나중에 후술할 것이다)을 위해 생활관 현대화에 더욱 진력할 필요가 있다.

    항간엔 시설 개선을 하면 군대가 풀어질 것이란 말을 한다. 어림 턱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군기를 시설에 의존하는가? 훈련할 땐 충실히 하고, 지내는 공간만큼은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옳은 방향 아니겠는가. 군인이라고 해서 열악한 환경에 지내야 한다는 당위도 터무니없고, 시설이 좋아진다고 전투력이 약화됐다는 얘기도 실체가 불분명할 뿐이다.

    휴일에 손 꼽을 좋은 점, '3분 통화'

    군필자라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훈련병들에겐 일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훈련을 실시하진 않지만, 각종 명목으로 훈련병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선 '클린 데이'라고 해서 복도와 창문을 청소하고, '일광 소독'을 위해 동이불과 베개를 바깥에 내놔야 한다. 수백여 명이 동시에 내놓다 보니 나중에 이불과 베개를 찾을라치면 남의 것과 섞이기 일쑤다.

    오후엔 내무반에 비치된 TV로 정훈 수업을 받는다. 정훈 내용은 '위대한 대한민국'과 같은 치적의 내용이다. TV는 정훈 수업 외엔 틀 수도 없고, 설령 조교의 눈을 피해 잠시 틀어도 중앙에서 회선을 막는 바람에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잠시도 누울 수 없다. 내무반에선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눕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드러누웠다간 조교로부터 "군기가 벌써부터 빠졌네"를 들으며 고통스런 기합을 받는 건 당연지사였다. 식후에 밥을 먹고 졸릴 때면 눈치를 보다가 잠시 드러눕는 훈련병도 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군화 발소리가 들릴라치면 공포의 반작용으로 십중팔구는 잽싸게 일어났다.

    5월 25일은 석가탄신일이었으나 '필수 암기 사항'이라고 해서 상관의 관등 성명을 모두 외워야 하는 날이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부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성함에 이르기까지, 관등성명 전부를 숙지하란 명령에 거듭 외워야 했다.

    휴일에 좋은 점은 있었다.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어진 통화 시간은 컴퓨터를 부팅시켜 인터넷을 킨 뒤, 사이트에 로그인하는 시간에 필적할 수준이었다. 오직 3분. 그나마 휴일에만 연락이 가능한데, 이 3분은 통화가 성사되는 데 연결하는 시간도 포함된 것이라 실제 통화 시간은 2분 남짓에 불과했다. 수화기까지 당도하는데도 떠드는 훈련병과 엮여 단체 기합을 받는 등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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