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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소 잔반 처리하면서 "껍질, 뚜껑" 외쳤던 까닭
    쓴 기사/기고 2017. 7. 9. 20:4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29431


    [24개월 병영 기록 ③] 공군 훈련소에서의 '잔반 처리'와 훈련병의 '탈출구'

    [오마이뉴스고동완 기자]

    이전 기사: 병영 현대화? 70년 전 미군 막사만도 못하다

    입대 23일 차, 6월 9일이었을 것이다. 끼니마다 소대가 번갈아가면서 '급양 봉사'를 해야 했다. 말 그대로 병사 식당의 식판, 숟가락을 설거지하고, 쌀이나 부식이 트럭으로 온 게 있으면 창고로 옮기는 일들이었다.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식당이다 보니 설거지도, 옮겨야 할 것들도 무지하게 많았다.

    그 날은 '잔반 처리'로 차출됐다. 식당 일 중 어쩌면 가장 힘겨운 업무일 것이다. 우선 비위가 강해야 한다. 훈련병들이 식판에 남긴 잔반을 통에 털고, 그 식판을 설거지하는 곳에 옮겨준 뒤 통이 가득 차면 잔반을 쌓아두는 창고로 따로 옮겨야 했다. 소대 동기들은 그러한 고역을 일찌감치 알았는지, 설거지 다된 식판을 식당으로 옮기는 것과 같은 쉬운 일을 앞다퉈 하려고 했다.

     훈련병들이 식당에서 배식을 받는 모습.
    ⓒ 공군 공감


    앞치마와 장화를 신고, 잔반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돼 '양심 불량'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일부 훈련병들이 식판에 잔반이 아닌 쓰레기나 숟가락을 놓은 채 식판을 반납하려 했던 것이다. 하필, 당시 나온 메뉴가 비빔밥과 삶은 계란이었다. 부식으론 아이스크림 '설레임'이 나왔다. 계란을 깐 껍질과 설레임 뚜껑을 분류해서 마땅히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 그걸 식판에 둔 채 배식구로 들이밀었던 것이다.

    한두 번은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분류해주면서 넘어가 줬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더는 참지 못하고 간략한 말로 고성을 몇 번 질렀다.

    "껍질, 뚜껑!!"

    몇몇 훈련병은 찔렸는지 내놨던 식판을 도로 회수하고 쓰레기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당혹스러웠던 건 당일 메뉴가 비빔밥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추장과 뭉쳐버린 밥알들이 굳어버려 식판을 세게 털어도 밥알이 떨어져 나가질 않았다는 점이다. 끝내 떨어지지 않는 밥알들은 직접 떼야 했다. 그나마 매너 있는 몇몇 훈련병들은 국에다 잔반을 한데 모아 밥알이 매끄럽게 털어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끝내 다 먹을 수 없었던 설레임의 추억

    그동안 식판을 배식구에 내놓을 때면 국에다 잔반을 모으지 않았던 점을 깊이 반성해야만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잘 몰랐다. 받은 음식은 싹싹 비우고, 웬만해선 잔반을 남기려고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군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급식
    ⓒ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꽉 찬 잔반 통을 창고로 옮기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가득한 잔반 통을 들어 올려 창고 바구니에 쏟아부어야 했다. 잔반통이 무겁다 보니 들어 올리는데도 힘이 부쳐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여러 잔반이 뒤섞여 창고에서 풍기는 냄새는 아주 잠깐만 숨을 내쉬어도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이미 잔반들이 널브러진 창고의 광경부터 시선을 아득하게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고서야 설레임을 먹을 수 있었다. 차출로 인해 시간은 별로 없고, 식사는 빠르게 해야 해서 아이스크림을 한가롭게 물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차출된 병사 것들은 일 끝나고 먹으려고 냉장고에 따로 보관해놨는데 꽁꽁 언 상태였다. 그런데 2분 만에 먹어 치워야 했다. 차출되지 않은 병사야 식사한 뒤 막간을 이용해서 조금 쉬다가 훈련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지만, 차출된 병사는 일이 끝나고 나면 다음 훈련 시간이 임박해 바로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단단하게 언 아이스크림을 무슨 수로 2분 만에 먹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이로 으깨면 먹을 수 있는 막대형, 쭈쭈바형도 아니고 힘껏 눌러야 나오는 팩에 담긴 아이스크림이니 불가능했다. 주먹으로 연발 팩을 쳐서 언 내용물을 으깨더라도 좁은 구멍으론 찔끔 나왔다.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을 바깥으로 반출할 수도 없었다.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 맛보기 힘든 훈련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안간힘 쓰다 결국 절반도 먹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만 했다. 사소한 것에 마음을 둔다고, 먹다 두고 가게 된 설레임 때문에 그날 하루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훈련병의 탈출구, '종교'

    휴일에도 훈련병은 이래저래 노곤할 수밖에 없다(관련 기사: 병영 현대화? 70년 전 미군 막사만도 못하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휴일 아니 한 주를 통틀어 그나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종교에 참석할 때였다. 당장 눈앞에 조교가 없어 간섭받을 일, 기합받을 일이 없다.

    입대 5일차쯤 훈련병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으더니 군종 장교들이 종교를 소개했다. 훈련소에선 종교는 오직 불교와 가톨릭, 기독교만 존재하는데, 각 종교는 신병을 대상으로 많은 인원을 끌어들일 수 있으니, 홍보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매달 신병이 대략 천명 이상 입대하니, 매 기수 세례 인원만 수백 명에 달한다.

    여기서 불교는 '마음의 힐링'을 강조하고, 천주교는 1년 다녀야 받을 수 있는 세례를 오직 훈련소에서 3주 만에 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세례 여부에 방점을 찍은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CCM 가수와 같은 초청 인사들이 온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천주교처럼 훈련소 수료 전에 일률적으로 세례를 단행했다.

    이러한 광경은 조기에 믿음을 대량으로 보급하려는 모습인 것 같았는데, 마치 학원이 실속 없는 '단기 속성 코스'를 남발하는 게 연상됐다.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막상 자대에 와서는 교회에 발걸음을 멈추는 장병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훈련소에서의 첫 일요일. 교회에 갔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이곳에선 예외다.  '참호 속엔 무신론자가 없다'고, 훈련소에서 예배 참석은 믿건 안 믿건 강제였다. 무신론자 건, 몰몬교 신자이건 불교, 가톨릭교, 기독교, 세 종교 중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불만도 있을 법 한데 마주한 훈련병들은 종교 참석을 일종의 오아시스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공군 훈련소 교회 예배 모습.
    ⓒ 조용근


    그도 그럴 것이 내무반에 있어봤자 지루한 시간을 달랠 거리도 없으며, 교회의 경우 훈련병들에겐 바깥세상과 마주할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었다. 내무반엔 TV도 볼 수 없고, 인터넷도 없으며, 통화는 휴일에 3분만 가능한 탓에 바깥이 어찌 돌아가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교회는 목사가 설교 시작부에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언급하며 바깥 얘기들을 잠깐 알려줬다. 메르스가 창궐했다는 것도 교회에서 처음 알았다.

    딱 한 번이긴 하지만, 훈련병들의 부식거리도 티 안 나게 챙겨준다. 세례 예배 때 성찬식으로 으레 나오는 카스텔라와 포도즙이 그것이다. 이들 음식은 본래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종교 예식을 위한 성격이 짙다. 그러나 군 교회에선 장병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부식거리 역할도 같이 한다. 훈련소에선 급식이나 훈련을 앞두고 지급되는 간식 외의 모든 음식은 내무반으로 반입할 수 없는 탓이다.

    세례식에서 등장한 카스텔라와 포도즙은 바깥 교회에 비해 5~6배의 양으로 훈련병을 반겼다. 그동안 성찬식에서 카스텔라가 잘게 쪼개져 나온 걸 봐왔던 것과는 무척이나 상반됐다. 제과점에서 파는 것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예배용치곤 큼지막한 카스텔라가 은빛 쟁반에 실려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면 눈이 잠시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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