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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에 보내는 편지인데... "힘들다는 말은 쓰지 마라"
    쓴 기사/기고 2017. 8. 7. 10:56

    [24개월 병영 기록 ④] 소감 하나 받는데 '쥐 잡듯이', 이론 교육은 '설렁설렁'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2586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지현]

    [이전 기사] 훈련소 잔반 처리하면서 "껍질, 뚜껑" 외쳤던 까닭

    훈련소의 맹점은 안 가르쳐도 될 것까지 강압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이다. 사소한 부분은 쥐 잡듯이 집착하지만, 정작 중요한 맥락에선 가벼이 넘어간다.

    29일, 입대 12일 차 무렵, 소대 훈련병들의 훈련 소감을 양식에 받아서 조교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취합한 양식은 조교가 스캔해서 인터넷에 가족이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소감을 받아 가족에게 알린다는 취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것조차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점이다. 조교는 임무를 하달하면서 굳이 안 해도 될 까다로운 주문을 요구했다.

    첫째, 훈련 소감에 훈련병이 '힘들다' 같은 부정적인 내용을 일절 쓰게 하지 말라는 것. 둘째, 소감을 정자로 또박또박 쓰되, 단 한 점, 조그마한 직선이라도 칸을 넘기지 말 것. 셋째, 반드시 펜으로 쓰고 소감을 고치려면 종이를 다시 가져가서 처음부터 쓰라는 것이었다.

    ▲  문제의 '훈련 소감'.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갈무리


    소감받는 것도 참 지난했다

    소대 내무반을 돌아다니며 훈련병들에게 주의사항을 주지해가며 소감을 받았다. 아무리 강조해도 매사 매끄럽게 일이 풀린 적은 없었다. 열댓명 소감을 다 받아놓으면 어느 한 명이 칸을 넘겨 소감을 작성하곤 했다. 그 한 명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칸을 넘기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인색함에 문제가 있겠지. 다시 처음부터 새 종이를 가져와 소감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종이가 비치된 사물함에 가보니 텅 비어있었다. 이 사실을 조교에게 말했더니 혹독함이 뒤따랐다.

    조교가 머리를 앞으로 기울이더니 내가 쓰고 있던 모자챙을 누르며 압박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소감을 받는 임무를 맡았던 다른 소대 훈련병이 모두 호출됐다. 사물함에 왜 종이가 다 떨어져 있느냐며 엎드리게 했다. 조교는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해보라며 압박했다. 말이 그렇지, 곧이곧대로 말을 받아치면 응징이 가해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죄송합니다"밖에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거지만, 임무를 맡은 다른 훈련병도 비슷한 이유로 수정을 해야 해서 서로 종이를 가져갔고 사물함에 남는 종이가 하나도 없게 된 것이었다. 칸에서 삐죽 나온 게, 종이 떨어진 게 뭐 대수라고, 소감을 무결하게 받는 데 총력을 다하면 군인 정신이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인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중시켜 있던 군인 정신도 달아날 판이었다. 이런 지시가 차곡차곡 쌓여 나도 모르게 몸에 배이다보면 정작 중요한 건 제치고 서식과 같은 틀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이 안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설렁설렁' 실내 교육... 질의응답은 하나로 통했다

    ▲  훈련병들이 점호장으로 뛰어가는 모습.
    ⓒ 공군 공감



    '실내 교육'은 이른바 '꿀'로 통한다. 바깥에서 교육을 받으면 모래 바닥에 구르고 얼차려 받기  일쑤인데, 실내에선 강당에 앉아 그저 교관의 말을 경청하면 되기 때문이다. 응급 처치를 이론으로 교육하던 시간이었다. 교관은 교육을 이어나가는가 싶더니 질의응답을 갑자기 받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농땡이' 시간이 된 셈이다. 정작 중요한 교육 시간은 가벼이 넘어가는 형국이었다.

    훈련병들은 그동안 억누른 표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 다퉈 손을 흔들어대며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훈련소 안에서 교관에게 질문할 거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대개 질문은 뻔했다. 

    "군 생활, 어떻게 해야 편하게 지냅니까?"
    "꿀 보직은 뭡니까?"
    "어느 자대가 좋습니까?"
    "헌병 보직이 헬(지옥)이라는 데 사실입니까? 방공포병이 육군 24개월이라는데 사실입니까?"

    질문이 수렴하는 지점은 명확했다. 어떻게 해야 몸 편히 군 생활을 지낼 수 있는지에 훈련병의 관심이 쏠렸다. 답도 하나로 수렴했는데, 교관의 답은 시시하게 보이면서도 단호했다. 선임이 누구냐에 따라 군 생활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대, 특기 아무리 잘 받아도 사람 잘못 만나면 꽝이란 얘기였다. 

    "자세한 건 여기서 말할 수 없고..."

    대답을 이어가다 교관은 뜬금없이 '군대는 퍼포먼스'라고 했다.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훈련 소감을 작성하는 과정만 봐도 일맥상통한다. 또 군 내부에 병폐가 여전히 잔존하지만, 해결에 나서려고 하기보단 침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부의 시각에선 군대가 질서 정연한 조직으로 비쳐져도 내부는 부조리에 침묵하는 경우가 더러 있고 그만큼 허점도 있다고 했다. 이것에 대해 "자세한 건 여기서 말할 수 없고..."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두루뭉술 넘어가더니 교육은 이것으로 끝맺음했다.

    차차 이야기를 풀겠지만, 사람 잘못 만나면 꽝이란 교관의 말을 이제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사람만큼 중요한 게 자대이고 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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