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쇼핑몰에 도서관 만든 실험, 통했을까?
    쓴 기사/기고 2017. 8. 21. 00:04

    [현장] 인문에다 상업을 더한 '별마당도서관'... "시끄러워 집중 어렵다"는 지적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3097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박정훈]

    ▲  별마당도서관
    ⓒ 고동완


    말마따나 별천지 마당이었다. 움푹 팬 분화구에 반짝반짝 빛나는 세 기둥이 불쑥 솟아있는 듯했고, 그곳엔 수놓은 별처럼 책들이 촘촘하게 박혔다. 어둠은 깔리지 않았지만 별이 발하듯 햇볕의 채광이 그대로 들어왔다. 빛과 빛이 이어지듯이 분절하지 않는 연속성을 드러냈다. 들어서는 데부터 천장엔 두 줄 책장과 꽂힌 책이 죽 늘어져 있었다.

    진풍경에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쥐고 연신 사방을 찍었다. 어떤 이는 고개를 들어 휙 둘러보더니 "뭐라도 읽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며 옆 사람을 붙잡았다. 이곳은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이다. 여기에 세 번째 왔다는 정미현(38·여)씨는 "책과 어우러진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금요일이었던 지난 9일, 평일 오전 치고 사람들이 꽤 붐볐다. 12시가 되더니 직장인들이 몰렸다. 회사가 근처라 점심시간에 이곳을 들렀다는 김아무개(48·남)씨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보고 있다"며 여길 매일 온다고 했다. 구경 온 직장인들은 한 손에 마실 걸 쥐고 둘러보기 바빴다.

    코엑스몰을 인수했던 신세계는 쇼핑몰 한복판에 60억 원을 들여 지난달 별마당도서관을 만들었다. 책으로 사람을 붙잡는 전략은 어느정도 통한 듯했다. 정씨만 해도 "아이랑 같이 오면 한 시간, 혼자 오면 3~4시간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복층 광장에다 도서관 열어

    ▲  별마당도서관
    ⓒ 고동완



    원래 이곳은 복층으로 된 광장이었다. 지하는 파리의 개선문처럼 중심에 광장이 있고 매장들은 방사형으로 뻗었다. 1층은 사람을 맞았다. 외부에서 도심공항터미널과 무역센터로 오갈 수 있게 입구를 두고 에스컬레이터가 지하를 안내했다. 사람들이 붐볐던 여기에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고 책을 넣은 것이다.

    예전이면 여기에 들르지 않을 손님도 오고 있다. 충북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윤혜진(22·여)씨는 "환경 전시회를 보려고 근처에 왔다가 책을 좋아하던 차에 도서관이 생겼다길래 들렀다"고 말했다. 전남에서 출장차 서울에 왔다는 김유라(30·여)씨도 "도서관이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와봤다"고 밝혔다.

    지하와 1층을 잇는 세 기둥의 높이는 13m. 이 높다란 기둥, 1층 기둥 사이를 두고 늘어선 책장, 들어서면서 '별마당'을 두른 책장엔 총 5만 권 가량의 책이 꽂혀있다. 도서 검색대에선 원하는 책을 검색할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즈>, 공공기관의 도서도 갖다 놨다. 지하엔 600여 종의 잡지를 비치해놨고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상설 무대를 꾸려 놨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로 닿는 1층은 탁 트인 시야로 지하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탐방하러 온 중·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책장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요리조리 책을 살폈다. 중랑구 학교에 재학 중인 송희서(15·여)씨는 "독서부 동아리 활동차 책을 살피러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송씨는 드문 '다독인'이었다. 학생이지만 한 달에 책을 10권 이상 읽는다고 말했다. 

    ▲  별마당도서관
    ⓒ 고동완


    양면성을 내포한 도서관

    책을 멀리해왔지만 어느 곳인가 싶어 와봤다는 학생도 있었다. 강남의 한 고교에 재학 중인 이민서(16·여)씨는 "책을 평소 잘 안 읽지만 들러봤다"고 말했다. 이씨는 책장 앞 네모난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강주영(17·남)씨도 "도서관에 안 가본 지 오래됐지만 한 번 와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독서 유무를 가리지 않고 삶에 책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로 태어난 도서관은 '양면성'을 내포한 듯 보였다. 솟은 세 기둥은 인문에 상업을 더했다.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1층 길이 기둥을 관통하면 거기엔 신세계 계열의 편의점과 베이커리점이 들어섰다. 기둥의 바깥은 책 천지를 담는 그릇이었지만 안쪽은 먹을 것과 생필품을 파는 매장이었다. 건너서 책을 살피려면 안쪽을 일부러라도 지나야 했다.

    인문과 상업을 결합해 씀씀이를 유도하는 전략 역시 통한 것 같았다. 관악구에 사는 최영구(50·남)씨는 "코엑스에 다른 일이 있어 들렀다 이곳에 왔다"며 "아이와 친구랑 오면 도서관에 들를 겸 쇼핑이나 외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 들른다는 전영업(60·남)씨도 "책을 보다가 밥 먹을 때 되면 여기서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별마당도서관
    ⓒ 고동완


    "시끄러워 집중이 되질 않아"

    도서관에 대한 호평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침 8시부터 이곳에 왔다는 심아무개(47·남)씨는 "앉아서 책 읽을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아 자리에 앉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다"며 "구경삼아 오는 건 괜찮은데 책 읽기엔 좀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책에 집중할 수 없다는 불평도 나왔다. 개관할 때부터 이곳을 들렀다는 박인정(54·여)씨는 "사람이 많아 번잡스럽다는 느낌이 든다"며 "방학이 되면 구경 오는 사람들로 더 혼잡스러워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시끄러우면 집중이 되지 않아 다른 데서 읽기도 한다"며 "서점에서 책을 읽을 때보다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부천에서 온 진아무개(25·여)씨도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지만 시끄럽긴 하다"고 꼬집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방문객은 "책 읽기도 불편한데, 여긴 도서관이 아니야. 관광지야 관광지"라며 볼멘소리를 내며 일어나기도 했다.

    "집주변 도서관 책이 낡아서 온다"

    그럼에도 책 읽는 사람들이 여기를 들른 건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별마당도서관은 장서 규모 5만 권만 놓고 보면 중소 도서관 정도지만 웬만한 인기작과 신작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집주변 도서관 대신 여기로 온다는 사람이 많았다. 대치동에 사는 조아무개(30대·여)씨는 "주변 도서관의 책들이 낡아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주형주(52·남)씨도 "인근에 있는 도서관은 옛날 책이 다수"라고 아쉬워했다. 들르기 좋은 곳엔 공공 도서관이 없어 이곳에 왔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아무개(53·남)씨는 "여긴 지하철이 닿아 접근하기 쉬운데, 인근 도서관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별마당도서관은 일본의 사가현에 있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모델로 했다. 다케오는 인구가 5만 남짓인 작은 마을이지만 시장이 도서관을 공사하기로 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공공 영역이 발 벗고 나서 도서관에 투자한 것이다. 별마당도서관과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예를 비춰보면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이 처한 인프라와 투자 부족의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  별마당도서관
    ⓒ 고동완


    스마트폰 > 종이책 > 전자책

    도서관에서 만나본 20여 명 중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을 접한다는 비율은 비등했다. 이들에게서 '독서 패턴'을 짚어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는 왔지만 책을 소장하려고 서점에 간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근처 병원에 들렀다 짬이 나서 들렀다는 오소명(26·남)씨는 "책을 사보려고 서점에 간다"고 밝혔다. 홍예율(18·여)씨도 "도서관에선 책을 소장할 수 없으니 서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자책을 이용한다는 사람은 이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종이책의 위력이 굳건한 듯 보였다. 소설과 에세이 같은 인문학 서적을 주로 본다고 했다. 독서 빈도는 다양했지만 절반가량은 1주일에 1권 정도는 읽는다고 했다.

    그러나 도서관엔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곁에 책은 두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한 줄에 열다섯 자리가 있으면 정작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세네 명에 불과했다. 책의 보고에서조차 스마트폰이 책을 대신하는 모습을 여럿 마주해야 했다. 책을 접할 곳은 늘었지만 책을 멀리한 이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곁에 두게 할 수 있을지 숙제가 남겨지는 듯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