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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버리는 훈련소 '동기부여'
    쓴 기사/기고 2017. 8. 21. 00:04

    [24개월 병영 기록 ⑤] '교육'과 정면 배치된 훈련소 기합... 단결력 무너뜨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4594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준수]

    [이전 기사] 가족에 보내는 편지인데... "힘들다는 말은 쓰지 마라"

    훈련소에서 행해지는 기합은 '동기부여', 즉 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를 막상 뜯어보면 교육에 정녕 부합은 하는 건지 의문이 들곤 했다. 무조건적 복종이 군대를 돌아가게 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인 양 가르치는 건 둘째 치고, 기합의 결과를 놓고 보면 단결력 역시 저해했기 때문이다.

    기합을 받고 나면 말 못 할 사정을 제쳐버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게 옳은 것인지, 특정인의 잘못을 단체로 엮어버려 자괴감을 유발해 '팀플레이'를 훼손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뒤따르곤 했다. 자대에선 '신고감'이자 금지된 이런 교육이 훈련소에서만 통용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6월 4일, 입대 18일차였다. 점심을 먹고 내무반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무더운 더위에 나른함이 찾아왔다. 훈련병들은 방심을 하고 모처럼 잡담을 꽃피웠다. 타이밍도 무심하지, 복도를 순찰하던 조교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조교가 그걸 보고 그냥 넘어갈리 없었다. 엎드리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사람 치지 않으려고 한 게 화를 불러


    ▲  필자가 훈련 받던 모습.
    ⓒ 기본군사훈련단 갈무리



    내무반의 그 비좁은, 침상 아래 펼쳐진 복도에서 수십여 명이 점대칭을 이루며 엎드렸다. 그러고 난 뒤 조교는 하나 구령 하면 올라오라고 했다. 엎드리고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순간 엎드린 뒤 숙여진 고개로 말끄러미 보니 지금 자세로 기합을 받았다간 뒷사람의 손을 군화로 칠 것 같았다. 

    기합을 받는 것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데, 비좁은 데서 사람을 안 치려면 뒤를 예의주시해야 했다. 문가 쪽이 내 자리였던 터라 앞에 조교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엔 기합을 받는 이가 있었다. 몸을 앞쪽으로 다가가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상황.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서 안쪽으로 오므렸다. 조교 눈에 알짤 없었다. 

    "너 뭐야! 편히 하려고 다리 구부린 거지?"

    "뒤에 훈련병이…."라고 말하던 찰나, 조교는 말문을 막아버렸다.

    "너 혼자 일어서! 나머진 엎드려, 일어서, 엎드려, 일어서, 엎드려…."
    "이 모습을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냐?"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뿐

    종전 대답으로 다시 말을 이어가려는데, 말을 또 한 번 끊어버린 조교는 기합 받는 이들을 더 다그쳤다. 말대답하지 말고 그저 "죄송하다"라고 말하란 신호인 듯 했다. 난 서 있는 상태에서 기합 받는 이들을 바라만 봐야 했고, 나머지 이들은 내가 어찌 대답할 것인가를 주시했다.

    결국 기합이 진행되는 걸 막으려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소대가 집합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 일은 마무리됐지만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조교의 시선에선 다리 구부린 게 마뜩찮았을 것이다. 훈련병이 조교에게 답을 잠시라도 하려고 했다는 것도 일개 훈련병이 군기를 흩뜨리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뒷사람이 다칠까 봐 다리를 구부린 사정조차 용인하려고 하지도 않고, 다른 이들이 기합을 받는 걸 미끼로 삼아버려 정해진 답을 강요해버리는 게, 교육이란 미명하에 일어나야 할 일이었을까?

    이건 전조에 불과했다. 6일 뒤,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과 장소는 같았다. 점심을 먹은 뒤 내무반에서 대기하며, 전투화를 신은 채 장판 위에 걸쳐 앉아있었다. 무심결에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로 올려놨다. 마침 조교가 들이닥쳤다. 점심시간이었지만 학습 기억이 있어 내무반은 고요했다.

    ▲  구보 뛰는 훈련병들.
    ⓒ 공군 공감


    무용지물이 된 나의 시도

    조교는 "동작 그만"이라고 외치더니 내무반 동기들에게 내가 했던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침묵이 흐르고 훈련병들은 조교의 지시에 따랐다. 아무 말도 못하고 이색 광경을 멀뚱멀뚱 봐야 했다. 그렇다고 소대 훈련병이 그 자세를 취하는 걸 마냥 볼 수만은 없었다.

    "제가 동기부여 받도록 하겠습니다."
    "너가 다른 애들 동기부여 받는 몫, 전부 받을 수 있겠어?"

    일단 "예"라고 하고 엎드렸다. 엎드리고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얼마 안 가고 훈련으로 쌓아진 근육의 뭉침이 몸을 뒤흔들어 버렸다. 팔이 무너지고 풀썩 뻗어버렸다. 이 모습을 놓치지 않은 조교는 소대 훈련병에게 기합을 주문했다. 내 잘못으로 다른 이들이 기합 받는 걸 막으려고 했던 시도는 무용지물이 됐다. 

    단결력을 떨어뜨린 기합

    잠시나마 발을 다리에 올려놓은 걸 곁에 있던 사람이라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합 받은 이들이 무슨 잘못일까. 그 자세를 행한 이만 기합을 줘야 하지 않았을까? 굳이 단체로 기합을 줘서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조교는 매번 실수한 장병만 기합을 주는 게 아니라 내무반에 속한 소대 전원에게 기합을 줬다. 그런데 내무반에선 '관용'이란 걸 찾기가 어려웠다.  소대 동기들은 '괜찮다'면서 위안을 주지만, 뒷모습을 보면 누군가는 실수한 동기에게 욕을 진창 해대곤 했다. 실수를 해서 단체 기합을 받을 경우, 같은 호실의 동기들에게 연실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경솔한 행동이 자칫 다수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건 굳이 이런 방식을 안 쓰더라도 지난한 훈련 과정을 통해 체득하기 마련이었다. 조교도 훈련병 생활을 거쳐 간 병사이기에, 사정을 짐작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고약하게 느껴졌다. 

    나도 이 두 일을 치르고 그 누군가의 입길에 올랐는지 알 수는 없지만, 훈련소에서 행해진 기합의 결과는 대개 이랬다. 훈련소 교육의 목표 중 하나가 단결력과 전투력 향상일진대, 이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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