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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병은 왜 기를 쓰고 훈련을 받으려 했을까
    쓴 기사/기고 2017. 9. 16. 18:55

    [24개월 병영 기록 ⑥] 집총 제식, 총검술, 화생방... 막바지로 치닫는 훈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7427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도균]

    (이전 기사 :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버리는 훈련소 '동기부여')

    자나 깨나 점수가 우리네 인생을 휘감고 있지만, 군에 막 들어온 훈련병에게도 '점수'는 부담이었다. 훈련과 이론을 배우면 평가하고 점수가 부여됐는데, 자대 위치를 그 점수가 정했기 때문이다. 

    훈련병의 지상 과제는 집 가까운 데서 복무하는 거였다. 훈련병이 기를 쓰고 훈련을 받으려는 배경이었다. 부대가 집에서 멀수록 뒷감당해야 할 게 많았던 탓이다. 휴가 일 분이 금쪽같은데, 집을 오가려고 보내는 시간은 어쩌며, 그런 시간이 늘어난다는 건 휴가를 보낼 시간 역시 줄어든다는 걸 뜻했다.

    그런데 훈련도, 공부도 '만능'으로 잘하는 게 어디 쉬운가. 공부하는 거야 문제들을 교관이 미리 찍어주고 답을 외우라는 식의 시험만을 위한 공부에 불과했으니 그렇다 치고, 몸이 둔한 나로선 야외 훈련이 고역이었다. 일곱 살에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려 여러 달을 맹연습했건만 끝끝내 넘어질까 어리숙하게 탔던 건, 바닥을 기는 운동신경의 전조에 불과했다.

    ▲  이동하는 훈련병들.
    ⓒ 공군 공감


    걷기와 달리기가 내 운동의 전부인데

    태어난 뒤로 하는 운동이라곤 걷기와 달리기가 전부인 나에게 훈련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게 했다. 총을 쥐고 각종 자세를 취하는 방법을 망라한 게 '집총 제식'인데, 으레 훈련에 들어가서 기본으로 배우는 이것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당장 몸과 생각이 분리됐다. 손은 제어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총을 쥐고 돌려야 할 때 쥔 손이 정녕 오른손인지, 왼손으로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 헷갈렸다. 손이 그런데 발을 주목할 여력이 없었다. 어렵게 동작을 뗐지만, 발걸음이 느려 박자를 놓쳤다. 팔은 구령과 따로 움직였다. 혼돈은 거듭됐다.

    이건 훈련 중에 기본 축에 속하던 거였다. 더한 훈련이 펼쳐질 것을 예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절로 긴장이 됐다. 이보다 강도가 한참 높았던 건 '총검술'이었다. 대낮 여름에 땡볕을 맹렬히 받으며 총을 둘러메고 모래 바닥을 굴러야 했다. 훈련에 앞서 진을 빼놨던 'PT 체조'는 고통을 배가했다.

    "4의 배수에 맞춰 구령 생략, 40회!"
    "정신 안 차리면 무한 반복한다!"

    정녕 시간만이 답이었던가

    교관의 지시에 훈련병들은 목청껏 구령을 붙이며 체조를 했다. 교관 눈에 동작이 신속하지 않고 목소리가 작으면 체조는 말마따나 무한 반복됐다. 4의 배수를 못 맞춘 훈련병이 나오면 한탄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조건은 엄해졌다. 

    "정신 못 차리지? 60회! 7의 배수 생략!"

    그렇게 몸의 기운은 빠졌는데 이제 타는 목마름으로 모래 바닥을 굴러야 했다. 고통을 무마하려면 '어차피 끝날 것이다'란 생각에 시간만이 답이었다. 그러나 훈련소를 나가기 전이라면 시간은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어 마주한 게 화생방이다.

    그 날이 온 거였다. 입대를 앞두고 훈련이 짐짓 궁금해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훈련병들이 가스를 마시자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정신을 못 차려 하는 걸 봤다. 화생방이 뭐기에 저리도 맥을 못 춘단 말인가. 물음이 가시질 않았다.

    실습 직전, 가스가 찬 건물 문 앞에서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숨을 내쉬고 그냥 들어갔다간 가스를 단숨에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지로 코는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열려 있는 눈은 그럴 수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두 눈이 금세 달아오르더니 눈물이 쏟아지고 코에선 콧물이 주르륵 나왔다. 살갗이 드러난 손등은 빨개지더니 따가웠다. 

    달콤한 가스는 없었다

    '아. 이것이 가스란 거구나... '

    처음으로 경험한 탓일까. 생각이 간결하고도 빠르게 스쳤다. 무의식에 생존 본능으로 방독면을 꺼내 썼다. 숨을 들이마셨다. 지장은 없었다. 다만 얼굴 부위를 감싸 생존을 도모한 것일 뿐, 가스에 노출된 피부는 보호할 수 없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가스의 위력이었다.

    사실, 앞서 실습을 마친 어느 훈련병이 나오더니 가스에 딸기와 바나나 맛이 난다고 목청을 높였다.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역시나 순 거짓말이었다. 가스는 그냥, 지독한 가스였다.

    입대 30일 차가 넘더니 훈련병 식당도 활력을 잃고 고요해졌다. 수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유격, 행군, 4km 달리기 등 훈련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분위기도 어두워져 간 것이다. 훈련병들 표정은 걱정과 피곤이 교차한 것 같았고, 수백여 수저들이 식판과 부딪혀가며 합쳐진 소리가 요란했지만 이 말고는 대개 조용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시간이 흐르는데 훈련소에서 못 나갈 이유는 없었다. 허나 '메르스(MERS)'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 여파가 훈련소에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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