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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가 불편한 사람들... "왜 저 아줌마 보면 화가 나지?"
    쓴 기사/기고 2017. 10. 15. 20:46

    [공연 리뷰] 세월호 엄마가 전하는 '세월호 향한 오해와 편견',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w.aspx?CNTN_CD=A0002340222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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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인자 여그가 우리 동네여. 참으로 바쁜 현대 이웃들의 모습이구먼."

    우리가 살았던, 사는 동네가 나온다. 수다엔 뒤지지 않는 아줌마가 살고, 등굣길에 나서는 고등학생이 보인다. 성질에 욱하는 아저씨, 츄리닝을 입고 활보하는 청년도 있다.

    이 평범해 보이는 동네에 촌에 살았던 할아버지가 이사를 왔다. 할아버지는 정에 넘쳐 이웃들 문을 여기저기 두드리며 얼굴을 비춘다. 이내 '평범함' 아래 외면해왔던 것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외면의 대상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아…. 미치겠다. 저 아줌마만 보면 왜 이렇게 미안하고 왜 이렇게 불편하고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청년은 어머니가 지나가더니 모른 척하고 외면한다. '불편'의 감정이 섞인 채로.

    지난 6일에 문을 연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는 우리네 동네를 무대에 옮겨 놨다.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세월호 가족이 곁에 산다는 것. 연극은 동네의 평범함을 비춰 우리를 그 동네의 일원으로 이끈 다음, 세월호 가족을 우리가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는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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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극의 배우들은 전부 세월호 어머니들. 할아버지, 아줌마, 고등학생, 택배기사 등 각자 맡은 역할에 맞춰 분장을 한 어머니들 연기는 놀라우리만큼 능청스럽다. 할아버지 역을 맡은 어머니는 구수한 사투리로 좌중의 주목을 이끌고, 어머니들의 변주는 다채롭다. < 007 > <킹스맨>을 비롯한 영화들 패러디가 극에 깨알같이 들어가 웃음을 준다. 

    호소는 외면하고 카톡은 믿는 현실

    웃음 속엔 뼈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극중 세월호 어머니는 축 처져 있다. 이 와중에 각종 소문은 똬리를 틀고 옆집에서 다시 동네로 소문이 번진다.

    "돈벼락 맞게 생겼네, 산 사람 인생 폈지 뭐."

    이웃 택배기사는 세월호 가족이 못 미덥다. '바쁜 일상'에 세월호 가족을 살펴보진 않지만, 세월호를 두고 떠도는 소문과 카톡으로 배달되는 유언비어에 '그런가 보다' 하고 철석같이 믿는다. 남는 건 세월호 가족의 마음을 할퀴는 비난. 

    "(카톡 소리) 뭐야? 단식하는 사람, 딸이랑 같이 안 살다가 보상금 받으려고 괜히 오버하는 거임."

    이웃이 어떤지는 살피지 않는데, 얼굴을 모르는 이가 보낸 카톡은 유심히 들여다보는 현실. 그동안 세월호 가족은 길거리에서, 4대문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서 '진실 규명'을 외쳐왔다. 정작 이들에게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지는 않은 채, 카톡과 SNS에서 퍼지던 말만 믿고 날을 세워오지는 않았나.

    연극에선 카톡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주고받는 시대, 얼핏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되레 뭉침을 와해하기도 한다. 연극은 SNS가 연대를 막아버리는 역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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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한국 사회를 짚는 연극

    "삼성영어 이제 그만 보내야 되겠어? 왜? 거기 원장이 서울대 나왔잖아? 학생들도 서울대 엄청 보낸다던데?"

    연극은 지금의 사회를 여러군데 짚는다. 학부모인 택배기사의 말을 빌려 경쟁에 매몰된 교육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더불어 사는 모습'이 실종된 교육에서 길러진 아이들은 남을 한 번 더 살피기보단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 교육의 틈을 비집고 연대를 끊는 말들이 쉽게 파고 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극 속에서 부녀회장을 비롯한 아줌마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나"라며 떠도는 풍문을 사실로 치부해버린다. 그런데 풍문이 다 같은 사실이 될 순 없다. 외면의 한 가운데, 아픔에 겨워 힘겨워하는 이들은 어디서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호소가 뭉개지고 있는 이 현실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 위에 세워진 연극은 그러나 시종일관 유쾌하다. 곱씹을 문제를 제시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 유쾌함을 이끈다. 극에서 어머니들이 '대사 실수'와 같은 빈틈을 간혹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빈틈이 관객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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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선사한 웃음에 담겨진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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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시작 전 무대와 방청석 모습. 사람들로 공연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찼다.
    ⓒ 고동완

    유쾌함은 희망으로 이어진다. 연극으로 세월호 어머니들은 희망을 향해 한걸음씩 내디뎠다. 그 발걸음엔 관심을 계속 가져달라는 호소가 담겨있다. 
    연극에 앞서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서 열린 강연에서 박영대 4.16세월호 국민조사위원회 조사연구단장은 "특검이 기소권과 공소권을 가졌더라도 진실이 드러난 게 얼마나 있는가"라며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선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관심과 연대가 여전히 절실한 것이다.

    어머니들은 연극을 통해 우리에게 '그 불편함'의 시선을 거둬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불편이 남는 한, 희망의 발걸음은 외면되고 관심과 연대를 막는 동기는 살아남는다. 어머니들이 펼친 유쾌함엔 싹튼 희망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소망이 있을 것이다.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는 '혜화동 1번지'에서 오는 9일까지 진행된다. 이 연극과 함께, 역시 세월호 얘기를 다룬 연극 <유산균과 일진>이 이어서 펼쳐진다. 연극은 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와 오후 7시, 9일 일요일 오후 3시에 상영한다. 이 연극뿐 아니라 '세월호 201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총 8개 연극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8월 13일까지 진행된다. 예매는 플레이티켓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김태현 연출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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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블랙텐트에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이 있었다. 김태현 연출이 극에 앞서 관객에게 몇가지 설명을 하고 있다.
    ⓒ 곽우신

    이번 연극을 각색하고 연출한 김태현 감독은 "어머니를 향한 비난과 같은 극 중 얘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실제는 이보다 더하다 하더라"며 "연극으로 세월호의 진실과 가치를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태현 감독과 연극이 끝난 뒤 나눈 일문일답.

    - 어머님들이 연극에 동참하시기로 한 배경은.
    "그간 어머님들이 세월호 사건을 알리고자 서명도 받고, 간담회도 다녔는데 연극이란 예술을 통해 세월호를 얘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생각됐다. 또 어머님들이 너무 힘드니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서, 일종의 치료 차원으로 시작한 것도 있었다."

    - 어머님들과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땠나.
    "처음엔 연극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공연을 할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 했다. 웃을 일이 없어 일부러 희극을 했다. 그러면서 어머님들이 웃음도 나누고, 연극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 실제 있었던 일을 극에 녹였다던데.
    "세월호 가족들이 직장에서 있었던 일, 늘 같이 밥 먹었던 사람들이 자리를 피했던 일들을 극에 녹였다. 사실 극에 나온 얘기는 일부이고 실제는 이보다 더하다고 어머님들이 말씀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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