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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사 월급, 많이 부족하다 (6.17)
    쓴 기사/기고 2017. 10. 29. 13:17

    지난 16일 아침, 국방부가 전역한 병사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내년도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3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지 8일 만에 나온 보도라 병사 처우가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결국 전역 지원금은 오후에 국방부가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병사 처우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방부는 ‘2018년 국방예산 요구안’을 공개하면서 내년 병장 월급을 현행 21만 6천원에서 40만 5천원으로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의 갑절로 느는 셈이다. 14년부터 16년까지 월급 인상폭이 15%선에 머물렀던 때와 비교하면 큰 폭이 아닐 수 없다. 


    병사로 지난달까지 복무했던 경험자에 비추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방부는 최저임금의 40%, 50% 수준으로 월급을 높여가겠다고 밝힌 만큼, 병사 처우가 진일보해나가길 바란다.


    40만원, 아직 부족하다


    향후 추이를 봐야겠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40만원으로 월급을 올려도 받는 기간은 제한적이다. 이병은 30만 6천원, 일병은 33만 천원, 상병은 36만 6천원, 병장에 가서야 40만 5천원을 받는다. 육해공 중 복무 기간이 24개월로 가장 긴 공군은 입대한 지 17개월이 지나야 병장이 된다. 21개월인 육군은 병장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해 40만원을 받는 기간도 적다.


    월 20만원 남짓 받던 지난 2년의 복무를 되살려보면 월급에서 나갈 게 많았다. 저축해놨던 돈을 깨거나 부모님의 손을 안 빌린다는 가정을 하면 생필품비도, 교통비도, 휴가 나가서 쓸 돈도 월급에서 지출해야 했다. 그러려면 부대에서 한 푼도 쓰지 않을 각오를 해야 했다. 40만원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숫비누와 치약, 칫솔을 사라는 용도로 일용품비가 월 3천원이 지급됐지만 턱 없이 부족했다. B.X가 일반 마트보다 싸다고 해도 치약과 칫솔을 사고 나면 3천원은 금방 동이 나버린다. 또 샴푸와 비누, 폼클렌징, 선크림을 사려면 결국 월급에서 끌어다 써야 구미가 맞춰진다. 이걸 구비하는 데만 만원이 훌쩍 넘는다. 전화비도 오롯이 병사 몫이다.


    야근과 각종 사역, 가점으로 맞바꿔


    현행 병사 보상 체계가 현금이 아닌 휴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돈 쓸 일을 병사에게 전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야근을 하면 수당이 지급되는 부사관 이상 간부와 달리, 병사는 가점을 받는다. 가점이 모아지면 휴가를 나가게 해주는 식이다. 휴가의 유혹은 너무도 달콤해서 군말 없이 야근에 나서는 장병이 수두룩했다.


    햇볕이 맹렬하게 내리쬐던 여름, 제초 같은 사역에 차출되거나 휴일에 불려나와 일을 할 때도 가점을 지급받았다. 수고한 대가로 차곡차곡 모은 가점을 외면하고 자유를 만끽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가면 돈을 쓸 수밖에 없어도 말이다. 밤낮 일한 노고 끝에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휴가를 나가면 복무했던 서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 일반으로 왕복 만7천원이 들었다. 집에 갈 때와 부대로 복귀하는 데 드는 대중교통비 4천원을 포함하면 휴가 한번 나가는데 교통비만 최소 2만원은 들었다.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한반도 남단에 있는 진주나 김해, 이런 데서 복무하는 장병은 버스로 왕복만 4만원에 육박한다.


    교통비, 지원 받기도 어렵고 할인도 없다


    물론 포상이나 위로휴가로만 나가면 ‘후급증’이 발급되어 버스비를 왕복으로 지원해준다. 그러나 포상휴가는 많이 받더라도 휴가 한 번에 사유별로 하나씩 써야 했다. 예컨대 가점 30점에 포상휴가 1일이라고 가정하면, 가점 60점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한 번에 30점만 쓸 수 있었다. 위로휴가는 군 생활을 통틀어 하루나 이틀, 많아야 삼일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보통 포상과 위로를 모아 나가봐야 3~4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6주에 2박 3일이 나오는 외박을 포상과 위로휴가에 붙이면 편도만 금액이 지원됐다. 총 32일 제공되는 연가는 휴가에 하루만 붙여도 후급증이 발급되지 않았다.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는 교통비를 지원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장병이라고 고속버스나 대중교통비를 할인해주는 것도 없었다.


    휴가 나가서 사먹는 돈은 당연히 장병 몫일 수밖에 없었다. 한 끼 식사에 술 한 잔 곁들여도 만원인 세상이다. 두어 명 식사하면 2~3만원 나가는 건 금방이다. 돈을 모으자는 생각에 잠시 문화생활을 즐기려 해도 월급을 생각하면 부담의 연속이었다. 교통비 제하고 먹고 보고 즐기다 수중에 남는 돈이 10만대, 만 원대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생수를 사더라도 가격을 유심히 봐야 했다.


    돈은 적게 받는데 간부보다 일은 많이


    장병들은 돈을 적게 받고도 격무에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줄잡아 최소 100만 원 이상,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는 부사관 이상 간부가 일하는 양이 많아야 정상이겠지만 정반대였다. 솔선수범 책임을 다하려는 간부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 간부들은 지위를 이용해서 해야 할 일을 병사에게 넘기다시피 했다. 


    근무 시간에 간부는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눌 동안, 병사는 일을 해야 했고, 쉬는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애국’의 이름을 단 복무 현장의 현실이었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군대에서 이를 문제 삼아 반기를 들 수도 없었다. ‘애국 페이’에 항변도 못해보는 처지에서 “돈 내고 나라 지켰다”, “노예였다”란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군의 부족한 현실을 병사 월급이 보완해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식사다. 군에서 주말은 평일과 달리 식사가 부실하게 나왔다. 국도 없고 자장밥에 김치, 달걀, 음료수가 끝이던 경우도 있었다. 음식에 불만을 가지던 장병들은 월급을 털어 냉동식품과 과자를 사기 일쑤였다. 곁에서 장병들을 보면 하루 땀 흘려 벌어 군것질하거나 냉동식품을 사서 끼니를 대신 때우는 하루벌이 인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악화된 청년 현실, 이 와중에 돈 모아야


    문제는 이런 게 누적되면 모을 돈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지금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는 건 등록금뿐 아니라 주거비, 스펙을 쌓기 위한 자격증 공부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학생들은 월 40~50만원씩 주거비로 꼬박꼬박 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2년 동안 군 복무를 해놓고 수중에 남는 돈이 얼마 없다면 당장 현실이 막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군대는 내보내면 그걸로 끝이지만 청년은 자립을 해야 한다.


    자립을 도울 전역 지원금 논의가 아직 유효해야 하는 이유다. 또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낮은 봉급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을 해소하고, 금전 대신 보상의 대안으로 여성과 장애인의 역차별 문제를 불러온 ‘군 가산점’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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