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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은 5분 만에, 화장실은 0번... 간호사는 힘들다 (7.26)
    쓴 기사/기고 2017. 11. 1. 17:13

    [너무나도 피곤한 노동자들 ② - 간호사] 열악한 노동 환경... 화장실은 '꿈', 물 한 모금 못 마신다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지현]

    긴장이 느슨해질 밤 8시, 긴장에 흠뻑 젖은 누군가는 하염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된다.

    "밥 좀 드셨나요?"

    3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난 19일 서울의 한 사립대 병원, 정형외과 병동. 이곳의 사령부인 '스테이션'에서 세 간호사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주시한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가 병동에 올라왔지만, 2시간이 지나버렸다. 밥의 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었다.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따르릉 울린다. 다급한 보호자가 신호를 보낸 것. 이 병원 3년 차 간호사 A씨는 몸을 움직여 환자에게 간다. 환자는 열이 높은 상황. 보호자가 환자의 다리를 매만지며 "왜 이리 뜨끈뜨끈해" 걱정한다. 환자의 팔을 들어 혈압계로 혈압을 재본다. 서둘러 스테이션 약품 창고에서 주사를 준비한다. 

    "말도 못 붙이겠네"... 1분의 여유조차 없다

    ▲  환자의 이상 유무를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간호사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여유는 없다. (사진은 기사 속 언급된 병원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보건의료노조 제공


    "왜 이렇게 혈압이 높아?"

    불안에 찬 보호자가 묻는다. A간호사는 설명을 하더니 "이거 맞으시면 혈압이 떨어질 거예요"라면서 주사를 놓는다. 측정한 혈압을 기록한다. 키보드를 오가는 손놀림이 바쁘다. 

    일은 동시다발로 벌어진다. 병실을 돌며 환자의 상태를 본다. 수술을 마친 환자가 병실로 들어간다. 이 환자 몸에 달린 관의 피를 빼내 주사기로 양을 재고 기록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도구 준비해서 갈게요"라고 답한다. 이 모든 것이 8시 32분에서 40분, 8분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스테이션을 서성이던 한 보호자가 "간호사가 바빠 보여 말도 못 붙이겠네"라면서 병실로 돌아간다. 분주함의 끈은 강고하기만 하다. 50분, 환자에게 약 줄 시간이다. 약이 담긴 카트를 끈다. 병실을 종횡무진하며 약을 나눠준다. 다음날 금식할 환자의 침대에는 '금식'을 붙인다.

    9시 정각, A간호사와 교대를 해줄 '나이트' 근무조가 출근했다. 출근 시각은 밤 10시이지만 1시간 일찍 왔다. 그 시각, A간호사는 차트를 뒤적이다 기록하지 못한 걸 정리한다. 생각을 정리할 여유는 없다. 환자들의 혈압과 맥박, 체온을 입력한다. '나이트' 근무 간호사들은 부족한 물품을 채우고, 밤 11시에 처방할 약을 준비한다. 

    "출근 전, 퇴근 후에 화장실 가요"

    일에 치인다는 게 딱 이런 상황이다. 9시 18분, A간호사는 맡은 환자를 돌보려 병실을 순회한다. 9시 29분, "검사 때문에 아침 식사 못하실 거예요"라며 환자들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9시 32분, 혈압이 떨어져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를 확인한다. A간호사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9시 37분, 의사에게 전화를 건다. 의사는 전화를 안 받는다. 간호사 판단으로 처방을 내릴 수 없다. 

    다행히 의사의 처방 전화가 왔다. 비치가 안 된 약품을 건너편 병동의 스테이션에서 빌린다. 약을 주사에 담는 데 시간이 걸린다. 9시 50분, 혈압이 떨어진 그 금식 환자에게 포도당을 투여한다. 9시 55분, 수술 환자가 병실에 왔다. 환자는 회복실에서 오물이 묻어있는 청색 도포로 몸이 덮여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힌다. 이 동안 수술 부위와 욕창 유무를 확인한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급박하게 기록을 남기는 A간호사에게 두 가지만 간략하게 물어봤다(이 질의응답은 1분 내에 이뤄졌다). 

    - 2시간 지켜보는 내내, 물 한 모금은커녕 화장실 한 번 못 가던데.
    "화장실은 출근 전, 퇴근 후에만 간다(한 교대당 근무 시간이 통상 8시간 이상이란 걸 감안하면 공백이 큰 셈이다)."

    - 혹 관두거나 다른 데로 이직하고픈 생각이 있는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네."

    병동 상황을 지켜보던 8년 차 간호사 B씨는 "정형외과가 업무 강도로는 5점 만점에 1점에 불과하다"라면서 "내과에 근무하던 시절엔 밤 10시 30분에 퇴근할 걸 새벽 1~2시에 마친 적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간호하는 데도 벅차다"

    업무가 편한 축에 속한다는 병동에서도 화장실 한 번 가기 어려운 상황.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는 여유란 걸 망각하게 할 정도로 셌다.

    "내 영혼이 메말라갔다. 숨만 붙이고 살았다."

    앞서 전날인 18일, 한양대병원에서 간호사로 25년간 재직하고 있는 한미정 전국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을 만났다. 한 사무처장은 간호사로 재직할 동안 고달픈 날들을 떠올리며 속에 담긴 것들을 쏟아냈다. 

    그는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해소하려는 것도 이기적인 게 돼버린다"라면서 간호 업무의 열악한 실태를 털어놨다. 또 "일에 치이다 보니 간호사들에겐 인격이란 게 허락되지 않는다"라면서 "일을 1년 하면 돌잔치를 해줄 정도로 이직이 잦다"라고 토로했다. 

    다음은 한 사무처장과 의료노조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환자를 간호하는 것 이외에 맡은 업무가 많은가.
    "간호하는 데도 벅차다. 인력이 많이 부족한 탓이다. 간호를 하려면 처방전을 확인하고, 환자가 먹을 약을 챙겨줘야 한다. 교대할 때 주사, 응급 물품, 수액 등 수십 수백 품목의 유효기간과 개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환자의 혈액 채취나 검사도 병행해야 한다. 환자의 위생도 봐줘야 하고, 침상 시트도 갈아줘야 한다. 합병증이 안 생기게 환자를 교육하는 것도 간호사 몫이다. 응급 환자가 오면 일이 안 될 정도다."

    생리대 교체하는 것도 '눈치'... "간호사들은 밥을 마신다"

    ▲  지난 5월 12일 세계 간호사의 날 기념, 일자리 창출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이 피켓을 들고 있다.
    ⓒ 전국보건의료노조


    - 밥 먹는 건 어떤가. 화장실은 잘 다녀오나.
    "간호사들은 밥을 '마신다'고 한다. 밥을 먹는 속도가 대체로 5분을 넘질 않는다(지난 5월 31일에 발표된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2017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응답자 1만6943명 중 45%가 이동·휴게 시간을 포함해 한 끼를 먹는 데 20분 미만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당 식사를 거르는 횟수도 3회 15%, 5회 10%에 달했다). 

    신참은 일도 잘 못하는데 밥을 늦게 먹으면 뭐라 말을 들으니 밥을 입안으로 그냥 밀어 넣는다. 이 닦을 시간도 없다. 물 한 모금 못 먹고 일할 때도 많다. 특히 간호사들이 생리대를 갈 시간이 없다. 화장실도 자주 못가니 간호사들은 방광염과 변비도 많이 걸린다.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챙기면 이기적인 간호사가 돼버리는 게 현실이다."

    - 초과로 일하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
    "종합병원 간호사는 보통 3교대로 운용된다. 오전과 오후를 맡는 '데이'는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단체 협약에 출근을 오전 7시 30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해서 1시간 일찍 나온다. 또 오후 3시 30분이 퇴근이라 하면, 실제는 오후 4시나 5시에야 퇴근한다. '나이트'는 일반적으로 밤 8시 30분에서 다음날 오전 8시 30분, 적어도 12시간 일하는데 근무 인정은 9시간 내외에 그치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초과 수당은 잘 지급되지 않는다. 2.5에서 3시간은 무료로 노동하는 거다. 병원은 재정적으로 감당해야 할 게 많으니 안 주고 싶어하는 거다. 병원과 협상을 하면 초과근무를 줄이겠다 하지만, 기본 업무가 줄지 않는데 그럴 수 있겠나."

    - '나이트' 근무는 다른 교대 근무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보통 월평균 6~7번을 '나이트'로 근무하는데, 일할 걸 생각하면 우울하다. 밤엔 환자들이 잠을 자니 간호사를 줄인다. 중환자는 쭉 돌봐줘야 한다. 전날 처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펴보고, 치료할 때 빠진 건 없었는지 본다. 밤에 일을 하고 아침에 보면 가스가 배에 가득 찰 정도다. 일을 마치고 나면 힘이 없어 옷을 갈아입지 못한다. 그 시간들이 너무나 괴롭다.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다. 눈만 멀뚱멀뚱한데, 이 정신 상태로 자야 하니..." 

    "동료나 상사와 가족계획을 상의하기도"

    ▲  아직도 간호사들은 가족계획을 직장과 상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사진은 기사 속 언급된 병원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보건의료노조 제공


    - 임신 순번제와 '태움'(간호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언과 괴롭힘을 뜻함) 등의 부조리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인데.
    "순번을 정해 임신하는 건 여전히 있다. 근무조 다섯 명 중 두 명이 임신하면 그 둘을 밤 근무에서 빼줘야 하지 않겠나. 남은 세 명이 일을 더 자주하는 불이익을 받는다. 결국 임신을 남편하고 상의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상사하고 상의해야 한다(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2017년 조사 결과 최근 3년 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 3628명 중 응답자의 30.3%가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도 대체 인력이 바로 투입 안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러니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기도 한다. '태움'의 근본 원인도 결국엔 인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도와줘야 하지만 적은 인력으로 그게 가능하겠나. '너네  엄마는 이렇게 일하는 거 아냐'는 식으로 심한 말이 나온다."

    -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새 간호사는 오는데 일도 가중되고 있으니 인간답게 일할 환경이 아니다. 중소병원은 간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문을 닫고 있다. 간호사는 공공의 일을 한다. 인력 부족으로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보건 인력을 공공 재원으로 인식해서 이 인력의 수급과 관리를 책임지고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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