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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영화, 사랑 위에서 진실을 묻고 철학을 논하다
    생각/영화 2017. 11. 3. 10:53

    [리뷰] 개인의 삶과 정신이 소거되던 전쟁... 그 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프란츠>

    [오마이뉴스고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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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란


    전쟁은 사람의 다양한 정신을 소거시키고 생존과 승리라는 핑계로 일원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인 시대를 낳는다. 당장 총탄이 날아오는 참상 앞에선 자유주의와 평화주의 같은 각종 사상은 '우선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아래 무력의 길을 걷고 만다. 그로 인한 후유증이 동시대인에게 전해짐은 물론일 것이다.

    지난 20일에 개봉한 뒤 작품성과 서정성으로 호평을 낳고 있는 영화 <프란츠>는 1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앙금이 채 풀리지 않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독일의 안나(폴라 비어 분)는 독일군으로 참전한 약혼자 프란츠(안톤 폰 루카 분)를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 잃고 만다. 이 와중에 프랑스인 아드리앵(피엥르 니네이 분)은 "프란츠의 친구"라며 안나를 찾아온다.

    안나의 기억에서 프란츠는 평화주의자였다. 프란츠는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참전은 했지만, 방아쇠를 당기려 하지 않았다. 포탄의 공격으로 파편이 여기저기서 튀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평화주의의 신념이었든, 갑작스러운 위기의 당황함이었든, 프란츠는 총을 장전하려 하지 않았다.

    전쟁이 만든 삼각구도... 진실을 둘러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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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란


    그러나 생살여탈권을 쥔 대규모 전쟁에서 개인의 재량은 허락되지 않았다. 프란츠를 못내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안나와, 프란츠를 상기하며 역시 고뇌하는 아드리앵의 모습은 개인의 정신과 삶을 말살한 전쟁의 결과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1차 대전 직후는 맞닿은 영토를 두고 전면전을 벌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여전히 으르렁거리던 때였다. 독일인 프란츠의 아버지는 프랑스군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점을 회상하며 프랑스인을 좋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살육과 승리가 목적이었던 1차 대전의 여파는 모질고도 질긴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드리앵이 독일로 간 데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을 낳는다.

    전쟁의 결과로 안나와 프란츠, 아드리앵의 삼각구도가 마련됐지만 그 구도를 이끌어나가는 건 진실을 둘러싼 고민이다. 안나는 현재의 행복을 위해 프란츠 부모님에게 거짓을 고한다. 이 행복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게 아니라 프란츠 부모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현재 상황을 감내하는 방편이자, 진실의 무게에 눌려버릴 것 같을 때 인간이 택하는 나약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안나의 거짓말은 선악의 잣대론 가를 수 없는 인간 나름의 고민이다. 이 거짓말로 프란츠 부모는 현재의 힘을 얻고, 미래를 추동한다. 가공된 상황을 가정한 안나도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한다. 물리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지렛대로 삼아 영역을 확대하듯이 말이다.

    로맨스보단 철학적 영화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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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란


    허나 인간의 운명이 속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 영화는 안나의 고해성사를 비춘다. 구도 속에서 안나의 소망대로 상황을 펼치기엔 현실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암담할 뿐이다. 그리하여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 사이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영화는 던진다.

    자력으론 현실을 타개할 순 없고 그렇다고 가공을 하려니 죄의식이 깨어나 안나를 사로잡는다. 안나가 성장한 마지막 장면은 그렇기 때문에 희망의 빛은 있지만, 미완의 의지일 수밖에 없다. 영화 <프란츠>는 전후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로맨스 영화라기보단 현실의 잿빛에서 인간이 어떻게 역경을 디딜 수 있을지 묻는 철학적 영화로 보는 게 더 타당할지 모른다.

    이 질문에 힘을 싣는 건 영화의 테마곡인 쇼팽의 '야상곡 20번 올림 다단조'다. 이미 로만 폴란스키작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연주된 곡이라 국내에서도 익숙한 음이다. <피아니스트>가 곡을 배경으로 장면을 묘사했을 때처럼 이 곡은 사랑의 선율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유약함 가운데서 나오는 비탄함, 그런데도 희망의 꽃망울은 틀어막을 수 없다는 음색이 살짝 녹여있다.

    영화는 장면의 색을 흑백 톤으로 담담하게 유지하다 회상 장면과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 나올 때면 파스텔 색조로 장면이 바뀐다. 이는 종전 이후의 시대상이 잿빛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을 투영하는 동시에, 파스텔 톤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실릴 것이란 점을 암시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던 안나의 얼굴이 배경과 더불어 흑백에서 컬러로 변모하는 모습은 인물의 내면이 색과 호흡을 맞춰 변화하는 듯한 색다름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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