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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왜 딸을 영국으로 보내는 데 집착했나
    생각/영화 2017. 11. 4. 15:31

    [리뷰] 제6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엘리자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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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진진


    평온할 것만 같은, 아침.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집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아이들 장난에 그렇게 된 걸까. 나가보니 돌 던진 사람은 없다. 신원미상의 괴한이 작정하고 돌을 날린 것 같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하루의 화창한 시작을 불안과 맞닥뜨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루마니아. 의사 로메오(애드리언 티티에니 분)는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 분)가 영국으로 유학하길 간절히 바란다. 마침 유학의 성패를 가를 졸업시험이 임박한 상황. 이때 집 유리창이 깨져버리고 만다.

    급기야 엘리자는 등교하다 괴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다. 폭력으로 엘리자 몸과 마음에 남은 상흔은 잘 지워지질 않는다. 요동치는 마음은 당장 앞둔, 집중을 요하는 시험의 적일 수밖에 없다. 로메오는 딸의 처지에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유학을 위해선 시험을 기필코 잘 봐야한다며 딸에게 강박적인 면모를 보인다.

    아버지가 딸의 영국행에 집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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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고동완



    사건의 시작은 괴한의 공격이었지만 극을 추동하는 건 로메오의 고집이다. 웃돈을 받고 진료를 해주는 루마니아 사회에서 로메오는 눈에 띌 정도로 돈에 있어선 청렴하다. 또 젊은 시절 사회개혁에 나설 정도로 사회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그런데 로메오가 딸의 영국행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중년이 된 로메오의 말에선 "루마니아에 남아 살았는데 뭐가 달라졌냐"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개혁의 좌절과 부패의 온상이 로메오의 시각을 냉소로 인도한 것이다. 결국 로메오는 자식인 딸에게 루마니아를 꼭 탈출하라며 교육을 도구로 떠밀고 있다. 더구나 엘리자가 시험을 망칠 기미를 보이자 점수를 조작하려 나선다.

    어째, 어디서 자주 보는 광경을 접한 것만 같다. 우리 사회상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인걸까. 딸의 몸과 마음이 어떻든, 당장의 시험이라는 과제 아래로 밀어넣는 모습은 우리네 교육과 맞닿아 있다. 시험이 생존이라는 이름을 달고 교육의 당사자는 주체성이 소멸되며 개성은 사라진다. 우리가 그토록 시험에 매몰되는 건 로메오의 말마따나 현 상황을 탈출하라는 메시지의 응답일 것이다.

    문제는 그 탈출 과정이 말 그대로 '각자도생'이라는 점이다. 각 개인의 상황과 처지와는 무관하게, 그럼에도 개인은 살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아가야만 한다. 나만 살면 된다는 주의가 팽배해진다. 그 폐해는 로메오가 꿈꿨던 개혁의 후퇴로 돌아옴은 물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로메오는 나이가 들면서 개혁의 열의가 식었을까. 로메오는 어쩌다 부정까지 저지르려 했나. 버티다, 버티다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이의 파산적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사건의 전제인 폭력은 현실을 짓누른 또다른 원인이 됐을 것이다.

    쌓여가는 긴장감... 그럼에도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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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엘리자의 내일> 스틸컷
    ⓒ 진진



    로메오를 비춘 영화의 함의는 가볍지 않다. 도덕을 끝내 팽개쳐버리는 로메오의 모습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지금도 각계에선 사회 문제나 여러 현실상을 두고 '어차피 해도 안 돼'라는 인식을 가지면서도 신뢰를 깨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거나 자기 자식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해선 선두에 나서려는 이가 적지 않다. 늘어나는 무게감은 다른 이들과 나눠지지 않는다. 개인은 더 피로해져만 간다.

    로메오의 행위에 주변인들 시선을 통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영화는 시종일관 로메오를 따라간다. 딸의 점수를 위해, 괴한의 검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로메오의 발걸음은 긴장감을 낳는다. 그것은 희망에 부푼 긴장감이 아니라 오늘, 내일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의 긴장감이다. 그래서 유쾌할 수가 없다. 다행이라면 영화의 열린 결말이 쌓인 긴장감을 풀어준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은 루마니아 출생의 크리스티안 문쥬. 다르덴 형제와 미카엘 하나케 감독에 이어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을 기록한 감독이다. 감독의 전작인 지난 2007년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1987년 루마니아의 사실적 묘사로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영화도 전작과 비슷한 기조의 사실주의를 이어간다. 시험이라는 보편적 주제의 사실적 이야기에 펼쳐놓는 긴장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2016년 제6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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