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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인 8색, 한 테이블에 오롯이 담기다
    생각/영화 2017. 11. 5. 21:50

    [리뷰]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 잡은 영화 <더 테이블>

    [오마이뉴스고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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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엣나인필름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네 여주인공의 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낳을 만했던 영화 <더 테이블>이 지난 24일 개봉했다.

    영화는 언뜻 구성 뼈대가 간결하다.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에 사연이 있는 두 사람이 마주한 채 말을 나누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뼈대를 만든 발상의 힘은 가볍지 않다. 테이블이 대화의 밑 배경이 되어준다는 점은 흔한 것이겠지만 테이블로 두 사람과 네 개의 섹션이 마련된 총 8명의 말이 농밀함을 가지려 한다는 점은 이색적이다.

    영화와 인생에서 비롯되는 재미 혹은 성찰은 사람의 만남으로 축약할 수 있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한 지점으로 모여 솔깃한 이야기와 반성을 낳고, 또 각자는 다시 흩어져 허연 종이 위에 다색과 흑백, 다시 흰색을 칠하는 경험을 겪는다. 영화의 테이블은 차와 커피가 오르면서 이야기를 낳는 중심이 되고, 이후 각자의 이야기를 구성해주는 분기점이다.

    살짝 농밀하면서 무미건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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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엣나인필름



    결국, 테이블의 형체는 단조로워 보여도 거기서 꾸려지는 이야기는 무미건조할 수가 없다. 평범한 사물의 일상화, 거기서 사람을 탐구하는 영화의 얼개는 어느 날 햇살이 비추는 아침에서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 스타 배우로 발돋움한 유진(정유미 분)은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 분)을 그 어느 카페 테이블에서 재회한다.

    대화는 내면이 아닌 외면을 향한다. 창석은 유진의 그 자체 모습보단, 스타로 가꾸어진 이미지에 집중한다. 창석에게 중요한 것은 유진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가 세워놓은 유진의 이미지에 대한 확인이다. 창석의 관심은 유진을 둘러싼 떠도는 지라시 소문이 진정 사실인지에 쏠려있다. 유진은 창석에게 TV에 나오는 건 이미지라고 밝혀두지만 창석은 브라운관이 제공하는 유진의 이미지에 미련을 거두질 않는다.

    이는 유진의 소문과 과거에 대한 창석의 집착으로 이어지고 유진을 이미지의 도구화로 삼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창석의 태도에 혀를 찰 법하지만, 내면에 모종의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 이미지가 자기 생각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회의와 의심을 감행하는 사람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잘 풀어낸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사람 간에 오가는 대화의 섬세함에 주목하면서 사람의 불완전성을 상기해준다.

    영화는 오전과 오후, 저녁 시간대를 나눠 조명하는 인물을 달리한다. 유진과 창석이 떠난 자리에 경진(정은채 분)과 민호(전성우 분)이 오더니 사랑을 두고 회의와 믿음에 대한 약간은 어설픈 얘기를 주고받는다. 오후가 되자 사기 결혼을 꾸미는 은희(한예리 분)과 숙자(김혜옥 분)이 같은 테이블에 와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전작에 이은 묘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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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엣나인필름



    해 질 녘, 밤에 이르면 혜경(임수정 분)과 운철(연우진 분)이 나오는데, 행동의 실천은 의지에 있다지만 마음이 의지를 누르는 피치 못할 상황이 빚어지면서 쌉싸래한 풍미를 안긴다. 그렇다고 영화에 담긴 8인 8색 모두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만남을 통한 자각과 공감의 청량감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남만이 가진 특별한 효과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여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정준원과 전성우가 짧은 순간 펼치는 발군의 연기도 영화의 백미다. 영화에서 연기는 사람 간의 대화로 수렴되지만, 이들 배우의 사실적 묘사는 관객의 시선줄이 느슨해지지 않고 팽팽하게 한다.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은 70분으로 짧은 편이나 장면에 꽂힌 시선은 잘 놓아지질 않는다.

    이 같은 장면이 탄생한 데는 인물의 대화와 행동으로 일상을 오밀조밀하게 그려냈던 김종관 감독의 공이 클 것이다. 김 감독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2016년 영화 <최악의 하루>를 감독한 바 있다. 전작 <최악의 하루>에서도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 재회로 생기는 에피소드를 사실감 있게 그려내면서 인간의 얼굴과 내면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인 이번 영화도 이야기의 농도는 전작에 견줘 조금 낮아졌지만 8인 8색의 다채로움을 일상의 테이블을 주제로 담아냈다는 점에선 평가할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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