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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력 후려치기 당하는 기분" 이대학보 사설 논란의 이유 (9.07)
    쓴 기사/기고 2017. 11. 11. 14:46

    [주장] '입결 문제, 학교가 제대로 나서야' 사설 논란, 교육의 병리적 문제부터 짚었어야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준수]

    ▲  이대학보 페이스북 캡처. 해당 사설은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상태다.
    ⓒ 이대학보 페이스북 갈무리


    "입결(입시결과)을 높이기 위해선 학교 차원에서 학원가에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입시 상담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눈을 의심했다. 지난 3일에 발행된 이대학보 사설의 글귀 중 일부다. 이대학보는 '입결 문제, 학교가 제대로 나서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학교와 관련된) 사회적 평판과 이미지 제고는 입결 상승 뒤에 따라올 문제다"라며 학교에 입학 성적을 올릴 것을 적극 주문했다. 

    또 사설은 "언제까지 본교가 부모 세대에나 명문대, 거품 입결이라는 말을 들을 순 없다"는 글도 덧붙였다. 이 같은 사설이 이대학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재되자 '학보가 학벌이라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노골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이어졌다. 현재 사설은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상태다.

    지금 입시 결과가 문제인가

    이 사설에서 사회적인 고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한국 사회의 병폐가 교육에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유아기부터 고액의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인격적으로 성숙의 과정을 밟는 게 아니라 성적을 통한 우위로 '누구를 밟을까' 궁리하는 게 지금의 교육 현장이다. 

    그러한 세태에 대한 고민은 없이 무작정 입결을 높이자고 학교를 닦달하는 학보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다. 학보 사설은 "본교 입결은 그간 평가절하돼 왔다는 게 대다수 본교생 생각"이라며 "학생들이 이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입결이 후려치기 당하면 열심히 공부해서 입학한 재학생 실력과 노력까지 싸잡아 후려치기 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라고도 주장했다. 

    사설의 말마따나 지금 가진 학적을 따고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보상 심리가 끼어들고 학벌주의를 찬동하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설은 실력과 노력을 오롯이 재학생의 수고로 돌리는 근시안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학적을 얻기 위해 학원과 교재, 인터넷 강의에 쏟아부었던 비용은 누가 준비했는가. 논술과 수시 준비에 들어간 비용은 그들이 말하는 재학생의 자력으로 마련이 가능했던가.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기세를 보이는 게 한국의 가정이지만 실질 임금에서 뒤처진 중하위 가정으로선 수시 대비나 재수 비용을 명목으로 월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교육비는 사치일 수밖에 없다. 부모에 기대지 않고 입학한 재학생은 손꼽힐 것이다. 학보가 주장하는 그 노력과 실력이란 혼자 힘으로 세워진 게 아니다. 

    대학의 차별 의식, 사회 병폐 심화시킨다

    ▲  8월 31일 교육부가 수능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입시학원가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반색, 중학교 3학년 안도, 중학교 2학년 경악'이라고 표현했다. 중2 학생은 외국어고와 자사고 전형을 일반고와 동시에 시행하고, 2015 개정교육과정으로 공부한 중3 학생은 2009 개정교육과정을 토대로 한 수능을 보게 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중학교 모습.
    ⓒ 연합뉴스


    경제력에 따라 교육의 혜택이 차등 되면서 실력이 길러지고 노력이 가능했다는 걸 부인해선 안 될 일이다.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보상 심리를 정당화하는 건 기만이다. 그럼에도 사설은 입결을 상승시켜 학벌이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사실상 내보였다. 사설의 초점은 오로지 입학 성적이다. 다른 건 염두에 두질 않는다. 이대라는 울타리 바깥의 상황은 고민하질 않는다. 학벌에 기댄 설익은 엘리트주의를 염려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대학보의 사설은 한국 사회를 노골적으로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부만을 가치화해 사람을 재단하는 건 일찍이 있던 일이다. 1970년대 공장 노동자를 '공순이', '공돌이'로 비하했지만 대학생은 지성인이라고 받들었다. 차별은 의식화됐고 교육 현장은 차별을 방조하다시피 했다. 이것이 과거만의 일인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차별 구조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입결로 대학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는 세태는 강화됐다. '지잡대'란 비하와 고졸의 굴레는 여전히 굳건하다. 한국 사회는 집단과 집단을 나누고 다시 너와 나를 나누며 나만 살아보겠다는 각자도생적 태도가 만연해있다. 공동체의 붕괴, 서울 집중 구조, 지방의 쇠퇴, 이 모든 현상이 교육과 연결됐음은 물론, 그 귀착지엔 차별 의식을 강화하던 대학이 있다는 걸 주지해야 한다. 

    이 씁쓸함 가운데 이대학보가 입결 상승을 촉구하는 주장을, 그것도 사설로 내세운 건 개탄할 일이다. 당장 획일성과 무한 경쟁에 매몰된 교육엔 눈을 감고 입결 상승에 골몰하는 건 패악이다. 지옥과 같은 교육 현실과 사회의 병리적 뿌리를 이대로 안고 갈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부터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는 이대학보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  지난 8월 31일 교육부가 수능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입시학원가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반색, 중학교 3학년 안도, 중학교 2학년 경악'이라고 표현했다. 중2 학생은 외국어고와 자사고 전형을 일반고와 동시에 시행하고, 2015 개정교육과정으로 공부한 중3 학생은 2009 개정교육과정을 토대로 한 수능을 보게 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중학교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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