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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까지의 위안부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 작품만의 매력
    생각/영화 2017. 11. 12. 13:48

    [리뷰] 22일 박스오피스 1위... 추석 극장가 흥행을 예고한 <아이 캔 스피크>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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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엔터테인먼트


    당대의 사람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은 시대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이야기의 기반이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와 2005년 <제5공화국>,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그려냈던 1980년 광주였다. 영화의 차별점 중 하나였던 외부인 김만복의 내면은 1980년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었다. 영화 <군함도> 역시 징용으로 끌려온 그 시대 한국인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21일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이와 달리 과거로의 분절이 아닌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면서 호흡한다. 영화의 중심은 현재, 지금이지만 과거의 숨결이 맞물리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웃음이 일어나며 감동이 살아난다. 이는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영화에서 떠오르는 과거는 슬프고도 원통한 것이지만 현재와 어우러지면서 고통 위주로 이야기가 소비되지 않고 연대가 생기며 희망이 싹튼다는 점이 보는 관객으로서 반갑다.

    배우 나문희가 호연할 수 있게 짜여진 영화

    이 영화의 주축은 배우 나문희다. 방송사와 영화제에서 연기상과 여우조연상을 휩쓴 연기파 배우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맛깔 나는 호연을 펼친다. 그렇다고 숙련된 연기를 어디에서나 펼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영화는 인물의 구성과 관계, 사건 등을 촘촘히 조합하여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가 종횡무진 활동할 토양을 깔아준다. 이를 통해 나문희는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면서 본연의 연기를 구사할 밑바탕이 마련된다.

    영화에서 나옥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현대사의 굴곡을 누구보다 체감한 이다. 그런데 영화는 조심스럽다. 나옥분이란 인물의 내면에 감춰진 고통을 전면으로 내세우기보다 느리게, 그리고 서서히, 뼈가 사무친 할머니의 고통이 용기로, 다시 희망으로 승화할 때까지 기다린다. 서두에선 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란 걸 특별하게 강조하지도 않고 '위안부'는 암시적인 요소에 머무른다.

    이것은 영화의 신중한 접근일 수도 있고 할머니가 지난날 받고 느껴왔던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세월을 조명하는 장치일 수 있다. 나옥분 할머니는 어머니 묘소에 찾아가 술병을 두고 "내 새끼 욕봤네, 이 말이라도 해주지"라며 목청껏 운다.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국으로 돌아온 후 받아든 가족의 냉담함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본군에게 받은 상처에 굵은 소금이 고국에서 내려앉은 것이었고 할머니는 주위의 눈초리를 걱정하며 '위안부'란 사실을 꼭꼭 숨기며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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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엔터테인먼트


    과거와 현재를 이은 <아이 캔 스피크>의 힘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는 나 할머니가 '위안부'였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할머니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너무나도 늦었던 참회이자 피해자를 묵인하고 버려둬 왔던 시대에 대한 반성이다. 또한, 그 할머니의 지난 세월을 간과하고 함부로 대하며 소금 뿌리기에 동참했던 사람들과 주위의 반성이다. 과거를 배제한 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새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위안부', 이 하나에만 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 개발업자와 영합한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한 태도, 법의 테두리를 악용해 사회 저층에 있는 이들에게 수모를 안기는 광경, '위안부'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이까지, 영화의 중심은 '위안부'이지만 그 주변부에 있는 폐부를 찌르는 데 영화는 주저하지 않는다. 이 같은 실천적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가교하는 <아이 캔 스피크>가 가진 힘일 것이다.

    힘의 기저엔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 있다. 영화의 웃음은 억지웃음이 아니고 진솔한 웃음이다. 나옥분 할머니는 해학미를 발산하고 박민재는 특유의 진중함으로 웃음을 키운다. 특히 나 할머니가 일본 관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아이 돈 케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배우 나문희의 표정 연기까지 더해져 통쾌함과 웃음을 절로 낳는다. 진주댁(염혜란 분), 양팀장(박철민 분) 등 나름대로 개성 있는 조연들의 감초 연기도 웃음을 낳는 공신이다.

    그렇다고 웃음에만 마냥 매몰되거나 치중하지 않는다. 슬픔 역시 그러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눈물은 오롯이 신파적 구성을 위한 게 아니라 현실적이고도 감정을 추동하는 진실함이다. 감정에 사로잡혀 영화가 그르쳤다는 지적을 좀처럼 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미국에서 나 할머니가 연설이라는 무게감 앞에서 맞닥뜨렸던 중압감을 탈피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진한 울림이 전해진다. 세대 불문, 다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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