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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가족 공동대표 허경주씨 "적극적으로 수색 나서달라"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예지]

 허재용씨의 어머니 이영문씨가 광화문광장 정중앙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허경주씨에 따르면 오전 10시부터 밤 8시까지 교대를 이어가며 시위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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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뭍에 올라왔다. 길고 또 긴 순간이었다. 1080일을 기다려야 했다. 지난 3월 31일, 그토록 기다렸지만 눈에서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기 힘겹던 날이다. 그리고 같은 날, 배 한 척이 남대서양 해역에서 가라앉았다. 우루과이 인근에서였다. 배 명칭은 '스텔라 데이지호'.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중국으로 가던 배였다. 필리핀인 2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22명은 지금도 실종 상태다.

1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였던 지난 21일, 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적극적인 수색을 요구하고 있었다. 실종자인 허재용씨의 어머니, 이영문씨는 강한 햇볕이 개의치 않다는 듯 광화문광장 정중앙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엔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리본이 그려져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 1척과 같은 주황색에,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닮은 모양이다. '하나의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들어내길 바랐던 그때처럼, 가족들은 희망을 좇고 있다. 69세인 이영문씨는 고령의 몸이지만 주저함이 없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이등항해사였던 재용씨는 법대를 졸업하고 공무원에 도전하려다 적성과 맞지 않다고 판단한 뒤 바다로 눈을 돌렸다. 부산의 한 직업학교에서 1년 반을 교육받고, 데이지호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한다. 이 선사에서 재용씨의 항해는 멈춰버렸다. 기자는 광화문광장에서 재용씨의 누나 허경주씨를 만나 얘기 나눴다. 경주씨는 재용씨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호소했다.

생존 가능성을 호소하는 누나 허경주씨

"전문가에게 자문해봤더니 구명벌에서 100일 정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제 20일 남짓도 안 남았잖아요."

이제 사고 난 지 84일(22일 기준)째다. 배에 있던 구명벌 5척 중 1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명벌에는 생존을 이어나갈 비상식량과 장비가 갖춰져 있다. 3척은 사고 해역에서 발견됐고 1척엔 필리핀 선원 둘이 올라타 살아남았다. 나머지 1척에 누군가 의지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 직접 작동해야 송출 가능한 'DSC 조난 신호'도 사고 이후 발견된 상황.

데이지호는 세월호의 반복이었다. 침몰 뒤 1분 1초가 경각에 달렸지만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고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책임을 제대로 지는 곳도 없었다. 폴라리스쉬핑은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나고서야 해경에 사고 사실을 신고한다. 허씨는 선사의 대응에 분통을 터뜨렸다.

"선사 회장은 4월이 되더니 1주일씩이나 잠적했어요. 그러더니 수색 진행을 안 해줬어요. 회장 직무대행에게 수색 상황을 물어보면 그 사람은 B한테 물어보라, B는 C한테 물어보라, C는 회장한테 물어보라는 식이었거든요. 핑퐁이 이어지다, 새 정부 들어서고 5월 말이 돼서 한 척의 배를 수색 지역에 보낸 겁니다."

"황 대행 공관 찾아갔더니 경찰이 가족들 들어 날라"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은 탄핵 정국과 대선 시즌이 맞물리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급격히 멀어져갔다. 허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급한 마음에 4월 3일 무렵,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세월호 이후 마련된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국외 선박 사고를 총괄하는 곳이 외교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부에서 "(장관이) 시간이 없다"라는 답을 받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참다못해 11일에 황교한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때야 외교부 장관이 가족들을 만나러 오더군요. 주무부처 장관 건너뛰고,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만나면 큰일 나겠다 싶어 만나주는 거 아니냐고들 생각했어요. 장관은 30분 남짓 가족의 말을 들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어요. 황 대행에게 면담을 요청한 건 거절당하고 말았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4월 17일, 비가 내리던 그 날, 가족들은 직접 황 권한대행을 만나러 삼청동 공관으로 향한다. 황 대행이 공관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간 거였다. 경찰들은 공관을 에워쌌다. 경찰은 가족들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스텔라 데이지호'는 말해선 안 될 단어였을까. 가족들은 데이지호 선원 가족이라 답했고, 경찰은 무전을 주고받더니 강제로 끌어냈다.

"경찰이 30~40명 몰려들어 가족들을 들어 나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는 권한대행에게 얘기 한 번 못했어요. 경찰들이 길 건너편 인도로 옮겨버리더니 팔짱 끼고 인간 장벽을 치는 거예요. 30~40분 동안 가둬놓고 못 나가게 했어요. 가족 중 어머님이 화장실 가고 싶다 하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공관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란 조건에 응해야 풀려나올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이 기거하던 한 방은 스텔라 데이지 실종자 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좌측은 전성웅 기관장 아버지 전형술씨. 중앙은 허경주씨. 우측은 허재용씨 아버지 허춘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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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한 척으로 수색하는 게 집중 수색인가"

허씨는 해수부의 늦장 대응에도 분을 삭이질 못했다. 해수부가 5월 19일이 돼서야 구명벌의 위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씨는 "그 전까진 우루과이의 지시를 받은 선박이 수색을 해왔고, 해수부는 적극적인 대응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19일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민간 전문가가 나서서 처음으로 해수부와 회의를 연 시점이었다. 회의에서 구멍벌이 표류한 추정 위치를 좌표로 삼아, 이어진 선형을 토대로 수색 구역을 짰다.

"구역은 가로 300km, 세로 220km 범위로 잡았어요. 해경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이 범위를 수색하려면 배 3척으로 22일간 수색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를 근거로 정부에 3척을 투입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1척만 투입해줄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이마저도 안 해주겠다는 말이 나와, 한 척을 투입해주겠다는 걸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가 수색 선박을 한 척 투입하겠다던 무렵은 6월 11일. 사고가 난 지 이미 두 달이 지난 뒤였다. 앞으로도 희망적이지 않다. 허씨에 따르면, 지난 16일 새벽 1시부터 폴라리스쉬핑에서 계약한 선박이 수색 중에 있다고 한다. 24일엔 외교부와 계약한 선박이 현장에 도착해 수색에 나선다. 그러나 7월 5일, 선사가 투입한 배가 철수할 예정이다.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 한 척의 배만 가지고 망망대해를 수색해야 한다.

"해수부에 선사가 책임을 지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냐고 물었더니 민간의 일이라 강하게 밀어붙일 수 없다고 해요. 그러면 사고 원인을 제공한 선사의 배는 수색에 한 척도 투입되지 않은 상황인데, 정부가 계약한 선박 한 척만으로 수색하는 걸 가지고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집중 수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수색이 제대로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지인도 계신데, 결코 아닙니다."

 일등항해사 박성백 어머니 윤미자씨. 이영문씨와 함께,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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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되풀이 끝나야... 세월호 유족과의 '연대'

이런 가운데 '스텔라 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은 가장 먼저 배의 노후가 꼽히고 있다. 1993년에 유조선으로 건조된 데이지호는 지난 2007년, 개조를 거쳐 벌크선으로 모습을 바꿨다. 문제는 이 같은 배 수십여 척이 항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허씨는 참사의 반복을 우려했다.

"데이지호 선체는 일본에서 건조됐지만 중국에서 개조가 됐다고 해요. 전 세계 50~60척이 있다고 하는데요. 심각한 건 이 중 우리나라에 같은 배가 29척이 있고, 폴라리스쉬핑이 18척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 배가 처음 사고 난 게 데이지호예요. 안전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사고 날 우려가 계속 있는 거죠."

맨몸으로 시위에 나선 허씨 가족은 생계에 타격을 입었다.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출근을 못하니 일터에서 나와야 했고, 여동생도 비슷한 전철을 밟아야 했다. 아버지는 자영업자이지만 피켓 시위에 나서면서 석 달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다. 허씨는 "이 정도는 괜찮은 편에 속한다"며 "다른 가족은 친정에 돈 빌려 버티는 분도 계시다"고 토로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실종된 것도 억울한데, 모든 짐을 가족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황. 이 또한 세월호 유족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군가는 세월호를 기억에서 떠나보내자는 얘기를 하지만, 데이지호가 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실종자 가족과 세월호 유족은 광화문에서 향후 일정 등을 공유하며 손을 맞잡고 있었다. 허씨는 "이 일을 부디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족들에게 수색 계획을 7월 11일까지만 밝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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