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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증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14.3.18)
    쓴 기사/학보사 2017. 11. 15. 01:46

    중증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수술실, 그 생생한 현장의 기록
    “혹시 피 보면 기절하거나 그러진 않으시죠?”


    지난 2월 10일(월), 인터뷰 차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병원을 방문한 기자와 동행기자를 맞이한 어느 병원 코디네이터가 대뜸 건넨 한마디였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입장한 수술실에는 20여 명의 의료진들이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엔 60대로 추정되는 여환자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창한 복부를 가르고, 뱃속에 고인 피를 빨아들이고, 장기 곳곳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사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중증외과의사 이국종 교수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수술한 지 20분이 지났을까. 환자의 활력징후(환자의 체온, 맥박, 혈압 등의 측정값)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이내 환자에게 심장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열린 복부 사이로 심장을 직접 만져 가며 마사지를 했지만, 과다출혈로 인해 심장 안에 피가 부족해져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이국종 교수는 환자의 사위를 수술실 안으로 불러들어 상황을 설명했다. 사위는 피투성이인 장모의 모습을 보며 암담한 표정을 지었고, 이 교수는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이후 몇 번의 심폐소생술이 진행됐지만, 환자는 결국 오전 11시경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다음날, 본지의 기자들은 아주대병원을 다시 찾았다. 전날 연이은 수술 일정 때문에 이국종 교수가 미처 인터뷰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국종 교수의 회진에 따라가 보기로 했다. 회진이 시작되는 오전 10시경. 약 20여 명의 환자들이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인공호흡관이나 투석기 같은 수많은 의료장비들과 링거가 뒤섞여 꽂혀 있었다. 이 교수는 환자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환자 사진들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1월 1일 벽두부터 전라도에서 온 20대 여환자도 있었다. 대정맥이 터지고, 간이 터지고, 비장도 터져나갔지만 그녀는 용케 살아나 지난밤 2차 수술을 받았다. “죽을 줄 알았는데 견디더라고. 헬리콥터로 실어오지 않았음 죽었을 거예요. 어제 그 환자도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평범했던 외과의사에서
    ‘열혈 외상외과 의사’로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 의대를 나와 미국과 영국의 병원 내 외상외과에서 연수를 마친 뒤 현재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센터장 및 외상외과 과장으로 있다. 중증외상센터란 치명적인 외상을 입은 다발성 골절 및 출혈 환자(중증외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센터를 일컫는 말로, 응급의료센터의 상위 개념이다.1) 이 교수는 지난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직후 총상을 입은 ‘삼호쥬얼리’호의 선장 석해균 씨를 살린 ‘영웅’이며, 지난 2012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골든타임’의 주인공인 최인혁 교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상파 방송에 몇 번 전파를 타고 난 후 그는 국내 최고의 외상외과 전문의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주로 암 수술을 하던 평범한 그가 외상외과 의사가 된 특별한 계기는 의외로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이쪽 일을 권유해서 시작한 게 2003년이에요. 나도 그 전까진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냥 직장 잡으려고 시작한 거죠” 


    그러나 그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의사’다. 그는 헬기장 설치를 병원장에게 권유했다가 거절당하자, 병원 앞 실외주차장이 있는 빈 공간에 H자를 그려 직접 헬기착륙장소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헬기가 착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 한국 헬기들은 착륙을 하지 않았고, 미군 군용기가 실어오는 주한 미군만 수술했다. 내국인 환자들이 헬기로 이송돼 온 건 ‘석 선장’ 사건으로 알려진 이후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한 곳만 다친 경우가 거의 없고 서너 개 장기가 ‘콰지직’하고 깨지고 짓이겨지는 건데,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응급차 안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얼마 못 버텨요” 지난해 기준 아주대병원에 헬기로 이송된 환자는 약 70여 명. 차량 정체가 심한 구간, 그것도 의료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응급차로 이송됐다면 많은 환자들이 도중에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골든타임(사고 후 환자가 회생할 가능성이 높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이 교수는 직접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한다. 벼락이 치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는 헬기 조종사도 출동을 꺼려하기 마련이지만, 이 교수는 어느 정도의 위험은 늘 감수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사활이 걸린 문제잖아요. 말로만 ‘살려야 한다’ 하지 말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직접 행동에 옮겨야지. 여러분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지 말고 본인이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당장은 손실, 그러나 살려내면 
    어떻게든 사회에 기여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분석한 ‘2009 표본병원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에 따르면, 노동직이 외상을 입을 확률은 사무직보다 약 25% 높았다.2) 이 교수의 말에 따르면 공사판 같이 위험한 곳에서 일하다 사고가 발생해 오는 중증외상환자들이 많은데, 이들 중 다수가 수술비를 지불할 형편이 되지 않아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 저렴한 국산 약물을 써서 환자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환자들을 살려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월 1일에 올라온 20대 환자 그 분도 사회에 복귀를 해서 일을 하면 세금을 내고, 또 나중에 결혼을 하면 아이도 낳겠죠? 그리고 그 자녀들이 또 후손을 낳을 거고... 그런데 그 환자가 죽는다면 얼마나 큰 사회적 손실이냐구요. 그런 사람들을 다 살려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때로는 생명에 대한 그의 끈질긴 집착이 수술비를 낮추려는 그의 바람과 상충될 때도 있다. 어떤 보호자에게 ‘가망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수술했냐’며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지만, 그는 보호자에게 희망을 놓지 말라고 설득한다. 수술 도중 보호자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보호자의 의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외상환자들은 갑자기 발생한 환자들이라 내가 보호자와 마주칠 기회가 없거든. 보호자와 눈을 마주치고 환자를 살릴 의지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해요. 그리고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을 해야 돼요”


    미국·일본 등 선진 중증외상관리 

    시스템 … 한국은 ‘걸음마’ 단계


    우리나라의 중증외상관리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았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러지 못해 사망한 비율을 ‘예방 가능 사망률(이하 예방률)’이라 하는데, 2010년 기준 국내 주요 20개 응급의료기관의 사망 환자 446명을 분석한 결과 예방률은 35.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3)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 예방률이 10%를 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예방률이 약 8~9%라고 알려진 미국의 메릴랜드 주 같은 경우 어느 위치에서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18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주는 미국의 주 중에서 작은 편이지만 면적을 따져보면 경기도의 3배가 넘는다. 이국종 교수는 우리나라의 높은 예방률에 대해 ‘우리나라는 중증외상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환자들이 제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를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병원에 우선적으로 보내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전문 인력이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곳이 많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환자의 골든타임이 소비되죠. 옮겨진다 해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외상외과는 환자가 언제 발생할지 몰라 의사들이 항상 대기해야 하고, 수술시 다뤄야 할 신체부위가 많기 때문에 의사들이 외상외과로 오길 꺼려하거든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외상환자의 예방률을 낮추고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설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재작년부터 시행된 이 사업은 재작년에 5곳, 지난해의 경우 4곳의 의료기관을 선정했고, 인프라 확충을 위한 지원금과 인력 확보 및 이송체계 구축을 위한 운영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지원기관으로 선정돼 설계비와 장비구입비 등으로 국비 80억원을 지원받았고, 오는 2015년 권역외상센터가 완공될 때까지 총 국비 21억원과 도비 20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정부에서는 권역외상센터가 가동되면 2020년까지 예방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 교수는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시설확충, 즉 ‘하드웨어’는 금방 완성될지 몰라도 전문 인력인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아직 멀었어요. 이제야 밑바탕이 마련되기 시작한거죠” 


    “도전이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기자가 ‘도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이국종 교수는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무엇이든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어요. 도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안 되면 어떻게든 되게끔 하려는 노력. 버텨보고, 없으면 때워서라도 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저는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은 그릇이 작다며 스스로를 낮추던 이국종 의사.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주인공 존은 그의 어린 친구 매튜에게 “영웅이란 총에 맞고, 이혼하고, 혼자 밥을 먹게 되는 그저 쓸쓸한 존재”라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계속 하냐는 매튜의 물음에 “왜냐하면 아무도 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라고 답한다. 그 말에 매튜는 이렇게 답한다. “That’s what makes you that guy(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영웅입니다.)” 매튜가 던졌던 대사를, 기자도 이국종 교수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영웅입니다” 생명에 대한 끈질긴 집착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을 향한’ 의사 이국종. 그의 아름다운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8499&cid=204&categoryId=204
    2)김기태, 「“이 사람, 살려만 달라”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한겨레21, 2010
    3)송옥진, 「운명의 1시간 무색… 중증 외상환자 '응급실→ 수술실' 4시간 소요」, 한국일보, 2013

    글/ 임연수 기자
    dustn0775@kookmin.ac.kr
    사진/ 고동완 기자
    kodongwa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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