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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광수 감독 연구(3) 첫 장편 데뷔작 <칠수와 만수>
    생각/영화 2020. 4. 29. 23:06

      다만 박광수는 충무로 제도권 영화들로부터 덜 영향을 받은 감독이었다. 영화의 사조를 접하게 된 건 ‘얄랴셩’ 활동과 프랑스의 유학을 통해서였고, 이장호 밑에서 잠시 연출을 하기도 했으나 이는 일시적이었다. 박광수는 87년을 끝으로 첫 장편 데뷔를 위해 제작 구상에 착수한다. 그것은 <칠수와 만수>였다. <칠수와 만수>는 대만 작가 황준민 단편소설 <두 페인트공>을 각색한 것으로, 박광수가 활동했던 연우무대는 이를 희곡으로 무대에 올렸었다. 당시 <칠수와 만수>에서 칠수역을 하던 배우는 문성근이었지만 박광수는 영화에 연우무대의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대신 안성기와 박중훈을 주연으로 했다.

     

    1988년 개봉한 <칠수와 만수>는 <판놀이 아리랑>에 이은 박광수의 또 다른 실험터였다.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에서 정적인 화면에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기법을 택하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흔하지 않은 촬영 기법이었다. 오죽하면 이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영길 촬영감독과 제작 도중 불화로 인해 박광수가 직접 장면을 찍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겠는가(정서희, 「88 올림픽의 이면, 응답하라」, 맥스무비, 2016.08.16). 완성본을 본 유영길 감독은 박광수와 화해를 하고, 죽는 날까지 박광수와 영화 작업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매끈하게 펼쳐진 도심 도로 주변을 두르며 시작한다. 88 올림픽을 앞둔 시기, 50년대와 60년대에 견주면 한국인의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이를 방증하듯, 도시에 군데군데 보였던 판자촌은 온데간데없고, 고층 건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도로에 펼쳐진 차들은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에 동화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칠수(박중훈 역)와 만수(안성기 역)다. 

     

    칠수는 미국으로 간 누나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만수는 대기업에 근무하다 ‘연좌제’에 걸려 해고를 당한 뒤 극장 간판을 그리며 삶을 연명한다. 칠수는 패기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약간의 허세끼도 있지만, 역시 만수처럼 간판을 그리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삶의 자존은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미모의 한 대학생 여성, 지나(배종옥 분)에게 작업을 건 칠수는 남루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나가 일하는 곳은 패스트푸드점. 칠수도 자연스레 패스트푸드점을 들락날락한다. 

     

     

    그런데 패스트푸드점과 칠수의 삶은 불균질해보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이들은 대개 옷차림이 정정하지만 칠수는 헐렁한 옷차림에 콜라 하나를 주문하는 것도 금전적 한계에 당혹해 한다. 경제 성장의 과실로 패스트푸드의 유입이 잇따랐고, 먹거리는 다변화됐지만 그 혜택을 보는 건 사회의 기층민이 아닌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이를 웅변하듯,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칠수를 자주 비추며 마치 패스트푸드점과 칠수를 대비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안긴다. 

     

    칠수의 패기에 웃음이 피기도 하지만 이렇게 대비되는 현실을 목도한 관객은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이란 장소, 그곳에서 근무하는 지나에 대한 칠수의 사랑을 통해 박광수는 ‘블랙코미디’의 기운을 전달한다. 이러한 대비는 현재도 유효한 것으로, 장소와 삶, 사랑과 삶의 대비로 사회 현실에 대한 주제 의식을 끌어내는 박광수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칠수는 결국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누나의 연락도 사실상 끊겼다. 아버지는 술독에 빠져 있다. 만수는 어떤가. 아버지의 좌익 경력이 문제가 되어 본인의 경제력을 잃어버리고 만 만수는 거대한 역사의 체계 앞에 소인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리는 일도 일거리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분단의 고통 가운데 아버지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소외된 만수, 그나마 있는 패기로 사회 현실에 부닥치려 하지만 좀처럼 녹록치 않은 현실에 방황하는 청년 칠수의 모습은 박광수의 영화가 향하려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백미는 광고탑에서 벌어진다. 모처럼 일감을 맡은 칠수와 만수는 광고탑 꼭대기에 올라가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경찰과 사람들, 언론은 이들을 ‘시위꾼’으로 여기고, 급기야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해 이들을 끌어내리려 한다. 광고탑에서 칠수와 만수는 그저 신세 한탄을 위해 올라간 것이라 고래고래 외치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광고탑과 그 아래는 꼭 별도의 세계마냥 단절된 것처럼 보인다. 사회의 기층민이 외쳐본들 그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현실을 영화는 공간에 대입하여 풀어낸 것이다. 


      만수는 광고탑을 둘러싼 경찰들을 내려다보며 “모든 게 이런 식이야”라고 울분을 토한다. 그들의 얘기가 속할 곳은 광고탑 위에 말곤 아무 데도 없다. 광고탑 위는 하늘뿐이다. 그들의 주장은 곧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걸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와 사회 체계가 진일보하고 있다지만 기층민과 사회와의 소통 단절은 누군가의 고립을 잔존시키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향유해야 할 삶을 특정 누군가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린다. 박광수는 분단의식과 약자를 주목하려는 시선을 결합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칠수와 만수>에 투영해낸 것이다.

     

    <칠수와 만수>를 통해 보인 공간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결합, 그저 비애만 가득한 슬픈 것이 아니라 ‘웃픈(웃음+슬픔)’ 현실의 조망은 감독의 대중성을 확인시켜주는 요소였다. 이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 박광수는 서울의 한 추운 자취방에서 자취를 하며 박중훈과 작품 해석을 함께하는 등 영화를 열정적으로 준비했다고 전해진다(박중훈, 「칠수, A매치 데뷔골의 감격」, 씨네21, 2009.03.06.).


     박광수의 영화 열정이 반영된 <칠수와 만수>는 세상 밖으로 나온 지 3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 보더라도 장면의 촌스러움이 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것이었다. 영화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년비평가상을 수상하고,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에서 합을 맞춘 안성기와 박중훈의 첫 공동 출연작이기도 하다.

     

    다만 본 연구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영화는 관객 7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쳐 흥행에서 실패했는데, 박광수 감독은 영화사가 올림픽을 앞두고 <전쟁과 평화>라는 소련 영화를 수입했고, 그것이 이슈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칠수와 만수>를 소홀히 취급한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이영진, 「6년 만의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준비 중인 박광수 감독」, 씨네21, 200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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