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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광수 감독 연구(10) 가장 최근작, 2007년 <눈부신 날에>
    생각/영화 2020. 5. 7. 21:18

      <눈부신 날에>는 전작들과 달리 박광수가 기획한 게 아니다. 영화의 원안은 정훈탁 싸이더스HQ 대표가 냈고, 박광수 연출부에 속했던 김성수 감독을 통해 정 대표가 연출 의뢰를 해온 것이다. 박광수는 변화가 필요하던 시기, 이런 유형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주제도 의미가 있어 시작했다고 밝혔다. 배장수, 「8년만의 신작 ‘눈부신 날에’ 박광수 감독」, 스포츠경향, 2007.04.20. 그러나 이 영화 또한 <이재수의 난>과 마찬가지로 평단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비판의 기저엔 문제의식이 약화된 진부함에 있었던 탓에 가벼이 넘어갈 비판이 아니었다. 박광수가 8년 만에 장편 복귀를 선언했을 때, 과거 박광수 영화들을 봐왔던 이들은 기대를 감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대치는 안타깝게도 못 미치고 말았다. <눈부신 날>의 주인공으론 박신양이 캐스팅됐다. 야바위판이나 사기로 생계를 꾸려가는 우종대(박신양 역) 앞에 보육원에서 일하는 선영(예지원 역)이 등장한다. 선역은 종대에게 7살 딸이 있다 알리며, 딸(서신애 역)과 잠시 살아 달라 끈질기게 요구하고, 종대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한다. 그러다가 종대는 딸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고, 본인의 눈 또한 실명의 위기에 처한 걸 알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지점은 서사의 구조다. 출생의 비밀과 시한부 인생이란 내용은 2007년 영화가 개봉하던 시점에선 생경한 게 아니었다. 당연히 관객의 입장에선 새로울 것이 없었고, 발길을 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영화에 박광수 특유의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란 우종대 역시 생계가 막막하던 차에 사기나 협잡 노릇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물이다. 박광수의 시선은 우종대에 집중되어 있고, 전작 작품들에서 보여 왔던 간접 화법은 <눈부신 날에>에선 상당 부분 상쇄된다. 이는 우종대의 가감 없는 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박신양은 대사로 상황과 맥락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또 직설적인 화법과 표정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상황을 바로 인지하는 배경이 된다. <빤스 벗고 덤벼라>에서 본격 달라진 컷의 짧아짐도 다시 재현됐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에도 관객의 반응이 미지근했던 건 역시나 시나리오의 진부성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려 했건만,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이야기가 족쇄가 되고 만 것이다. 박광수도 나름의 딜레마를 인식했을 것이다. 전작들처럼 기존의 서사를 안고 가자니, 투자자의 개입 등으로 개봉을 하기가 힘들고, 변화를 추구하자니 대중과의 접점에서 더 멀어지는 상황 말이다.

     

      박광수는 <눈부신 날에> 개봉 이후 “다음 영화는 신인 감독이 데뷔하는 영화처럼 만들고 싶어요. 주제나 소재 부분에서도, 지금 시대에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부분을 문제 제기하고 싶고요. 기술적,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걸 내놓고 싶어요”라며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검열도 없죠. 제가 예전에 맡아야 했던 영역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 영역을 다시 빼앗을 생각은 없어요. 이젠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죠”라고 밝혔다. 김형석, 「영화감독 박광수」, 네이버캐스트, 200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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