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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광수 감독 연구(5) 첫 ‘올로케이션’ 촬영, <베를린리포트>
    생각/영화 2020. 5. 1. 20:01

      박광수가 향한 곳은 이제 ‘해외’였다. 해외는 ‘프랑스’와 ‘베를린’이었다. 박광수의 세 번째 장편 영화는 1991년 6월 개봉한 <베를린리포트>였다. 제작은 1990년 12월 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그 해 10월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통일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박광수는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파리로 출국하기 전,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며, 이 사랑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하나의 감성적 대안 「분단의 아픔조명 ‘베를린 리포트’ 눈길」, 한겨레, 1990.12.23. ”이라며 영화의 제작 의도를 분명히 했다. 

     

      즉, 냉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화해의 물결이 찾아온 이 때, 독일의 통일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보자는 의도였다. 영화는 제작에 들어가면서부터 화제를 남겼는데, 일단 투입되는 자원부터 박광수의 이전 작들과는 확연하게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영화의 제작비는 평균 3억에서 4억 원을 오가던 수준이었지만 <베를린리포트>의 제작비는 8억 원에 달했다. 김양삼, 「직배 영화 자극, 젊은 감독들 대작 만든다」, 경향신문. 1991.01.07.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촬영은 파리와 베를린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주연, 강수연의 출연비도 화제를 낳았다. 강수연이 맡은 역은 프랑스로 입양온 여성으로, 나치의 고문으로 성불구가 된 프랑스 입양부 베르나르로부터 폐쇄적으로 양육되다가 오빠가 양부를 살해하자 그 충격에 실어증에 걸리는 여성, 마리 알렌의 연기를 맡았다. 박광수는 “여주인공이 갖는 비극적 이미지를 때론 침묵으로 일관하는 강수연으로부터 발견, 영화에 캐스팅을 했다”고 밝혔다. 남달성, 「강수연 "불꽃연기로 신년인사"」, 동아일보, 1990.12.28.

     


      당시 강수연은 25살의 나이로 스타로 자리매김하던 터였다. <베를린리포트>에서 그가 받은 출연료만 적게는 7천만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는 배우의 출연료가 1억 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는 증표였다. 마리 알렌의 오빠로는 문성근, 마리 알렌과 오빠의 가교가 되어주는 기자역엔 안성기가 맡았다. 박광수는 그간의 성공을 토대로 마련한 인적, 물적 자원 위에서 <베를린리포트> 제작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박광수의 또 다른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박광수는 그동안 이어온 분단 의식의 소재를 <베를린리포트>에서도 투영하되, 그 전달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종전의 방식이 다소 직접적이었다면 <베를린리포트>에선 간접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예컨대 마리 알렌의 베르나르 살해 혐의 소식을 듣고 이에 흥미를 느낀 기자 성민(안성기 역)이 베르나르의 집 안을 둘러보면서 일본도나 나치의 목걸이를 주목하는 것은 사물을 통해 인물을 드러내는 간접의 방식이다.

     

      이를 통해 베르나르가 이른바 제국주의와 연관돼 있음을 일러주고, 베르나르로부터 억압을 받은 한국계 여성 마리 알렌은 제국주의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한국의 전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좌익 사상에 심취한 오빠 영철(문성근 역)은 베르나르를 살해한 뒤 동독으로 가버리나, 마리 알렌과 분절된 삶을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 성민은 마리 알렌과 영철의 만남을 주선해보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는 만남은 분단의 현실을 적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칠수와 만수>에서 공간의 분절로 인한 소통의 단절을 <베를린리포트>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 태생의 마리 알렌과 영철의 유럽 이주는 고국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의로 입양되어야 했던 역사의 반강제성이 드러난 것이다. 


      <베를린리포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박광수의 절제 의식이다. 양부의 변태 행위나 마리 알렌과 성민의 정사 장면을 영화는 직접 노출하기보다는 일정 선에서 생략을 택한다. 윤리적 미학을 녹여낸 것이다. 스토리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단 인물의 대사로 정보를 간헐적으로 흘림으로써 극의 구조를 쌓아간다는 점도 박광수가 <베를린리포트>에서 보여준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또 유럽 현지의 분위기를 장소와 영상의 색채를 통해 온전히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미학성도 평가할 부분이다. 이에 대해 박광수는 파리 방문에 앞서 “한 작품을 완성하는 훈련이나 끈질긴 집념이란 측면에서 미학에서 공부한 게 (영화 제작에) 도움이 된다”며 “색채감, 영상미 등에서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고 밝혔다. 김기만, 「통독열기 스크린에 담겠다」, 동아일보, 1990.12.27.
     
      다만 <베를린리포트>는 완성도에 비해 흥행에서 참패를 하고 만다. 그 이유엔 유럽에 주목한 배경의 생경함 등이 있을 테지만, 도리어 상업영화 스타일에서 비껴간 지나친 절제와 감정의 억제가 극의 동적임을 정적으로 바꿔놨고, 이로 인해 감동이나 흥미의 전달이 미진하고 말았다는 점이 꼽힌다. 김종원, 「베를린 리포트 풍부한 영상 언어」, 동아일보, 1991.06.21.


      사실 <베를린리포트>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박광수가 종전에서 보여 왔던 토착적 현실의 조망이 괴리된 탓이 없잖아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전작에서 다룬 칠수와 만수, 한태훈과 송영숙 등의 삶은 한국 사회 그 자체다. 그런데 <베를린리포트>의 마리 알렌과 영철에 대한 극중 설정은 토착의 문제를 베를린에 인위적으로 대입한 데서 비롯됐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서독과 동독의 분단이 한반도의 분단과 등치할 순 없다는 걸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영화의 관객이 <베를린리포트>에 쉽사리 동화되지 못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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