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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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호] 대학과 총학이 생각해봐야 할 세 가지쓴 기사/학보사 2014. 5. 31. 17:28
[909호-기자의 눈] 대학과 총학이 생각해봐야 할 세 가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에서의 펜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 왔다. 사회가 굴곡을 겪으며 빠르게 요동치듯이, 우리학교도 지난 1년간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대학 환경은 급변하고, 학생사회도 시류에 응답하며 변화해왔다. 높아가는 변화의 속도에 비례해 도전의 파고도 드세지는 가운데, 우리학교와 학생사회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먼저 우리학교가 생각해봐야 할 대목에는 ‘소통’이 있다. 설계가 마무리된 이후에야 학생 대표에게 공간의 배정을 통보하는 소통의 문제부터 이야기해보겠다. 기존 복지관 디자인도서관 자리에 학생자치공간을 확충하려 했던 동아리연합회의 계획은 콘서바토리가 입주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무산됐다.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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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호] “강사 처우 개선은 학생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것”쓴 기사/학보사 2014. 5. 31. 17:27
[909호-2면]“강사 처우 개선은 학생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것”강사노조, 강의료 인상과 계약 연장 요구… 학교 “등록금 감소 추세로 어려운 부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경상관 5층 출입구에서는 시간강사의 강의료와 4개월 계약을 문제 삼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표지판을 작성해 붙인 사람은 황효일(국문·80학번)강사이다. 2011년부터 황 씨는 현행 4만 5천원인 시간당 강의료의 인상과 4개월로 체결된 계약기간의 연장을 요구하며 많게는 일주일에 3번 시위를 해 오고 있다.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국민대 분회를 발족시킨 황효일 강사는 그간 수십 차례 학교와 요구 사항에 관해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지난해 강사료가 5천원 인상된 것 외에는 논의의 진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강의료는 인상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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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도전문채널의 위기와 과제미디어/담론 2014. 5. 24. 12:47
90년대 자본잠식과 IMF, 매각 등 위기의 연속… 공정·심층·탄력의 과제 남아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루 24시간 동안 방송으로 뉴스를 내보내는 보도전문채널은 ‘YTN’과 ‘뉴스Y’뿐이다. 그간 24시간 뉴스 채널은 지상파 중심으로 편성되던 방송뉴스의 시간 제약을 타파했으며, 해외 700만 동포에게는 현지와의 시간차로 인한 방송뉴스 시청의 어려움을 극복시켜줬다. 또한 국민에게 국가 재난 사고 등 중대사를 24시간 속보 체제로 실시간 알림으로써 국민의 눈과 귀가 돼왔다. 이러한 의의를 바탕으로 24시간 뉴스 채널은 출범 19년 만에 한국언론학회 회원 대상 조사에서 ‘유용한 미디어 2위’로 이름을 올리는 등 양과 질적 측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95년 YTN 개국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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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력관(공학관) 골조 공사 재개쓴 기사/학보사 2014. 5. 17. 15:28
[속보] 산학협력관(공학관) 골조 공사 재개 4월 초부터 중단됐던 골조 공사가 다시 재개됐다. 쌍용건설은 그간 골조 공사를 맡아온 한 협력업체에 대해서 공사비를 미지급함에 따라, 골조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산학협력관 일부 지역의 증축이 중단되고 건설 현장에 유치막 현수막이 걸리는 등 공사 진행의 차질이 빚어졌었다. 골조 공사가 중단되는 동안, 골조 공사가 완료된 도서관의 내부 공사와 산학협력관 일부 지역의 외벽 공사가 이뤄져왔다. 고동완 기자 kodongwa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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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학의 기틀을 다진 해공 신익희 선생의 58주기 추모식쓴 기사/학보사 2014. 5. 5. 18:21
지난 1956년 5월 5일 서거한 신익희 선생의 추모식이 오늘 수유리 묘전에서 열렸다. 이 날 추모식에는 우리학교 유지수 총장과 김채겸 이사장을 비롯, 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 박관용 회장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 내외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낭독과 헌화 및 분향이 진행됐다. 추모사에서 유지수 총장은 "신익희 선생께선 광복 이후 민족사학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해 오늘의 국민대학교를 건립하셨다"며 "선생님께서 남기신 숭고한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국민대를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발전시킬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지난 1946년 임시정부 요인과 힘을 합쳐 국민대를 세운 신익희 선생은 3.1 운동이 열리던 해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국호, 임시 헌장을 의결 선포하는 등 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