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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은 통하지 않는다생각/단상 2016. 9. 30. 01:00
이대 평생교육 논란을 두고 본질을 흐리는 얘기가 최근에도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다. 등록금 동결의 장기화로 대학이 재정 악화를 막고자 불가피하게 평생교육을 추진했고 결국 이 같은 논란이 촉발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출구가 뾰족하지 않은 지방 사립대면 몰라도 이를 이대와 연결 짓는 모습들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평생교육으로 얻을 이익은 기껏해야 매년 수십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얻으려고 사업을 감행할 만큼 이대의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단 말인가.
지난 6월 서울 10개 사립대 총장들이 모여 '미래대학포럼'을 발족했다. 첫 포럼에서 총장들은 등록금 책정의 자율화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여기서 고려대 총장은 "미국의 주요 사립대에 비해 한국 사립대 등록금은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10개 대학엔 고려대뿐 아니라 연세대, 중앙대, 성균관대, 숙명여대가 참여했고 평생교육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이화여대도 당시 동참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대의 재정 상황은 전국 대학 중 손꼽힐 정도로 풍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적립금 규모만 7066억원으로 전국 4년제 중 2위에 올라있다. 이대는 2010년 6569억원에서 2014년엔 7319억원으로 등록금 동결 이슈가 화두이던 기간에 750억 가량을 새로 적립했다. 마곡엔 총 6천억이 소요될 병원과 의대를 짓고 있고 캠퍼스엔 2천억 기숙사를 짓는 등 다른 대학에선 엄두도 못 낼 대형 건설 사업도 활발히 진행했다.
포럼에서 등록금 자율화를 외쳤던 고대와 연대, 숙명여대는 2015년 기준 적립금 2천억원을 넘기며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중앙대는 1185억원을 들여 최근 경영경제관 공사를 마무리짓고 입시철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는 중이다. 대학들은 이처럼 몸집을 거침없이 불려나가고 있지만, 매학기 4백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내는 대다수 학생들은 지금 받는 강의의 질이든 대학 졸업 뒤의 미래든 어느 하나 나아진다는 얘기가 없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2014년 말 취재 당시 적립금 랭킹 3위였던 홍익대는 6천억원대 적립금으로 이자수입만 해마다 200~300억원을 올리고, 학생들이 낸 등록금 상당 부분이 이월돼 해마다 수백억의 적립금을 새로 쌓았다. 인터뷰에 응한 이 대학 학생은 "서울 20개 대학 중 2013년 기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7위, 1인당 교육비는 18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캠퍼스를 둘러보니 건물은 균열 가고 책걸상은 80~90년대에 멈춰 지금 대학생 체구와는 맞지 않았다. 지난 8월 새로 갱신된 사학진흥재단 통계에 따르면 홍대는 2015년 적립금 7천억을 넘기고 랭킹 1위에 등극했다.
당장 대학 재정 지원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대학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학생 규모가 작아 등록금 수입에서 열세를 보이는 소규모 사립대나 위치의 불리함으로 어려움에 처한 지방대학들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학들 사정은 각기 다르고 특히 서울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간판이라는 유인력을 갖춰 재정이 평탄한 대학들의 지금과 같은 외침은 엄살, 아니 꾀병으로 들린다. 결국 이 같은 것이 불신을 자초하고 오늘에 이르는 사태의 동력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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