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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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티스트>, 영화의 미덕, 본질생각/영화 2020. 5. 4. 22:58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본질이 그것이다.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들 한다. 미디어, 특히 저널리즘이 그렇다.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는 어떤 기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콘텐츠의 충실성과 취재의 진실성에서 비롯된다. 본질을 두고 해석이 천차만별이었다면 저널리즘의 신뢰를 높일 방안의 경우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비교적 명확하다. 본질의 영역은 제한적이지 않지만,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영역이 분명 있다. 비단 저널리즘뿐 아니라 사람의 인심을 얻는 행위와 관련된 산업에는 본질이 존재한다. 백종원이 음식점을 탐방하며 지적하는 내용은 대개 본질과 관련한 것이다. 맛과 서비스의 질이 낮으면 본질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다만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는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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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연구(7) 역사적 인물에 조명을 하기 시작한 박광수생각/영화 2020. 5. 4. 22:49
박광수는 현대사에서 다뤄볼 법한, 그러나 아직 다루지 못한 인물에 대한 조망으로 다음 영화를 골랐다. 그 시작은 1995년 영화 이었다. 전태일이란 인물은 박광수가 추구하려 했던 약자에 대한 시선, 인간 그 자체보다 분단 이데올로기에 우위를 두면서 생겨나는 부조리, 그리고 사회 의식적인 부분과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전태일의 분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 물음을 낳은 것이었다. 분신은 노동 실태를 전면에 알리고, 노동운동의 불쏘시개가 됐지만 과중한 노동 시간과 메탄올 실명과 같은 노동자의 재해가 반복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노동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안겨주는 매개가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박광수가 영화의 소재로 전태일을 고른 건 박광수 본연의 색채와 의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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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연구(6) 피해자의 서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 섬에 가고 싶다>생각/영화 2020. 5. 3. 23:28
박광수도 이를 고민했는지 다시 국내에 집중한다. 박광수는 다시 한 번 ‘공간’에 집중하는데, 이번엔 섬이었다. 1993년 영화 다. 는 임철우의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것으로, 박광수는 임철우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여 섬이란 장소를 통해 분단 의식의 장르를 잇는다. 영화는 첨예한 갈등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문덕배(문성근 역)의 아들, 문덕구(문덕배 역과 동일)는 유언에 따라 죽은 문덕배를 배에 싣고 고향이었던 섬으로 오려 한다. 그러나 무슨 영문에선지 섬사람들은 문덕배를 받아들이는 데 극렬히 반대하고, 그나마 섬에 당도한 김철(안싱기 역)에 의해 회상이 펼쳐지면서 관객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문덕배는 자신의 부인과 자녀를 돌보지 않다가 외도를 하여 정을 통한 여성을 임신하게 하고, 부인이 죽자 그 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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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연구(5) 첫 ‘올로케이션’ 촬영, <베를린리포트>생각/영화 2020. 5. 1. 20:01
박광수가 향한 곳은 이제 ‘해외’였다. 해외는 ‘프랑스’와 ‘베를린’이었다. 박광수의 세 번째 장편 영화는 1991년 6월 개봉한 였다. 제작은 1990년 12월 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그 해 10월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통일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박광수는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파리로 출국하기 전,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며, 이 사랑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하나의 감성적 대안 「분단의 아픔조명 ‘베를린 리포트’ 눈길」, 한겨레, 1990.12.23. ”이라며 영화의 제작 의도를 분명히 했다. 즉, 냉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화해의 물결이 찾아온 이 때, 독일의 통일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보자는 의도였다. 영화는 제작에 들어가면서부터 화제를 남겼는데, 일단 투입되는 자원부터 박광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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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신구라>,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2017)생각/영화 2020. 4. 30. 22:28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인간은 오래도록 번민을 거듭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한 것처럼, 생사를 선택하는 건 인간의 난제였다. 인간은 본디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죽음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사후 세계를 전해 듣고 이승으로 돌아와 말해준 인간은 지금껏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승과 사후의 단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한층 고양한다. 어떤 문제를 정면 돌파할 때, ‘죽기 살기로 각오한다’는 말이 입길에 굳어진 것은 죽는다는 행위가 극도의 도전을 요구한다는 것을 사뭇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태어나면 무릇 죽게 돼 있다. 그러나 죽음의 흐름을 거슬러, 인간은 “죽어보겠다”며 죽음에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