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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에서 걸그룹 춤만 추다가... 죽고 싶었다" (4.14)
    쓴 기사/기고 2015. 4. 19. 01:42


    내 친구가 당한 군대 폭력... "지금 시스템으론 군대 폭력 해결 어려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7701


    [오마이뉴스 고동완 기자]

    2013년 10월. 난 대학생 1학년이었고 친구는 군인이었다. 입시를 앞두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탓인지, 중학생 때 처음 만난 그 친구를 고등학생이 되고서부터 못 만났다. 내가 재수를 할 때, 친구는 군에 입대했다. 친구는 게임에 푹 빠져 있었던 탓에 입시에 실패한 뒤, 재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또 게임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해 군으로 갔다. 

    한동안 그 친구와는 연락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러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 친구가 곧 휴가를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연락이 이어져 만난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국밥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직 미필자였던 나는 친구에게 군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친구는 대뜸 군에서 자살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친구가 바깥과 격리된 군에서 적응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서 그랬나 보구나'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는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자살을 하려 했다는 얘기를 했다. '하고 싶었다'도 아니고, '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왜 자살을 하려 했을까. 단지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건 아닐 성 싶었다. 그 의문을 풀어보려고 하니, 친구는 선임 문제라고 간략하게 상황만 말하고, 더 깊은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했다. 아무래도 당시엔 복무 중이라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  군대 내 가혹행위를 소재로 만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그 뒤 친구는 그 해 11월쯤 병장으로 제대를 하고, 수능 준비에 열중했다. 그 기간, 1년 반 정도 연락이 끊겼다. 그러던 친구가 올해 초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연락을 해 왔다. 친구와 오랜 만에 재회를 했다. 이번에도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를 하다가, 군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친구는 1년 전보다 확연히 좋아진 표정으로 군 생활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군에서 왜 자살을 하려 했는지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군 얘기를 들으면서 친구에게 그 얘기를 세상 밖으로 던져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누군가의 폭력, 혹은 모욕으로 자살 충동이 생겼다면? 그리고 갇힌 공간에서 그 충동을 누군가 지속적으로 준다면? 윤 일병 사건을 비롯해 끊이질 않는 군 내부의 가혹행위 문제를 놓고 개선 방안들이 나왔지만 실효성이 과연 있는 것일까? 군 생활을 마친 제대자의 경험담을 빌려 이 문제를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무 중인 병사들이야 고충을 세상 밖으로 토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지난 4일, 친구와 저녁을 먹은 뒤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친구가 겪은 경험은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 같은, 아픈 것이었다. 친구가 경험한 일은 육체적 가혹의 정도가 크지 않았을 뿐, 세상을 경악하게 한 윤 일병 사건과 같이 '괴롭힘'이라는 맥락은 비슷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생활관으로 찾아와서 춤 춰보라고 시켰지"

    친구는 '동반입대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보통 군에 가려면 6개월도 기다려야 하지만, 동반입대병은 1~2개월만 기다리면 입대할 수 있다. 친구는 수능을 망친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군대에 가려고 학교에서 동반 입대할 사람을 찾았다. '이왕 수능도 망쳤는데, 군대 빨리 가려는 사람 있느냐'고 반에 말했더니, 친구 A가 가자고 한 것이다.

    그렇게 친구 A와 2012년 1월, 훈련소 생활을 시작하고, 2월 중순에 강원도 속초로 자대를 발령 받는다. 3월에 자대로 간 뒤 친구는 아무래도 막내니 시키는 건 다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그 '시키면 열심히 하자'는 건전한 생각이 이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친구는 생각도 못했다. 

    "4월 무렵이지. B 하사가 나한테 웃겨보라고 했어. 시키는 거에 충실하려고 최대한 웃기게 게임 주인공처럼 칼질하고, 총 쏘는 척을 했지. 그렇게 B 하사 눈에 띄게 됐어. B 하사가 처음엔 나를 재밌던 애로 여겼는지, 잘 챙겨주더라고. 그런데 점점 요구해지는 게 심해졌어. 언제는 B 하사가 부대원들 앞에서 걸그룹 춤을 춰보라고 하더라. 그런 지시가 거의 일상이었으니, 믿기지는 않겠지만 백 번 이상은 췄던 것 같아."

    친구는 아직 막내니까, 이등병이니까, 그런 지시를 따르는 걸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일병이 되어서도, 그런 지시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갔다고 한다. 친구는 "춤춰 보라는 지시도 달갑지 않았지만, 이등병 앞에서 그런 모습을 계속 내보이는 것도 힘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토로했다. 친구는 B 하사가 점점 싫어졌다.

    "B 하사는 시도 때도 없이 생활관으로 찾아와서 춤 춰보라고 시켰지. 그걸 보고 선임과 동기들은 웃고.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친구는 속으로 불만을 눌러오다가 동반 입대한 친구 A에게 B 하사에 대해 "악마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잠재된 분노를 어디 표현할 데가 없어 동반 입대한 친구에게 잠시 내보인 것이었다. 그런데 친구 A에게 말한 게 큰 화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더 집요해진 괴롭힘

    "6월 즈음이었어. 친구 A가 B 하사에게 내가 한 말을 이야기 한 거야. B 하사가 나를 부르더니 '내 뒷담 했어, 안 했어'라고 물어보더라고. 그때 그 심정이란…. 일단 난 모르겠다고 한 뒤 버티려고 했어. 그러더니 B 하사가 5분 대기조 발령을 내는 거야. 5분 대기조는 샤워 도중에도 바로 군복을 입고 5분 내로 나와야하는 걸 말해. 원래 5분 대기조 발령을 하기 전에는 미리 언질을 주거든. 이번엔 갑자기 발령을 낸 거지.

    선임들 포함, 40~50명이 다 나왔어. B 하사가 너희들 왜 부른 줄 아냐고 묻더니 자신을 뒷담화한 놈이 있다고 한 거야. 정말 그 때는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어. 만약 내가 이전처럼 모르겠다고 하면 그 하사는 5분 대기조 발령을 계속 낼 거고, 그럼 난 선임들한테 찍히는 거지. 악마 같다는 말을 했다고 시인을 했어. 그 뒤에 그 하사가 얼마나 나를 욕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을게."

    그 뒤로 친구는 집요한 괴롭힘에 시달린 건 물론이다.

    "동기는 5명이었어. 나는 B 하사 눈에 걸렸다 하면 괴롭힘을 당하는 거야. 어디로 오라 해놓고, 가보면 쓰레기 XX라 하고, 또 동기들 보고 모이라고 한 뒤, 온갖 욕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거지. 친구나 다름없는 동기들한테도 무시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린 거야. 선임하고 있으면 B 하사가 들어와 '나 뒷담화한 애 아니냐'고 하더니 춤 춰보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 30~40명 모인 데서 춤 춰야 하는 거지. 거절할 수도 없고…." 

    "좁은 사회에서 피할 데가 없잖아"

    ▲  군대 내 가혹행위를 소재로 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왜 거절을 할 수 없었을까. 

    "병사와 간부가 싸우게 되면 말 그대로 하극상이잖아. B 하사는 잘 나가는 상사여서, 반항하면 나도 망하는 거야. 일병까지 힘들게 왔고, 곧 상병이 될 텐데 간부하고 싸우면 다른 데로 전출 가야 하는 것도 있고. 군 생활을 열심히 한들, 다른 부대로 가게 되면 이등병한테도 인정 못 받고, 계급 대우를 못 받게 돼." 

    일종의 보상 심리도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거절 못하는 데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친구는 신고하는 것을 두고 '양날의 검'이란 표현을 썼다. 신고를 하면 나도 당한다는 말이다.

    "신고를 한다는 것도 양날의 검이야. 신고로 그 하사를 다른 부대로 가게 할 수는 있지만, 나도 매장당해. 마음의 편지 있잖아. 마음의 편지라 해놓고, 쓰면 누가 썼는지 소문이 다 나. 마음의 편지를 쓴 10명 중 8명은 걸렸어. 썼다 걸린 애들은 개XX 취급 받지. 선임들은 '나 때는 이런 거 버텼는데 나약한 놈', '찌른 놈인데 뭐 저런 놈하고 얘기하냐'는 식으로 대우해. 군대에서 그런 취급 받으면 정말 힘들어. 그 좁은 사회에서 피할 데가 없잖아."

    B 하사 전역은 10월이었다. 6월 즈음부터 집요한 괴롭힘을 당한 친구는 분노를 애써 감추고 조금만 참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기간, 친구는 "인격적으로 너무 모독을 당했다"라며 "내가 사람인가 광대인가 헷갈릴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B 하사를 죽이고, 나도 죽을까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B 하사가 전역할 때까지 친구는 염두에 둔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걸 참았다. 

    그러나 B 하사 전역 뒤에도 괴로운 상황이 또 반복됐다.  

    "10월에 C 하사가 왔어. C 하사는 편애가 심했어. 내가 그 다음해 3월에 상병이 됐거든. 어느 날엔 C 하사가 비가 온다고 해서 부대 천막을 덮을 비닐을 동기 5명 보고 챙기라고 그래. 그런데 5명 모두 준비물을 챙기는 걸 잊어 버렸어. 혼나는 건 당연했지. 5명 모두 혼내면 말을 안 해. 나하고 동기 D만 부대원들 앞에서 혼내고 욕하는 거야. 다른 부대원들 실수하면 웃어넘기는데 나하고 D가 혹시라도 실수하면 정색하면서 '뇌가 있느냐 없느냐'란 말로 난리를 폈지. 그렇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

    친구 말에 따르면, B 하사나 C 하사 모두 육체적인 폭력을 쓰지 않는 대신, 표적을 삼아 부대원들 앞에서 망신과 모욕을 줘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무자비한 언어폭력을 한 셈이다. 다행히 친구는 전역 몇 개월을 앞두고 C 하사가 속한 소대와는 다른 소대에 배치돼 C 하사와 만날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친구는 "그 이후 전역할 때까지 별 일 없었다"고 말했다.

    "난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친구는 문제가 있을 때 부모님에게도, 그나마 상담이 가능한 소대장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자기 아들이 힘들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난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난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전화하면 하나도 안 힘들다 하고. 부모님에게 죽고 싶다고 한들, 문제를 해결해 주실까. 부모님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단장에게 전화해서 난리 피는 정도일 텐데. 

    소대장과 상담을 하는 것도 그래. 소대장이 소위인데, 부사관 수가 많잖아. 소위가 부사관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피곤해져. 소대장이 머리라면 부사관들은 팔 다리야. 병사 하나 때문에 팔다리와 싸우고 싶겠어? 설문조사 할 때도 겪은 문제를 기록 안 했어. 익명으로 그 사람 나쁜 놈이니 처벌해 달라고 하면, 잡아갈 것 같아? 웬만한 부대원들이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할 텐데 눈치도 봐야 하니 잘 안 되잖아."

    국방부는 군 가혹행위 사건이 이슈가 된 이후, 인권 교육을 강화하고 장병들이 인터넷으로도 상담과 진정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 이에 지난 2월부터 '군 인권 지키미'란 서비스로 장병들의 상담과 진정을 받고 있다. 부대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런 개선책을 두고 친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용 없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인권 교육? 지금은 모르겠는데 동영상 보여주고 끝이었어. 교육을 한다고 쳐도, 고3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 공부 열심히 해? CCTV 설치한 곳에서 안 괴롭히면 그만이잖아. 상담을 한다는 것도 생각을 해보자. 인권 지키미에 너무 힘들다고 상담을 했어. 그러면 인권 지키미에서 사단장이나 헌병에게 연락을 할 거란 말이지. 누구와 갈등 있는지 부대원들이 대충 알잖아. 마음의 편지와 다를 게 없는 거야."

    4월, 봄꽃이 피는 이 때 갓 대학에 입학한 친구는 신입생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신입생이라는 설렘을 안고 기분은 나아졌겠지만, 기억을 2년 전으로 되돌리면 그 때의 악몽은 다시 살아 숨쉰다. 그리고 그 지워지지 않는 악몽은 다시 누군가에게 되풀이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군대라는 좁은 사회에서 24시간 생활하면서 속속들이 다 아는데... 신고를 한들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어? 지금의 군대 시스템으론 폭력을 해결하기 어려워." 

    ○ 편집|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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