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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광수 감독 연구(11) 박광수가 남긴 자산
    영화 2020. 5. 8. 18:51

      박광수의 고민은 ‘새로움’으로 응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2007년 <눈부신 날에> 개봉 이후 지금껏 신작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새로움’의 구현에 있어서 성에 못 미친 결과와 더불어, 참신한 시나리오로 신진 감독이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가 잠시 뒤로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겹쳐 벌어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박광수가 그간 추구해오던 약자에 대한 시선, 분단 의식 또한 박광수 연출부에서 일하던 이창동을 비롯한 후대 감독들이 추구해왔고, 또 시대 변화에 조응하는 영화들도 대거 나오고 있다. <칠수와 만수>와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영화가 당대 선구자 노릇을 했다면 현대에 들어와선 그런 평가를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한 균열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게 <이재수의 난>이었고, <눈부신 날에>는 도리어 과거작보다 퇴보했다는 평을 받으며 박광수는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야 했다.


      허나, 이런 실패들이 박광수 필모그래픽에 약점이 됐을지는 몰라도 박광수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자산은 귀중하고도 묵직한 것이다. 분단 의식과 함께, 사회 기층민과 노동 실태를 조합하여 ‘블랙코미디’를 구사한 <칠수와 만수>가 개봉하던 시기는 1988년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88올림픽을 앞두고 영화 검열이 사그라질 무렵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의 제작을 완료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부조리를 응축하면서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긴 <칠수와 만수>의 탄생은 당시 박광수의 시선이 없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사회 의식적 영화로 <칠수와 만수>에 이어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리포트>, <그 섬에 가고 싶다> 등 민감할 법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박광수만의 주제 의식을 지켜가려 했었다는 점은 영화가 그저 소비되는 문화 형태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사회 문제와 호흡하며 회자될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걸 각인시킨 동인이 됐다.

     


      박광수의 영화가 향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칠수와 만수>에선 한 명은 연좌제에 걸려 대기업에서 쫓겨난 뒤, 다른 한 명은 집안의 빈곤함에서 그림칠로 밥벌이하는 이를 그려냈고, <그들도 우리처럼>은 탄광 노동자의 현실과 당대 운동권의 고민을 예리하게 포착했으며, <베를린리포트>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분단 이후 40여년이 흘렀으나 영구화된 분단의 상흔을 논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선 남루한 생활상에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여공들과 함께하는 걸 주저함이 없었던 전태일의 의식을 그려냈고, <이재수의 난>에선 종교란 외피에 앞서 인간성에 천착했으며 <빤스 밧고 덤벼라>와 <얼굴값>에선 실험작이지만 여성의 인권을 탐구했다. 

     

      비록 평이 좋진 않았으나 박광수의 가장 최근작인 <눈부신 날에> 역시 밑바닥 인생의 삶을 조망했다. 박광수는 영화로 인간에 집중했고, 인간을 논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란 미명 하에 희생되어지는 인간상을 그리며, 인간애를 영화에 투영해냈다. 영화 산업의 급변과 시대 조류의 변화로 박광수의 영화가 잠시 빛을 바랬다고 평을 할 순 있어도, 박광수가 추구해온 인간에 대한 천착은 쉬 스러지지 않을 한국 영화계의 자산이다. 아울러 사회 의식적 영화 제작을 이어오면서 이창동과 김성수 같은 기라성의 감독이 성장할 토양을 제공해준 점은 박광수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또 다른 자산일 것이다. 그래서 박광수의 가장 최근작의 결과가 흥행 면에선 비록 실패의 길을 밟았지만 다음 행보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본 연구의 진행

      본 2017년도 2학기 한국영화감독 <작가연구>는 서두에 서술한 이유를 토대로 2017년 10월 선정될 인물을 고르고, 11월 1일 감독을 결정하여 12월 5일까지 조사와 집필이 진행됐다. 본 연구는 박광수와 관련한 <씨네21>, <맥스무비> 2000년 이후 전 자료와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본원 영상 자료, 박광수의 영화, 성곡도서관에 등재된 문헌과 논문, 관련 신문 기사 등을 망라하여 조사가 진행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집필됐다. 감독의 약력을 비롯한 성향과 메시지, 영화에 담긴 의도와 제작 방식 등을 두루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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