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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그냥 무섭기만 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5.23)영화 2017. 5. 25. 22:19
[리뷰] 누적 관객수 100만 넘긴 <겟 아웃>... 인종 차별의 역사를 녹이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27360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곽우신]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PI 코리아
영화 <겟 아웃>이 관객 누적수 110만(22일 기준)을 넘겼다. 개봉한 지 3일 만에 100만을 넘겼다는 점에서 흥행 가도를 무난히 달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요즈음 날씨가 뜨거워짐에 따라 공포, 스릴러 영화가 여름철 각광을 받는다는 명제를 <겟 아웃>이 따라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그러나 <겟 아웃>은 긴장감을 거듭 유발해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공포, 스릴러 영화만으론 볼 수 없다. 영화를 추동하는 소재들이 다분히 의미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이라는 폐부를 찌르며 시작한다. 시작부터 한 흑인이 밤길을 걷다 괴한에 피습되고 장면이 바뀐다. 새롭게 등장하는 또 다른 흑인(크리스 워싱턴)은 걱정에 휩싸인다. 백인인 여자친구(로즈 아미티지)가 부모님을 소개할 겸 집에 초대하려고 하는데, 이를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인 부모님이 남자친구가 흑인이라는 걸 알면 어찌 반응할지 두려워한 탓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흑인이 겪는 차별의 면면을 활짝 드러낸다. 피습된 대상은 백인이 아닌 흑인이고, 새로운 장면에서 등장하는 크리스가 로즈 부모님의 반응으로 인해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는 순간, 영화가 끌고 가려는 주제 의식에 인종 차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시작에서 끝까지 흑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펼쳐 보이며 극을 이끌어간다.
<겟 아웃>의 근간, 노예 시대ⓒ UPI 코리아
로즈는 아버지(딘 아미타지)가 오바마 지지자라며 크리스가 별 걱정하지 않고 집에 오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 집이란 공간은 위선과 차별에서 태동한 공간이었다. 가장이자 세대주였던 할아버지가 앞으로 펼쳐질 끔찍할 일을 관장한 자였고, 여기에 아들에다 그 며느리(미시 아미타지), 나아가 자식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할아버지를 동조하고 받쳐주는 집안이었다.
크리스가 로즈의 집에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남자 흑인이었다. 집엔 두 흑인이 있는데, 그중 남자는 장작을 때고, 여자는 집에 방문한 손님의 컵에 마실 걸 따라주는 등 집안 허드렛일을 맡아 한다. 영화 <노예 12년>에서 그리던, 인신매매로 팔린 흑인들이 부유한 백인 집에서 노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구도다. 물론 딘은 크리스를 집안에 붙잡아두고자 이런 차별의 구도를 불식시키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간병인 역할을 하던 이 둘을 해고하긴 뭐해 거둔 것이라고 말한다.
크리스는 집에서 잠을 청하다 깨어나 다니던 중 로즈 어머니인 미시로부터 최면을 당한다. 어렸을 적 아픈 기억을 떠올려보라는 미시의 제의에 응하고 또 응하다 그만 덫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픈 기억을 떠올려보라는 말, 일찍이 백인보다 빈곤과 차별, 폭력에 익숙한 흑인에겐 약점이 될 수 있는 말이다. 그 약점을 활용하여 미시는 최면을 건 셈이다. 여기서도 차별의 기제가 작동됐다.
자유주 흑인마저 노예로 삼던 야만의 현대판ⓒ UPI 코리아
다음날, 여럿의 백인 가족들이 집에 초대돼 파티를 벌인다. 이들 가족이 크리스를 보고 떠올리고 물어봤던 것은 크리스의 생각이 아니라 크리스의 외피뿐이었다. 백인들은 골프나 성적인 주제로 질문하면서 신체적인 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크리스에게 질문한다. 흑인이 노예로 팔려나가기 전, 아무 말도 못 하고 백인들로부터 등급 판정을 받던 그 시대의 불쾌한 모습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모습은 연상에 그치지 않는, 엄연한 실재였다. 딘은 본색을 드러내고 크리스의 사진을 내걸고 경매 비슷한 걸 진행한다. 사고파는 대상은 다름 아닌 크리스의 육체였다. 로즈 집안의 끔찍한 일이란 흑인의 뇌를 빼내어 백인의 뇌를 넣은 다음, 남아있는 흑인의 육체를 백인이 쓰게끔 하는 것이었다. 노년을 지내거나 신체적 고통이 있는 백인이 흑인의 젊은 육체를 가져다 쓰겠다는 의도였다.
이런 일에 착안하고 호응하던 백인들이 건강한 육체만을 갈구했다면 백인 몸도 썼을 일이지만 오로지 흑인 몸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로즈 일가는 심미적,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뛰어난 흑인을 택한 것이라고 나중에 크리스에게 설명하지만 그런 기준이라면 백인의 몸 중에도 합당한 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은 선택 대상에 없었다. 노예 시대엔 나와 너의 정신이 분리된 흑인의 육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겼던 것이라면, 지금은 육체를 아예 도용하여 흑인의 정신을 말살하겠다는 섬뜩한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도 흑인을 눈속임하려는 위선과 함께 말이다. 자유주에 속한 흑인마저 유혹해 노예로 팔아버리던 1800년대 모습의 현대판이 아닌가.
진정, 크리스 곁에 백인은 없었다ⓒ UPI 코리아
크리스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가려던 도중, 로즈의 사진들을 우연히 본다. 그 사진들은 흑인과 같이 찍었던 것으로, 이 같은 일이 자신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다. 그러나 크리스는 최면의 덫에 걸려 탈출에 실패하고, 로즈부터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본색을 드러낸다. 남동생은 시작부에서 흑인을 피습한 괴한이다. 크리스의 육체를 지렛대로 정신을 연장하겠다는 백인의 욕망이 본격적으로 표출된다.
종국에 크리스는 재치를 발휘하여 뇌가 달아날 운명에서 벗어나지만, 그 가운데서도 로즈 일가에 소속된 흑인 두 명을 죽여야만 했다. 그 흑인 둘은 정신은 백인이고 육체는 흑인인, 바로 로즈의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환한 플래시를 비출 때 흑인일 당시의 정신이 부활한다는 점을 보면, 결국 백인이 조성해놓은 굴레 위에 일말이라도 남아 있던 흑인의 정신마저 흑인의 탈출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는 흡사 흑인 간 노선 갈등을 묘사한 영화 <셀마>의 배경처럼,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폭력을 자임하던 백인이 세워놓은 풍토 위에, 어찌 대응할지를 놓고 번민과 갈등을 거듭하다 흑인들끼리 충돌했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아프게 다가오는 건 크리스가 위기의 순간에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던 대상이 백인이 아닌 흑인뿐이라는 점이다. 크리스를 도우려고 했던 친구도 흑인이었지만 그 친구가 크리스의 실종 상태를 놓고 경찰서에서 면담한 경찰관마저 흑인이었다. 감독의 의도적인 구상이었겠지만 백인이 크리스를 도와준, 도와주려는 흔적은 영화에 없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잘 도망치다 갑자기 죽어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반전을 넣지 않았다. 아마 크리스가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면 인종 차별을 뿌리로 삼아 생육하려던 이들에 대응하지 못한 채, 차별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질 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크리스가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차별의 기제를 훼손할 수 있었다. 이처럼 <겟 아웃> 곳곳엔 흑인이 겪었던 아픈 경험과 역사가 녹여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차별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점을 영화는 시사한다.'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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