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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상처 내는 영화의 딜레마, 풀릴 수 있을까영화 2017. 10. 21. 14:38
[리뷰] 홍상수 감독 20번째 장편 영화, 칸 영화제 경쟁 부분 진출작 <그 후>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곽우신]ⓒ 전원사
"아름다워, 네가"
"정말요?"
창숙(김새벽 분)은 봉완(권해효 분)을 안으며 '아름다움'을 확인받으려 한다. 창숙은 왜 봉완의 "아름답다"는 말을 단번에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 아름답냐"고 물어봤을까.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회의'였을까.
지난 6일에 개봉한 영화 <그 후>는 홍상수 감독이 전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어 3개월 반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 후>는 전작보다 자전적 성격이 얕아지고, 홍상수 특유의 주제 의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 출판사 사장인 봉완은 직원인 창숙과 서로를 좋아하다가 아내인 해주(조윤희 분)에게 의심을 받는다. 창숙은 일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아름(김민희 분)이 들어오면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번 영화에서 홍상수 감독은 시간을 배열할 때 핵심만 짚고 뚝뚝 끊는다. 이야기를 부연하려는 장면은 어느 때보다 약하다. 이는 사건과 인물에 오롯이 집중하라는 의도로 읽힌다. 또 전작 <자유의 언덕>이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시간을 뒤틀어버릴 것 같지만, 이내 거둬버린다. 뒤틀림을 가할 때 극의 집중도가 올라가고, 가함을 빼버리는 순간, 주제가 선명해진다.ⓒ 전원사
사랑이 뭐길래
창숙이 "아름답냐"고 봉완에게 물어본 건, '정말 아름답냐'는 회의감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는 사랑이 지속하고 있느냐는 확인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결국 주관적이고, 이를 판단하는 사람에 달려있다. 물론 그 판단은 사랑과도 연관되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누가 어떻게 보든 그 사람을 추하다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다만 홍상수 영화에서 사랑은 대개 영원한 게 아니다. 특히 홍상수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언제라도 몸을 불사를 기세를 보이지만, 그 맹세는 단기간에 그치고 만다. 결국, 홍상수 영화에서 논하는 사랑이란 일회성과 허망함이 녹여있다.
창숙이 봉완에게 '아름다움'을 두고 물어본 데엔 '사랑의 지속'에 초조함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내일은 사랑할 수 있을까, 과연 1주일은, 그러면 한 달은, 이런 회의를 품으면서 말이다. 더구나 봉완은 창숙과 해주 사이를 두고 갈피를 못 잡는 것만 같다.
홍상수의 페르소나 김민희는 <그 후>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처럼 극을 이끄는 인물보단 조력자에 머물지만,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한다. 김민희가 맡은 역 아름은 식당에서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과 택시 탈 때 내리던 밤눈을 바라보고 "예쁘다"고 한다. 그런데 아름이 예쁘다고 한 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 예쁨과 아름다움, 사랑, 언뜻 좋아 보이는 이 모든 게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라는 걸 영화는 상기해준다. 하지만 우리네 삶엔 그것들이 일시적인 걸 알면서도 영화의 아름처럼 예쁘다는 걸 인식하고, 창숙과 봉완처럼 사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순간이 영원하진 못하더라도 행복을 느껴보자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전원사
봉완의 아내는 그럼 어떤 존재
"사랑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봉완은 말한다. 말에 '아무것도'를 넣어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시간에 따라 절대성이 허물해지더라도 그 순간의 절대 감에 조금은 취하자는 말일 것이다.
생각할 지점은 남아있다. 그 절대 감은 자기중심적이다. 봉완은 해주를 인생의 굴레로 인식한 듯, 창숙과 사랑이 마음처럼 잘 안 될 때면 엉엉 울고 해주의 울분엔 이렇다 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질 않는다. <그 후>에서 봉완의 아내, 해주는 어떤 존재일까.
해주는 영화에서 윽박을 지르고, 봉완을 구속하려는 것만 같은 뉘앙스만 풍긴다. 해주의 울분은 십분 이해할 일인데 그 행동 자체는 사뭇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봉완의 위선적인 면모도 비추지만, 해주를 볼 때면 봉완의 시각에서 영화가 전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은 불륜 문제로 숱한 논란을 몰고 왔던 게 사실이다. 그간 홍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라고 호소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모든 사랑이 영원할 순 없다. 허나 덧없는 사랑 가운데 그만, 상처를 입은 이도 제법 있을 것이다. 이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후>의 해주도 예외는 아니다. 자전의 성격을 내포한 홍상수 영화의 딜레마이다.'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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