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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세우는 건 언론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사안에 따라 편과 편이 나뉘어 공방하는 정치권만큼이나 언론 역시 사안을 보는 시선이 갈린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필연적으로 여론이 분화되는 과정이다. 언론은 여론을 통합하기도 하나, 그 여론이란 대개 언론이 바라보는 시각에 부합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 분야에서 노동자와 고용주의 갈리는 입장이나 ‘적폐 청산’을 둘러싸고 청산이냐, 보복이냐 대립했던 말들은 보수와 진보 언론에 따라 비중이 각기 확연하게 다르다. 언론은 논쟁이 이뤄지는 사안마다 나름의 입장을 세우고, 그 입장과 결이 비슷한 여론을 보도와 오피니언을 통해 취합해왔다. 결국 언론은 프레임을 만들고, 강화하는 통로 역할을 한 셈이다. 프레임은 이에 동조하는 이들의 언론에 대한 지지로 모아져, 언론이 유지되고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돼 왔다. 언론이 ‘프레임 전쟁’에 참전을 마다하지 않는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은 사실을 볼 눈을 감게 하는 치명성을 내포한다. 프레임에 들어가지 않은 사실은 배제를 겪는다. 다소 과장된 주장도 프레임에 부합하면 사실보다 우위가 된다. 일례로 최근에 MBC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걸 두고 정치권 일각과 일부 언론에선 ‘정치 보복’ 프레임을 들고 나왔으나, 조사의 원인이 됐던 MBC 노조의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한 고발은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요즘처럼 여야가 바뀌는 새정부 초기, 정치권과 사회 각계에서 사법과 언론, 입법 권력을 둘러싸고 정쟁이 치열할 때는 프레임에 들지 못한 사실이 많아진다. 결국 정쟁을 언론이 받아쓰거나, 가열하는 데 치중한다면 언론에서 내놓는 사실이란 진실과 거리가 멀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중계식 보도에 그친다거나 정치인의 입을 주목하는 지금 한국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언론에 대한 불신의 여론이 높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프레임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잡다단한 사안의 맥락에 견줘 간결한 프레임은 언론이 흩어진 여론을 쉽게 응집할 도구가 된다. 물타기로 문제의 규명을 막을 양비론보다는 주장의 선명성을 부각하는 프레임이 나을 수도 있다. 더구나 독자 성향에 따라 구독이 갈리는 언론의 경우엔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프레임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
예컨대, 정치권에서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응수하는 프레임은 양립이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 적폐는 청산해나가되, 보복의 우려가 있는 지점에 대해선 사실 관계를 정확히 따져 여야가 공박을 하면 된다. 과거 정권에 몸 담았던 이를 지키겠다고,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것과 같은 부정의를 덮을 순 없는 일이다. ‘적폐 청산’을 ‘청산 불가’로 응수하기엔 설득력이 약하다는 걸 ‘정치 보복’을 내세운 정치권 스스로도 알 것이다.
이는 한미 FTA처럼 찬반 프레임이 나뉘어 정책의 숙의를 도왔던 경우와도 대비된다. 언론은 프레임을 세우더라도 사실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상쇄할 합당한 프레임을 세우되, 정치권과 사회 여론이 지펴놓은 프레임을 무작정 받아 이어가선 안 된다. 때로는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프레임의 잘못된 양립을 언론이 방치하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희석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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