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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대하사극의 추락'생각/출연 2013. 3. 11. 11:42
2247호 3월 11일 발간된 주간조선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 중 제가 전화를 통해 인터뷰, 자문한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스폐셜 리포트] : 대하사극의 추락
대하사극이 위기에 빠졌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유일한 대하사극은 KBS의 ‘대왕의 꿈’이다. 그나마 시청률이 10% 내외다. 화제성도 낮다. KBS 드라마 ‘용의 눈물’의 이방원이나 MBC 드라마 ‘허준’의 허준 등 사극에서 다루었던 인물이 화제를 모았던 과거에 비해 ‘대왕의 꿈’은 출연자의 사고 소식만 간간이 들려온다. ‘대왕의 꿈’뿐만 아니라 KBS에서 기획한 4대 군주 시리즈(‘대조영’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대왕의 꿈’) 모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올해에는 아예 실종 위기에 처했다. KBS는 올해 신년 대기획에서 정례적으로 발표해온 대하사극 계획을 뺐다. MBC와 SBS는 이미 퓨전사극으로 돌아섰다.
대하사극의 위기는 곧 퓨전사극의 인기와 맞물려 있다. 작년에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해를 품은 달’은 ‘이훤’이라는 가상의 임금을 등장시킨 퓨전사극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신의’ ‘닥터진’ 등의 퓨전사극들이 방영됐다. 올해도 방송사는 장희빈을 다룬 ‘장옥정, 사랑에 살다’(SBS), 소현세자를 다룬 ‘궁중잔혹사’(JTBC) 등 퓨전사극을 앞다투어 방영할 예정이다. 퓨전사극 풍토 때문에 정통 사극을 표방한 작품들도 역사 고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마의’에서도 “얄짤 없다”는 신어나 “궁금하면 다섯 푼” 등의 유행어가 거리낌없이 등장한다.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 등을 집필했던 이환경(62) 작가는 퓨전사극의 인기에 대해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잠깐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사를 곡해하는 부분에 있어서 반드시 비판 여론이 일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사극은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현 시대인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줘야 하는 당위가 있다”면서 “시청자들이 지금 이 부분을 잊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극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퓨전사극 인기는 일시적 유행?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를 운영하는 고동완씨는 “지금의 대하사극은 기존의 시청자층도 놓치고 있고 새로운 시청자층 확보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하사극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역사적 사실이 주는 생생한 감동을 원하는데, 지금의 대하사극은 과거에 비해 각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하사극이 역사에 관심 없는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외면받는 이유는 ‘연출력 부족’이다. 고동완씨는 “일단 재미가 없으니 누가 보겠냐”고 반문하면서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 이후부터 대하사극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다루는 시대와 소재만 달라질 뿐, 삼각관계라든지 비천한 출신 인물의 성공 스토리, 궁중 암투 등의 전개는 매번 똑같다는 것이다. 시청자 눈높이에 맞지 않는 어설픈 컴퓨터그래픽(CG)도 대하사극 부진에 한몫했다.
‘용의 눈물’의 이환경 작가는 “사실 정사(正史)가 야사(野史)보다 훨씬 재미있는데 요즘 방송가나 작가들이 역사를 제대로 다룰 생각은 않고 각색으로 재미를 추구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재미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작가가 사극을 쓸 때는 완전히 그 시대에 미쳐서 연구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역사정신도 살아있고 재미도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이 재미있었던 이유도 바로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있다. 이 작가는 “요즘의 조선시대 사극에서 왕들이 입는 곤룡포만 보더라도 무슨 용 문신을 그려놓은 건지 도대체 출처를 알 수가 없다”면서 역사적 고증을 게을리하는 사극 풍토를 질타했다.
또 이 작가는 사극 작가들이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이 작가는 “한 시대를 놓고 보더라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면을 아울러서 봐야 한다”면서 “그것이 역사정신이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극은 재미도 있을 뿐더러 큰 울림을 갖는다. 하지만 요즘은 작가들이 특정 소재에만 지엽적으로 매달리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안 되니까 역사를 각색하고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고증부터 철저히 해야
이 작가는 KBS에도 쓴소리를 했다. “국민으로부터 시청료를 받는 방송국이 사극을 시청률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사극을 하려는 작가도 많이 없거니와 사극 작가 중에서도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서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이렇게 사극의 인재풀이 부족한 데에는 방송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가가 힘들게 역사를 연구해서 사극 기획안을 내더라도 방송국에서는 제작비도 많이 들고 시청률도 예전 같지 않으니 거절하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KBS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먼저 대하사극은 고질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다. KBS가 만성적 적자에 빠져 있는 만큼 드라마 예산 편성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다. KBS 대하사극의 경우 보통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소요되는 데다 본사 자체 제작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 K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대왕의 꿈’ 예산의 경우도 이전 작품 예산에 비해 10% 정도 삭감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대체로 쉼 없이 연중 편성하던 대하사극을 연 1회로 정하고 내실을 기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KBS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왕의 꿈’을 제작하고 있는 한준서 PD는 인력난도 지적했다. 그는 “배우의 경우 미니시리즈 등에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출연료를 받고 사극에 출연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긴 방영 횟수와 잦은 지방촬영 등의 고난도 기피 이유이다. 작가의 경우도 대하사극은 고사(固辭)의 대상이다. 그는 “대하사극 대본을 쓰려면 자료조사, 고증 등의 문제로 최소 1~2년은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데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대하사극을 외면하는 것은 시청자뿐만 아니다.
그러나 이웃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공영방송인 NHK가 사명감을 갖고 ‘대하드라마’라는 제목으로 대하사극을 만들어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북돋아주고 있고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은 대하사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방영을 시작해 올해 1월 19일 종영된 대하사극 ‘수당영웅(隋唐英雄)’은 500억원이 투입된 120부작 대하사극으로 3년간의 기획·준비 기간을 거쳐 후난(湖南)위성TV에서 방영됐으며 드라마 시청률도 1위를 기록했다.
뜻있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극의 위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원로작가 신봉승씨는 “대하사극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주고 국민통합(nation building)을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한·중·일 간에 영토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대하사극의 위기를 지금처럼 방관하면 우리는 백전백패”라고 비판했다.링크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47100011&ctcd=C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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