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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경력에 월 200만원... 우린 일회용품이었다" (8.8)
    쓴 기사/기고 2014. 8. 9. 14:27

    "20년 경력에 월 200만원... 우린 일회용품이었다"


    [오마이뉴스 고동완 기자]

    [기사수정 : 8일 오후 5시 30분]

    "수당 다 합쳐도 경력 5년이 월급 180만 원이 안 되고, 20년 가까이 된 사람도 200만 원선이다. 산재 처리도 극도로 꺼린다. 보험료 인상이 부담된다는 이유다. 어쩌다 극도로 크게 다치면 산재 처리해주고, (많이 다치지 않으면) '다친 데 너희들 과실 있는 것 아니냐'면서 '알아서 하라' 하기도 한다. 치료비가 500만 원이면 '400만 원 해줄 테니 100만 원은 너희들이 내라' 선심 쓰듯이 하는 경우도 있다."

    덥고 습한 이때 케이블 업계에선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입자 248만 명을 보유한 씨앤앰(C&M)이 A/S와 설치, 철거를 주로 하는 하청업체 기사들을 상대로 지난 7월 1일과 9일 계약해지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수도권이 영업 거점인 씨앤앰은 디지털 방송과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병행하면서 지난해 약 1349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기사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반발하여 씨앤앰의 대주주 중 하나(다른 한 회사는 맥쿼리)인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8일로 노숙농성 한 달째가 된다. 그들을 찾아간 6일에는 비가 오락가락 했다. 노조원들은 비를 피해 서울파이낸스센터 입구 주변에 모여 있었다.

    비정규직 노조(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가 탄생한 것은 지난해다. 주5일 근무 이행과 임금 인상 등 근로 환경의 개선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주말에 쉬는 것은 고사하고 밤샘까지 해가며 한 달 일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50만~200만 원이었다.

    아웃소싱 이후 갑을관계로 시작된 '쥐어짜기'

    ▲  서울파이낸스센터 후문 맞은편에 걸려 있는 노조의 현수막이다. 그 뒤로 노조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임시 비닐 텐트의 모습이 보인다.
    ⓒ 고동완


    케이블TV 태동 때부터 20년 경력을 갖고 있는 김영수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장은 "한 달에 250만 원, 아니면 280만 원에 계약을 하지만, 자비로 지출하는 기름값과 식대 등을 모두 빼고 나면 20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들은 하청인 협력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소속된 탓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였다. 그나마 노조가 설립된 지난해 협력업체와의 협상을 통해서, 협력업체 소속은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이들 대부분은 원래 씨앤앰 소속 정규직이었다. 그러나 2007년 맥쿼리와 MBK파트너스가 씨앤앰을 인수하기 전 본사는 A/S와 설치를 담당하는 기술 직군을 아웃소싱했다. 당시 팀장들이 아웃소싱한 협력업체의 사장이 되고, 본사에 속해 있던 기사들은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면서 협력업체 등급을 매길 평가지표가 하달됐다. 씨앤앰은 협력업체로 내려보낼 예산을 한정 책정한 뒤 가입자 유치 실적과 근무 태도 등 평가에 따라 A~D 등급을 매겨 A등급은 지원 금액을 5%로 올리고, D등급은 금액을 10% 삭감했다. 또 D등급을 연속 세 번 받는 협력업체에 대해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까지 마련했다.

    김 지부장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라며 "협력업체는 D를 맞지 않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노조가 설립되자 'D등급 네 번에 일시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는 두루뭉술한 문구로 완화는 됐지만 역시나 쥐어짜기"라고 했다.

    한정된 파이 안에서 생존의 문제가 걸린 협력업체들은 소속 기사들의 업무 강도를 높여갔다. 씨앤앰은 '평가'란 무기를 쥐면서 기사들 처우는 나 몰라라 했다.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수당은 올라가기는커녕 동결되거나 삭감됐다. 물가상승률에 한참 못 미치는 마이너스 봉급이었다. 

    노조의 이정행 대경넥스지회장은 케이블 업계에 13년 몸담았으나 사측의 계약해지로 협력업체가 문을 닫아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업무는 많아지는데 수당 단가는 계속 내려갔다"며 "예를 들어 가입자 한 명을 유치하면 600원 받던 것을 400원으로 내리고, 설치 수당도 줄여나갔다"고 밝혔다. 가입자 유치 경쟁에 따라 정상 수신료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고, 손해를 본 부분은 일선 기사들의 수당을 인하해 벌충한 것이다.

    25년 경력에 57세로 노조 조합원 중 최고령인 김용배 비정규직 노조 부지부장은 "25년 일해도 임금이 250만 원도 안 된다"면서 "아웃소싱되더니 (기사들의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해 사측의 감시가 이뤄졌다, 또 모여서 커피 마시는 것도 지적하는 등 계속 일만 하라 했다"고 했다.

    맥쿼리-MBK, 매년 순이익 80% 넘게 배당 챙겨

    ▲  8월 6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를 피해 서울파이낸스센터 입구 주변에 모인 노조 조합원들
    ⓒ 고동완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대주주인 맥쿼리-MBK파트너스로 흘러들어갔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이대순 공동대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간 씨앤앰의 당기순이익 1647억 원의 81.6%인 1344억 원이 배당으로 집행됐다. 일선 기사들이 땀 흘려 벌어들인 돈이 재투자나 사원복지 개선에 쓰이기는커녕 사실상 주주 잇속 챙기기에 활용된 것이다. 

    이 와중에 씨앤앰은 노조 조합원 74명의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협력업체 13곳에서 직장폐쇄를 실시했다. 씨엔앰은 직장폐쇄가 협력업체의 자체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씨앤앰과의 하청계약에 따라 생사가 오가는 협력업체의 처지를 고려해볼 때 이는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농성 중인 이춘후 조합원은 "90%가 원래 씨앤앰에 다니던 사람들이다, 씨앤앰에서 힘들 때 다시 받아준다고 해서 (협력업체로) 나갔다, 그런데 받아준 사람 아무도 없다"며 "사탕발림해서 내보낸 거 아닌가, 협력업체가 폐업 신고했으니 우리들(씨앤앰 측) 책임은 없다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씨앤앰 사태의 핵심은 맥쿼리와 MBK파트너스다. 씨앤앰만 놓고 보면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 케이블 공급 사업자(SO)는 옛 노원케이블TV나 서초케이블TV처럼 한 구에 하나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완구 사업을 하던 이민주 현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이 SO를 하나씩 인수하면서 그룹화했다. 이때 탄생한 것이 씨앤앰이다. 이후 이민주 회장은 2007년께 맥쿼리-MBK파트너스에 씨앤앰을 매각하고 약 1조 원의 이익을 남기며 떠났다. 

    맥쿼리-MBK파트너스는 일종의 투자 목적으로 씨앤앰을 LBO(leveraged buy-out)로 2조 원 이상에 인수한다. 문제는 인수 방식이다. LBO는 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차입에 의존해 기업을 인수한 맥쿼리-MBK파트너스 입장에선 고배당을 통해 차입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또 이익 실현을 위해선 실적 극대화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최대한 높여 다시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제를 이행하는 데 노조의 존재와 요구사항은 눈엣가시가 된 셈이다.

    맥쿼리-MBK파트너스가 씨앤앰을 동종 업계인 태광 티브로드에 매각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올 들어 씨앤앰 매각주관사 골드만삭스는 태광, SK, CJ 등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지만, 그 중 유일하게 태광그룹 티브로드홀딩스만 인수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이승희 우리정보지회장은 "태광 티브로드가 인수 1순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광 인수 시 중복 사업 정리 차원에서 추가 구조조정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물러설 곳 없다... 보람차게 일할 권리를 달라"

    ▲  서울파이낸스센터 후문 맞은 편에 세워진 임시 비닐 텐트 내부 모습. 이곳에서 조합원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 고동완


    현재 직장폐쇄된 협력업체의 조합원과 해고자 등 500여 명이 24시간 4교대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인근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씨앤앰 운영의 실권을 쥔 대주주 맥쿼리-MBK파트너스는 문제해결을 위한 그 어떤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15억여 원을 들여 연인원 8천여 명의 파업 대체인력을 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춘후 조합원은 "우리가 원하는 건 복직"이라며 "해고된 상황에서 재취업도 안 돼 실업급여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노조가 생김에 따라 업무환경이 좀 좋아졌더니 해고됐다, 굉장히 황당하다"고 말했다. 

    가족 중 병으로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든지 급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노조를 탈퇴하고 비노조원으로 업무에 참여하는 상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농성에 한 조합원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일터를 잃은 조합원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정행 지회장은 "파리 목숨처럼 자기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큰 돈을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조금만 더 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람차게 일하도록 권리를 달라는 것인데... 우리는 간단히 쓰고 자르는 일회용품이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는 노숙농성 한 달째인 8일 오후 7시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와 함께 서울 광화문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이어 서울파이낸스센터와 티브로드 본사 앞을 격일로 오가면서 문화제 개최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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