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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생각/영화 2017. 3. 24. 08:43

    영희(김민희)는 해변가 모래밭에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누워 있다가 잠에 든다. 아마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잠에 빠졌을 것이다. 바다는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서 출렁일 뿐이다. 영희는 잠에서 깨고 해변가를 거닐지만 시선에 있는 바다처럼 그녀의 고민과 번뇌는 해소되지 않고 반복될 것만 같다. 반복의 배경엔 그녀를 둘러싼 사랑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개봉했지만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영화의 설정이 유부남 영화감독과 여배우와의 사랑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불륜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영화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해졌다. 홍 감독은 시사회를 통해 자전적 이야기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누차 밝혔지만 영화의 군데군데엔 홍 감독의 항변으로 풀이될 수도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예컨대 천우(권해효)는 "지네들은 잔인한 짓하면서 영희를 비난한다"고 날을 세운다. 불륜을 둘러싼 대중의 비난에 "너부터 깨끗해져라"고 응수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대응은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깨끗하다는 건 주관적이다. 깨끗한 사람에 비해 조금 덜 깨끗한 사람은 비판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것을 누가 판단하고 확인한다는 말인가? 주관성에 부합하는 사람에게만 비판이 허용된다면 비판의 언로 또한 누구 입맛에 따라 막혀버리게 되는 것 아닌가?


    영희는 술자리에서 세상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준희(송선미)에게는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준희가 손사래치면서 본인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비난하려면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천우의 맥락과 맞닿아 있으면서 주관성의 한계를 함께 드러내는 대목이다. 객관성이 결여되어도 나한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홍 감독의 사랑에 이의를 제기하는 본인이 볼륜을 저지르고 있다면 적반하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이는 소수의 사례이며 천우의 응수는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홍상수와 김민희의 사랑을 우리가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범주 속에서 그들의 판단과 행동을 규탄으로 강제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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