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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생민족'에게 안주는 필요없다 (9.18)
    쓴 기사/기고 2017. 11. 12. 13:46

    [김생민족 vs. 욜로족 ①] 청년 김생민족,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돈 모은다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박정훈]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수증을 놓고 '그뤠잇'과 '스튜핏'을 연발하며 데뷔 25년 만에 '대세'로 떠오른 김생민씨, 팟캐스트와 방송에서 그가 말한 '절약 비법'들이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절약' 대신 여행과 취미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생민족'과 '욜로족'으로 사는 시민기자들이 번갈아 기고하는 <김생민족 vs. 욜로족> 기획을 전합니다. 당신은 어디쯤 서 계신가요? <편집자말>

    "돈은 이제 네가 벌어 네가 써라."

    올 5월, 군에서 제대하자 아버지의 특명이 떨어졌다. 뭐라고 토를 달 수 없었다. 지당한 말이었다. 20대 초반을 종지부 찍고 중반을 지나려 하는 25살, 가족으로부터 용돈을 마냥 타서 살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예전에 용돈을 엄청 많이 받았느냐, 그건 아니었다. 한 주에 1~2만 원 정도였는데, 물론 이 용돈이라도 살아가는 데 마중물이 되어주지 않았겠느냐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먹고 사려면 용돈 이외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2013년, 대학에 입학하고 굳게 결심한 게 있다. 굳이 용돈을 받지 않더라도 삶을 살아갈 경제적인 체질을 갖추자, 자력으로 돈을 모으고 월 가계부에 적자는 내지 말자는 거였다. 지출은 억제하고 수입을 늘려야 했다. 돌아보면 결심이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돈 나갈 데를 막아라

    ▲  김생민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영수증>
    ⓒ KBS 영수증


    '돈은 안 쓰는 것이다.'

    최근 팟캐스트에서 공중파에 상륙하고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생민의 영수증>이 세트장에 내걸어 둔 표어다. 돈을 본격 모으려 했던 지난 4년을 짚어보면 공감이 절로 되면서 타당한 말이다. 재테크다 뭐다 해서, 돈 모으는 비법이 쏟아지는 이때, 최선의 방안은 돈 나갈 데를 최대한 막는 것이다. 

    우선 꼬박꼬박 나가야 하는 돈은 틀어막을 순 없으니 줄일 궁리를 해본다. 휴대폰 이용자라면 누구나 달마다 날아드는 청구서와 마주한다. 허탈감이 밀려온다. 데이터는 거의 안 쓰고 통화와 문자만 했을 뿐인데 월 3만 5천 원을 내고 있다. 1년이면 얼마인가. 어림잡아 40만 원이 넘는다. 

    이것도 적게 내려고 몸부림쳐서 낮춘 금액이다. 올 5월 말, 폰은 기기변경으로 2년 계약한 저가폰을 쓰고 가입 조건은 가장 저렴한 걸 골랐다. 전화와 문자량은 무제한, 데이터는 300MB였다. 데이터가 없더라도 더 저렴한 걸 고르고 싶었으나 스마트폰으로 기기변경하면 최소한의 의무로 300MB를 택해야 하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이동통신 3사는 가격을 데이터에 방점을 둬 차등한다. 예컨대, SKT band 요금제는 제공 데이터가 1.2GB에서 한 급간 위인 2.2GB가 되면 6천 원가량 요금이 뛴다. 공공장소, 지하철, 학교 등 웬만한 곳에 와이파이가 터지는 판국에, 데이터로 영상을 보질 않는데 비싼 요금제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 당장 급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카카오톡 좀 늦게 보면 어떤가.

    차선책으로 중고나라에서 중고폰을 싸게 구입한 뒤 약정 계약에서 벗어나 저렴한 요금제를 자유자재로 선택할까 생각도 해봤다. 제대 전까지 이 방법으로 데이터가 없는 월 2만 원대 요금을 내고 폰을 이용했다. 철이 좀 지나도 쓸 만한 중고폰을 사서 이용한다면 월 통신료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다만 중고폰이 결함은 없는지 살펴야 하는 위험은 있다.

    '2차' 가더라도 안주없는 생맥주 고집

    ▲  맥주
    ⓒ pixabay


    가장 큰 고민은 식비다. 돈 줄이겠다고 입에 풀칠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음식점에 들르면 아무리 저렴한들 5천 원은 한다. 하루 두 끼가 만 원이고 1주일이면 7만 원, 한 달이면 30만 원이다. 이러니 식비를 줄일 방안을 고안하지 않고 돈을 모으겠다고 선언하는 건 허장성세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식비를 낮출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집요함이 필요하다. 가성비 좋은 음식점을 골라 단골이 되는 것이다. 그 리스트엔 학교 식당이 빠질 수 없다. 웬만하면 점심과 저녁은 학교에서 해결한다. 대개 3천 원을 고른다. 그 이상은 먹지 않는다. 가격만 보고 골라선 안 된다. 양도 본다. 양이 적은 걸 먹었다가 출출해지면 낭패다. 이렇게 하루 식비를 6천 원대로 줄인다. 어쩌다가 밖에서 먹으면 인터넷의 정보망을 활용해 5천 원 이하 음식을 고른다.

    커피? 잘 안 마신다. 어쩌다 카페에 들러 그것도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굳이 커피를 식습관에 넣을 생각은 없다. 밥 한 끼보다 비싼 게 커피값 아닌가. 술자리는 어떻게 할까. 셈법이 복잡해지긴 하지만, 돈 아끼려 거부하거나 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밥과 술을 1차에서 끝내고 2차에 가더라도 안주 없이 생맥주만 마신다. 

    밥을 이미 먹었는데 살찌우는 안주가 흥취를 돋는 건 아닐 것이다. 맥주 전문집이라도 안주를 주문 안 하면 맥주 못 내놓겠다고 면박을 주기 일쑤이지만 생맥주만이라도 제공하는 가게가 분명 있다. 생맥주도 4천 원이 아니라 딱 3천 원에 파는 데를 알아놨다가 거기를 간다. 구차하지 않느냐고? 체면을 중시해서 돈을 쓰고 후회하는 것보단 솔직하게 씀씀이를 결정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절약에 이토록 나서는 건 주머니 사정이 얇은 게 이유겠으나 앞으로의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 6개월, 1년 뒤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지금이다. 직장 가진 이도 실업급여를 드는데 청년이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밥값과 술값은 최소 절반은 부담하려고 한다. 같이 먹었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절약의 기조 아래에서 술자리를 가지면 과도한 지출은 막을 수 있다. 그리하여 식비로 나가는 월 지출은 20만 원 아래로 묶어둘 수 있다.

    구입한 책은 읽은 뒤 팔고, 영화는 조조와 야간만

    절약에 혈안이 되면 문화생활을 돈만 축내는 걸로 인식하기 십상이나 그렇지는 않다. 나의 문화생활은 책과 영화에 집중돼 있는데, 책은 주로 중고서적과 도서관을 활용한다. 책을 사서 소장할 당위를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책에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순 없다. 책을 읽되 인상 깊은 구절들만 딱 따서 정리하고 되새김하면 책을 소장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어쩌다 신간 서적을 사더라도 재빨리 읽고 다시 중고서적으로 판다. 

    영화는 좀 다르다. 도서관 DVD로 영화를 공짜로 빌려 보지만 널찍한 장면, 울리는 소리에 깊이 있는 감상을 하고 관객들과 공감대를 가지려면 영화는 모름지기 극장에서 봐야 한다. 여기에도 나름의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조조 아니면 야간 영화만 본다. 동네 멀티플렉스 극장에선 평일 조조가 6천 원, 밤 11시 이후 야간은 8천 원이다. 9천 원에서 할인된 가격인데 할인액이 쌓이면 제법 된다. 

    하루 일과가 일찍 끝나서 야간 상영 시간보다 이르게 영화관에 가기도 하는데, 이럴 땐 극장 의자에 앉아 책을 하염없이 읽는다. 밤에 영화를 봐서 돈도 절약하고 책도 읽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둘째, 선택과 집중을 위해 불가피하게 전문가 평점 6.0 이상인 영화만 골라 본다. 마음 같아선 웬만한 영화 다 보고 싶지만 시간과 지출이 허락하질 않는다.

    옷은 어쩌다가 한 번 살까 말까다. 평소 밖에 나갈 때 옷에 대해 신경을 깊게 쓰지 않는다. 전날 입었던 거 또 입는 날이 허다하고 얼굴에 바르는 건 아버지가 가진 로션뿐이다. 학교 친구나 동기가 으레 옷 좀 사서 입으라 핀잔을 줄 때가 있으나 그럴 생각은 당분간 없다. 청바지 하나, 티셔츠 하나, 단출하게 입으면 좀 어떤가. 패션에 이렇다 저렇다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은 1년, 2년 만기 적금에

    ▲  나의 8월 가계부. 적금의 경우 모아둔 돈을 예치하고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재예치하기 때문에 실제 가계에 적자를 끼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적금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이 실질적으로 지출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다.
    ⓒ 고동완



    소비할 것을 미래로 미루는 것도 돈을 아껴나가는 방법 중 하나다. 교통비는 한 번에 충전할 때 만 원, 2만 원 이렇게 충전하지 않는다. 천 원 단위로 쪼개 매일 충전한다. 소비 시점을 계속 늦춰나가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도 정기 구독보다는 편의점에서 사서 본다.

    병장 월급 20만 원 시대에 군에 있을 때도 돈을 써본 기억이 잘 없다. 급식이 형편없이 나오면 B.X에 가서 냉동식품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는 장병들이 제법 됐지만 난 입맛이 낮아서 그런지 삼시 세끼를 병사 식당에서 해결했다. 2년간 모은 350여만 원의 종잣돈은 병사 적금에 예치했고 올 초 만기가 돼서 전역 전에 재예치했다.

    1학년과 2학년 1학기까지 수입은 아르바이트와 과외, 학보사에서 나오는 원고료로 대신했고 그 이후로도 기사 원고료와 과외로 수입원을 병행하다 제대 이후엔 일단 기사 원고료가 유일한 수입원이 됐다. 수입원을 늘릴까 고심 중이나 2013년 결심대로 월 가계부에 적금에 들어갈 돈을 빼면 적자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옆에서 콜라를 살 때 생수를 샀고 팝콘을 살 때 영화 티켓만 샀다.

    알뜰살뜰 모은 돈은 2년 만기 적금에 묶어두거나 은행마다 개설해 둔 1년 만기 적금에 다달이 돈을 붓는 등 여러 갈래로 목돈을 쌓아나가고 있다. 돈을 모으는 행위는 어쩌면 불확실에 대처할,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김생민이 1992년 데뷔하고 일찍이 알뜰살뜰 돈을 모은 건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리포터의 삶이 그리 유도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회에 아직 딛지 못한 내가 소비를 자제하고 지출에 예민해지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집과 학교가 거리가 멀어 기숙을 한다든가,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수입원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나만의 사례가 아닐 터. 김생민의 '그뤠잇'과 '스튜핏'은 수입과 지출을 고심하는 이 땅의 모든 이에게 공감이 안 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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