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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석>이 던진 유의미한 질문, 그러나 영화는 허술했다
    생각/영화 2017. 11. 15. 16:50

    [리뷰]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많지만... 저널리즘이 실종된 다큐멘터리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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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기자 주연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의 포스터.
    ⓒ (주)BM컬쳐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 아무도 덧붙일 수 없는 완결된 기사 말이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한 나의 취재파일에 올라 있는 김광석 '변사 사건'은 언젠가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이상호 기자는 2002년에 펴낸 책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에서 김광석의 사망을 미심쩍어하며 진실 규명의 의지를 다졌다. MBC에서 <시사매거진 2580> 기자로 일할 때였다. 이 기자는 1996년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마포 라인'을 책임지다 김광석의 사망과 연이 닿았다. 그 연은 의심과 추적이 엮이며 질겨졌다. 21년의 세월이 지나 이 기자는 영화 <김광석>을 내놨다.

    영화는 일단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김광석 사망을 둘러싼 의혹을 수면 위로 올렸고, 진실의 열쇠를 쥔 부인 서해순씨를 불러 세웠다. 죽은 김광석을 20년 넘게 붙든 이 기자의 집념이 영화의 탄생을 낳았고, 영화는 김광석의 사망뿐 아니라 딸의 생사와 저작권 상속까지 짚으면서 진실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이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기자가 쓰고 싶다고 한 완결된 기사로 부르긴 힘들다. 이 기자는 영화에서 "건강할 때 기록 남겨둬야지 싶어, 제가 아는 것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 영화가 '완결'에 못 간 건 현실의 제약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영화의 구성뿐 아니라 편집과 문제의 접근 방식도 포괄한다.

    물어볼 대상엔 묻지 않고... 심증에 기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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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2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성훈 변호사와 함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 배지현


    영화는 김광석의 사망 이전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해 서해순씨가 경찰에 진술한 기록을 구성한다. 서씨의 경찰 진술이 엇갈리는 점을 비추며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러다가 이 기자가 과거 서씨와 나눈 인터뷰를 간략하게 보여주더니 딴 길로 샌다. 김광석의 위패로 이 기자는 발걸음을 옮기고 김광석이 생전 부른 '나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내 김광석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학기씨가 등장한다. 이 기자는 나레이션으로 "박 가수는 (김광석이) 자살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정작 박씨는 "신이 아니면 100% 진실을 알진 못하지"라며 진실의 엄중함을 말하는 데 말이다. 박씨가 자살이 아니라 생각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상황에 뭔가 어폐가 있는 느낌이다.

    1996년 1월 7일자 <한겨레> '가수 김광석씨 자살, 유학 고민 조울증 겹쳐' 기사를 보면 '김광석 친구인 박학기씨는 광석이가 최근 심신 피로와 음악적 한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선 이 말이 김광석의 자살을 뒷받침하는 '멘트'로 나온다. 그러나 이 기자는 박씨로부터 김광석 사망과 관련해 구체적인 말을 끌어오질 않는다.

    대신에 외부인의 입을 빌려 '타살인 것 같다'는 말로 의혹을 증폭해나간다. '김광석 노래 부르기'에 참여한 한 청년에게 이 기자는 김광석의 사망을 묻고, '타살인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이끈다. 또 김광석 형의 통화 음성을 통해 타살 의혹을 짤막이 언급한다. 심증에 기댄 말뿐이다.

    빈약한 설명, 커지는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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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속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등장한 부분
    ⓒ BM컬쳐스



    이 기자는 김광석 아버지의 창신동 옛집을 찾아가는 식으로 사건의 진실 규명과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간다. 이어 "과거 서씨와 인터뷰한 내용의 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했고 2002년 검찰은 거짓말탐지기로 이 테이프를 조사했더니 거짓말로 판단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누구를(서해순씨를 말하는 건지), 어느 것을 거짓말로 판단한 건지 설명은 빠진다.

    중간에 영화는 서두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기는 하나, 구체적인 인과 관계없이 다소 논리의 비약으로 비춰질 부분을 만들어낸다. 이 기자는 배상훈 프로파일러를 대동한 가운데 서씨가 김광석 사망 당일 오전에 울면서 "술 먹고 장난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말한 장면을 재생한다.

    프로파일러는 이를 보고 "장난하다 죽은 건 자살은 아니죠"라는 결론에 이른다. 또 사망 직후 쿵소리가 났다는 서씨의 증언이 더해져 '몸싸움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기자가 튼 영상을 본 프로파일러는 이런 식으로 결론에 바로 당도해버린다. 무슨 영문으로 '장난'과 '쿵소리'가 합쳐져 몸싸움으로 결론이 난 건지 아리송할 뿐이다.

    빈약한 설명과 전문가 한 사람에 의존해 자문을 구하는 게 이어지면서 의구심은 커진다. 심리 부검 전문가가 나오더니 전문가는 김광석의 일기장을 읽고, 내용의 흐름과는 전혀 딴판으로 '자살한 것 같다'는 소견을 남긴다. 그 근거는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일기장 하나로 자살이란 결론에 이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일기장의 어느 대목이 전문가로 하여금 자살로 판단하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편집은 이 기자가 원하는 프레임을 짜기 위한 작위적인 의도가 역력하다. 서씨가 아버지와 나눈 전화 녹취가 나오나 전후 맥락은 모두 잘린 채 서씨가 흥분하며 "왜 아버님이 보관하세요, 다 아는 사실인데 이야기도 안 하고 사기예요, 돈 주셨어요? 그거를 의심하느냔 말이야, 법적으로 인연 끊자면서요"란 말한 대목만 나온다. 

    맥락 잘라버린 편집, 계속되는 '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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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기자의 물에 젖은 취재수첩
    ⓒ BM컬쳐스



    맥락을 알 수 없게 편집해놨으니 아버님이 뭘 보관했고, 무엇이 사기였는지, 또 뭘 의심했는지, 인연을 끊자는 건 뭔지 궁금증만 낳을 뿐이다. 서씨의 흥분을 녹취로 강조한 영화는 김광석 아버지가 며느리를 두려워했고 폭언에 못 이겨 저작권을 넘겨줬다는 결론에 바로 이른다.

    단정은 계속된다. 서해순씨는 이 기자에게 인터뷰에서 "김광석씨가 자신의 결혼 경력을 알고 결혼을 했다"고 설명했으나 이 기자는 김광석 가족 측의 말을 근거로 "서씨가 결혼 경력을 숨기고 김광석과 결혼을 했다"고 나레이션으로 못을 박아버린다. 또 서씨가 영아 살해를 했다고 단정지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제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진실을 검증하겠다던 영화는 막상 저널리즘의 영역과 여러모로 어긋나는 면모를 보인다. 취재한 결과물은 그 근거가 명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취재 기사를 표방한다면 기자의 주장이 아니라 취재한 게 주가 되어야 한다. 편집을 하더라도 궁금증을 되도록 남겨선 안 된다. 취재한 걸 최대한 공개하되 판단은 독자가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군데군데 허점을 보인다. 

    경찰의 초동 수사를 지적할 땐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의 지금 입장은 어떨지 살펴볼 순 없었을까. 성사가 안 되더라도 영상으로 과정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서해순 자신 외에 친족도 못 보도록 부검소견서를 막아놨다고 할 땐 제도의 문제를 한 번 짚어볼 순 없었을까. 사건의 실체를 접근하는 데 역량을 주력하기보다 사건과 관련성이 부족한 곁가지에 신경을 쓴 건 아닌지 아쉬울 뿐이다.

    이 기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 기자의 취재 파일이 2015년 물난리로 엉망이 됐다. 취재로 모아둔 테이프는 망가지고 노트에 적어둔 문구는 물에 젖어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 사건으로 영화 제작은 악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영화의 아쉬움을 낳은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의 허술함,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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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순씨 개인적으로 정말로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오히려 논란만 키웠다.
    ⓒ JTBC


    그럼에도 영화 주장대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씨의 진술이 매번 바뀐다. 서씨는 김광석 사망 당일 영상에서 "술 먹고 장난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5일 JTBC 인터뷰에서 서씨는 이를 두고 "'장난같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가 와전된 거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첫 경찰 조사에선 "남편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지고 나갔더니 남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가, 다음 조사에서는 "비디오를 보다가 인기척이 없어 거실로 나와 보니 남편이 목을 매 숨져 있었다"는 상반된 진술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를 보면 이 기자는 서해순 어머니로부터 "딸이 새벽에 자다 거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을 매 죽어 있다지 않우"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인기척이 없다", "추울까봐 이불을 가지고 나갔다"란 서씨 진술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또 서로 다른 담배에서 나온 꽁초 30여개가 거실에 있었다는 점도 김광석이 혼자 있다가 자살로 죽은 건지 의문을 낳는다. 특히 사망 직후 옥상으로 올라가는 층계 계단에 기대어 있었던 김씨가 줄로 자살이 가능했는가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김광석 딸과 음반 저작권을 둘러싼 의혹도 풀어야 할 남은 숙제다. 

    김광석은 생전 '부치지 않은 편지'이라는 곡에서 죽음에 대해 불렀다. 김광석은 새벽에 홀로 떠난 자가 됐고 그 뒤의 김광석의 모습은 우리 눈으로 알 수가 없다. 대신, 그가 잘 갔기를 바라는 마음을 곡의 가사로 보탠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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