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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 감당 못하는 서사영화 2017. 12. 15. 02:40
기말 시험을 마친 오늘, 연말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히는 <강철비>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때깔은 좋으나 짜임새는 그렇지 못한 영화였다. 사실 분단이란 주제는 영화에서 더는 생소한 게 아니다. 남북의 대치와 동족의 살상, 그로 인한 고뇌는 '남북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온 서사였다. 그 전형성은 주제가 안고 있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그보다 문제는 남북의 긴장과 이에 얽힌 국제관계의 역학을 분주하게 끼워 넣으면서 생기는 장황함이었다. 남북영화라도 사연이 있는 소수에 천착한 서사라면 이 함정을 피해가곤 했다. 그러나 개인에서 정부, 국제로 영역을 확장한 영화는 커진 판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사 전체를 가라앉히곤 했다. <강철비>가 그런 경우였다.
개인을 다루는 것과 정부를 바라보는 것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행동은 대개 자유 의지로 비롯되지만 한 나라의 정부는 대통령이나 청와대 몇 사람의 말 몇 마디로 움직일 성격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강철비>는 고민해야 했다. 중차대한 시기에 말이 표출되는 곳은 청와대를 비롯한 과두 집단뿐이다. 압축적으로 서사를 전달해야 하는 영화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리얼리티를 크게 반감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를 보완하려는지 영화는 자꾸 소수의 인물들로 하여금 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김빠진 얘기, 예상이 가는 얘기였다. 국제안보로 영역을 확대하는 지점에선 일본의 이지스함을 비춘다던가 얼핏 현실감을 증폭하기 위한 때깔 좋은 장면을 나열했다. 그러나 커진 판을 감당하지 못한 서사는 그만 장면의 리얼리티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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