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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동 - 문화관광부 장관 취임사 중
    생각/사료 2020. 8. 31. 23:22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기능이 얼마나 막혀 있는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소통''이란 그 사회의 성격과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즉 과거에는 사회가 신분이나 집단으로 구성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의사소통으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민주화 되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방식이 민주화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정치적 제도는 민주화 되었으면서도 그 소통의 방식은 전혀 민주화 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와 정당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사회적 기능을 맡은 공적조직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눌려 마비되고 왜곡되어 기형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대구지하철 사고는 그것의 비극적이고 상징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문화의 역할이란 지하철역 구내에 보다 세련된 의미있는 장식물이나 걸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네 삶에서 문화란 그런 작은 디테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것, 즉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의 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문화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천년,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에서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 컴퓨터, 디지털 문명 등이 이미 우리의 일상을 시시각각 바꾸어놓고 있음을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문명이 엄청난 양과 속도로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은 바로 소위 ''문화 컨텐츠''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새로운 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명명하는 것입니다. 문화를 정치나 경제의 부수적인 영역으로 보는 낡은 시각으로는 결코 오늘의 변화에 대처해낼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적 창의성과 자율성이 모든 생산·유통·소비 영역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문화적 관점이 요구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문화가 산업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은 지난 정부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상당한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산업적 논리에는 상당한 오해가 존재합니다. 즉, 문화를 산업적, 또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문화도 돈 된다''는 식의 단순논리에 머물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되는'' 문화(이를테면 게임이나 영화, 에니메이션, 관광 등)는 투자, 육성하고, ''돈 안되는'' 문화(문학, 연극, 미술, 박물관 등)는 직접 지원해서 보호한다는 분리적 접근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근본적으로 지난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문화도 돈 된다''가 아니라, ''돈 되는 문화, 돈 안되는 문화가 따로 없다''는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관점에서 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가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문화상품들이 중요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문화적 형식과 관점, 문화적 자율성과 창조성이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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