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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 어느 도살자의 이야기'생각/책, 음악 2013. 5. 23. 02:15
책 ‘고기’에서 주인공은 왜 현실에 항거하지 못한 채 순응하는 자세를 취했는가. 현실 속 체제에 항거한다는 것은 개인적 담론의 입장에서 불가능하다. 항거 자체는 대중의 공통적 사고들이 집결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고기’의 현실은 대중적 집결의 유인책이 현존하지 않을뿐더러 항거의 일차적 형성 바탕인 개인의 사고마저 살육에 따른 주식(主食)의 배분 과정 속에 정지 돼버리는 양상을 띤다. 체제는 삶을 지탱해나가는 데 필수요소인 主食을 볼모로 삼아 체제 구성원을 틀어쥔다. 체제는 화폐 유통 자체를 카드 하나로 단일화해 거래 과정의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카드와 고기 간, 배분 관계만을 용인하여 食의 터울을 일원화시킨 것이다. 구성원은 죽음 대신 하루라도 연명하기 위해 主食에 얽매이며, 일원화에 따른 척박함 가운데 유통 과정의 문제의식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제 구성원들은 얼마 안 될 생면부지를 위해 왜 처참한 삶을 용인했던 것일까. 생면부지를 타파하고 항거의 내면을 자극할 수 있는 산물의 부재가 한몫 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산물은 곧 교육이자 계몽이다. 삶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삶 자체의 당위를 자각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수 있다. 체제 구성원들은 공권력의 감시와 압제에 순종했으며 살육과 식인의 삶에 찬동하였다. 감시와 압제, 식인적 행위에 순종한다는 것은 구성원 개체가 지배구조와 배분구조, 생활양식 등의 전반적 문화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현대 사회상과 비교하여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폭력과 압제, 살육이 난무하는 사회를 각 개체들이 집단을 형성해 전복을 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단 형성에서 변혁으로 이어지는 연결다리는 두 가지 조건에 따른 산물에 의해 설치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적 사고와 가치관 교육이 가능한 계몽적 환경이다. 둘째는 개체가 모여 대중적 집단 사고가 가능해질 수 있는 환경이다. 두 가지 환경의 조성이 되지 않는 한, 집단적 사고에 의한 변혁의 길은 봉쇄되는 것이다. 개인적 분투로 인한 변혁은 미세한 변화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직시한다면 각 개체를 이어줄 집단 사고의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은 두 환경의 부재 속에 압제를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심화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회화를 의미하며 이는 곧 내면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식의 올바른 가치관의 양립은 내면화에 따른 가치관이다. 계몽은 현존하지 않았으며 내면화가 곧, 사이비 계몽이자 정당화의 불합리한 도구였다. 주인공은 사회구조적 압제 가운데 폭력과 살육을 행위적으로 터득했으며 행위를 내면화해 자신만의 정당성을 성립시켰다. 정당성은 삶의 지탱 요소이자 개체의 정당성은 주관의 바탕을 둔 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인공의 정당성은 살인이라도 불사할 욕구 해소였고 식인인간의 삶이었다.
결과적으로 안나의 비극은 주관적 정당성의 결과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안나를 놓고 벌인 행동과 사고를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릇된 정당성을 갈아엎을 계몽적 사고가 주인공에게 제대로 주입되지 않았으며 주인공은 계몽적 사고를 도리어 두려워했다. 그것은 이미 관성처럼 된 사고를 변화시키는 데엔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바이며 계몽 설파 시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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