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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대회에서 연거푸 4등을 하는 초등학생 아이, 수영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등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엄마는 열불이 난다. 만년 4등을 하면 메달은 고사하고 수상 실적 채워 아이를 대학 보내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엄마는 시시콜콜 "구질구질한 삶을 살 래" 아이에게 압박을 준다. 교육과 사회 현장이 그물처럼 쳐놓은 '성공의 등식은 곧 성적'이라는 것을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이다.
급기야 엄마는 메달을 위해 피멍은 예사로 남기는 폭력 강사를 아이에 맡기기에 이른다. 이른 새벽, 주변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1대1 교습 시간. 강사는 자기가 세워놓은 기준에 못 미친다 싶으면 아이에게 가차 없이 매질한다. 아이의 등 쪽과 엉덩이의 멀쩡했던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피멍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못내 괴로워하던 아이는 '내가 못 해서 맞은 것'이라고 어느덧 폭력을 순응하고 정당화해버린다.
마냥 영화 줄거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의 모습은 혹독한 교육 현장에서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당시를 상기하면 학원에서의 일이 잊히질 않는다. 학생들에게 영단어를 무작위로 물어봐 대답을 조금만 머뭇거리면 매질은 이뤄졌고, 시험 치고 영단어 틀린 개수대로 맞는 건 덤이었다. 강사가 기다란 막대로 학생 손바닥을 내리치는 동작을 진행할 때면 허공에 봉 휘두르는 소리가 절로 났다. 휘두르는 강도가 얼마나 셌는지 몇 번 맞으면 손바닥이 얼얼하고, 더 맞으면 피멍이 들 정도였다.
"예전에 고등학생 가르칠 땐 쇠파이프로 때려서 피가 철썩 나올 때도 있었어." 강사가 수업 중 늘어놓은 후일담이 단연 생생하다. 손바닥이 얼얼할 때면 내가 못 외워서 맞은 것 아닌가, 필사적으로 외웠다면 안 맞았을 것 아닌가, 그렇게 자기비판적으로 폭력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영화는 과거 일련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 당시 인식을 교정한다. '맞을 만해서 맞았겠지'라는 은연중 담긴 폭력에 대한 인식은 물론,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성과로 일원화시켜버리는 세태 역시 이 영화의 비판 대상이다. 영화의 주 무대는 사교육이다. 사설 교육 현장에서 관리, 감독이 소홀한 것을 틈타 아이들을 상대로 암암리에 이뤄지는 폭력 실태 또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을 재차 느낀다.
사진 출처: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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