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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물 경영'으로 모은 돈의 행방생각/단상 2016. 7. 10. 22:58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선수를 시작했던 마해영 해설가는 회고록 '야구본색'에서 구단주 롯데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렇게 탄탄한 회사가 지독히도 구두쇠였다. 해마다 전지훈련을 떠날 때 사용하는 원정용 가방을 다른 팀들은 구단에서 구입해 나눠주는 반면 우리는 선수들이 돈을 걷어 구입해야 했다. 유통기한이 보름 남짓 남은 롯데햄 선물세트가 구단에서 선수에게 나눠주는 특별 명절 선물이다."
야구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롯데는 동종 업계 대비 처우가 열악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년 전 공시된 금감원 자료에서 백화점 사업을 맡고 있는 롯데쇼핑의 직원 1인당 연봉은 3300만원대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보다 최소 1100만원 격차가 났다. 그렇게 돈 쓰는 데 인색하던 롯데가 정작 수상한 곳엔 돈을 뿌리고 다녔다.
오너 딸이 회사 돈 40억원을 횡령해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파악된 오너 일가 횡령·배임 규모만 3000억원이라고 한다. 회사 돈만 날려먹은 게 아니다. 공공자본에도 손실을 입혔다. 코레일이 지분 31%를 보유한 롯데역사를 동원해 보험업을 인수했다가 평가 손실로 1100억원을 까먹었다. 자기 잇속은 채우면서 회사에 헌신한 곳엔 아랑곳 안하는 롯데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도 논란 한복판에 서 있다.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신격호 회장 처와 자녀에게 지난해까지 몰아줬다. 증여를 거치지 않고도 자사 계열사를 이용해 부를 쉽게 늘리는 수법을 쓴 것이다. 또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해 쌓은 이익을 주요 주주로 있는 오너 일가에 배당금으로 지급해왔다. 이번 검찰의 롯데 수사 내용 상당수는 이전에도 수면 위로 드러났거나 의혹이 제기됐던 것들이다.
백화점 수수료 논란과 홈쇼핑 갑질 논란까지 롯데를 둘러싸고 흘러나오는 얘기마다 악취가 난다. 롯데는 그간 백화점과 마트마다 태극기를 세우고 국민 기업을 자처하며 애국 마케팅을 해왔다. 악취를 희석하려 애국을 동원했다가 그 격을 떨어뜨리는 우마저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산총액 106조로 재계 5위인 그룹의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건강한 경제는 요원할 것이다.
사진: 2015.11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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