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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주 대장 갑질, 그 정도가 뭐가 문제냐는 분들에게
    쓴 기사/기고 2017. 11. 1. 17:15

    [24개월 병영 기록 ⑫] 국방부 '사적 지시 금지' 교재 두고도 간부들 갑질 방치 

    [이전 기사: 군대의 '상명하복', 막내는 괴롭습니다]

    박찬주 육군 대장과 부인의 공관병 갑질 증언이 양파 껍질을 벗기듯 나오고 있다. 아들의 바비큐 파티까지 준비해야 했다는 증언이 전 공관병 입에서 나온 가운데, 지난 4일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공관병 손목에 호출벨이 착용 됐고 부인이 도마를 세게 내려친 점 등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갑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불거졌었다. 

    당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 공관병으로 근무했었던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관병은) 가내 노비나 다름없는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최 총장은 운전병에게 아들이 홍대에 가도록 태워주라고 한 내용이 폭로되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논란을 일으킨 두 군인 모두 공교롭게도 '대장'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박찬주 대장은 육군 2작전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최 총장은 공군의 최고책임자였다. 상관의 갑질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이미 마련이 돼 있었지만 두 대장의 갑질은 막을 수 없었다. 

    휴짓조각된 교육과 규정

    ▲  지난 2007년, 국가인권위와 국방부가 개발하여 배포한 국군 인권교육 교재. 페이지 121쪽에 따르면 간부의 사적 지시 사례를 명확히 규정해두고 있다.
    ⓒ 국군 인권교육 교재 갈무리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방부가 지난 2007년 개발한 '국군 인권교육 교재'에 따르면 사적 지시의 잘못된 사례로 대리 운전시키기, 요리, 숙소 청소 등을 꼽았다. 박 대장과 최 전 총장의 사례와 들어맞는 것이다.

    이밖에 교재는 이삿짐 운반과 커피 심부름을 사적 지시의 예로 지적하면서 이 같은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는 직권남용과 공정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30일부로 시행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서도 제36조를 통해 상관은 직무와 관계가 없는 사항을 명령해선 안 된다고 분명히 규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몇몇 장성은 이런 규정을 휴짓조각으로 여기고 병사를 천대하듯 갑질을 해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군 내부의 사적 지시는 이미 만연해 있다. 2015~2017년 5월, 2년의 복무 기간 동안 자대에선 대대장이 두 번 바뀌었다. 대대장이 새로 오면 골치를 썩이는 곳은 '행정반'이었다. 

    대대장이 오는 것에 맞추어 묵게 될 숙소를 청소하고, 비품을 나르는 건 병사 몫이었다. 창고 업무를 담당하는 나는 용케 이 업무에서 벗어났지만 커피와 차 심부름은 피하질 못했다. 손님이 사무실에 찾아오면 응대는 병사의 몫이었다. 그러지 아니한 경우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침에 간부가 마실 커피를 타주는 것까지 병사가 신경을 써야 했다.

    커피 심부름 정도는 어떠냐?

    누군가는 커피 심부름 갖고 왜 이리 과민 반응하는 거냐 핀잔할 수 있겠다. 어쩌면 지극히 낮은 단계의 사적 지시가 커피 심부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연히 국방부가 내놓은 교재에서도, 현행 법률에서도 직무상 관련이 없는 사적 지시는 금한다고 규정해뒀다. 심부름 정도면 어떠냐는 인식이 켜켜이 쌓여 대장의 갑질 같은 논란을 낳고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더구나 내가 근무한 창고 업무의 상당 부분은 병사에 의해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관련 기사: 군대의 '상명하복', 막내는 괴롭습니다). 병사와 간부가 일을 균등히 하고, 병사가 존경의 의미에서 심부름을 자처한다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의 대부분은 병사 몫이었다. 예컨대, 검수해야 할 품목 100개가 들어왔다고 가정하면 이 모두를 병사가 검수하는 경우가 흔하디흔했다.

    여기서 말하는 간부란, 하사 이상을 일컫는다. 병장 월급이 20만 원에 지나지 않는 2017년 기준으로, 각종 수당을 제한 하사 1호봉 기본급은 110만 원이다. 중사는 130만 원, 상사는 164만 원, 원사는 243만 원으로 책정됐다. 1호봉으로 책정한 것이니 여기에 근무연수에 따라 올라가는 호봉과 수당을 합산하면 상사 이상의 경우 200~300만 원은 기본이다.

    간부의 '천태만상', 반복되는 문제

    어디선가 불철주야, 솔선수범 일하는 간부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병사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기고, 월급은 병사보다 수십 배에 이르는 액수를 챙겨가며 사적 심부름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간부도 일선에 많다는 점 또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디 커피 심부름뿐인가. 자기 마실 물 갈기 위해 '커피포트' 닦아달라는 간부, 사무실에서 에어컨 쐬고 앉아있으면서 일은 모두 병사에게 맡기는 간부, 일은 원체 안하면서 심부름만 시키는 간부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지위를 이용해서 격무를 병사에게 넘길 때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군대에서 병사가 이를 문제 삼아 반기를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 대장이 육군참모차장 재임 시 부인 눈 밖에 난 공관병을 최전방으로 보냈다는 의혹이 나오는 판에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박 대장 갑질에 대해 증언에 나선 전 공관병 역시 민간인 신분이다.

    밖으로 나와서도 이런 문제 제기는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질 않는다. 비슷한 일을 겪었으면서도 '이 정도 심부름이면 뭐….'라는 인식과 계급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냉소의 시각이 합쳐져 문제의 해결을 사실상 방치해 왔던 게 아닐까. 

    지난 5일, 송영무 국방장관은 육군 28사단에 들러 "장병들에게 사적인 지시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다. 최 총장과 박 대장의 부끄러운 사례가 재현되는 걸 막고 군에 만연한 사적 지시를 뿌리 뽑으려면 지휘 계층부터 변화된 모습을 실질적으로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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