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국물 마시는 건 안 돼" 이런 군대 갑질도 있다
    쓴 기사/기고 2017. 11. 3. 10:54

    [24개월 병영 기록 ⑬] 병사간 부당한 갑질... 신고 제도의 온전한 운영 필요

    [이전 기사: 박찬주 대장 갑질, 그 정도가 뭐가 문제냐는 이에게]

    어느 육군 대장의 직권남용이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병사간의 갑질은 어떨까. 시대상이 바뀌어도 갑질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는 게 이 질문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놓고 갑질하는 건 줄었지만 교묘한 수법으로 갑질을 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대표 사례를 추려보면서 2015~2017년 5월, 내가 2년간 겪었던 병사간의 갑질 실태를 들여다본다.

    우선, 선임병의 지위를 이용, 목청만 높이고 밑에 병사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경우를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일이 있으면 같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병사가 몇 없는 팀이면 더더욱 그렇다. 선임병이면 선임답게 일을 앞장서 추진해야 하건만, 자기는 담배 피러 어디론가 쏙 사라지고, 좀 한가하다 싶으면 밑에 병사들의 일에 사사건건 불평을 늘어놓는다.

    병사들은 선임병의 이러한 태도에 속이 썩어간다. 세 기수 차이나는 어느 일병 고참은 마치 병장 행세(병장도 그리하진 않았다)를 하듯, 갓 들어온 신병들에게 얼굴평, 나이 같은 공격적인 질문을 해대기도 했다. 과거 자신이 빨래하는 곳에서 발을 씻다 걸린 일을 읊조리면서도 이래저래 군기잡기 노릇을 했다.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은 사라지고 역지사지는 보이질 않았다.

    계급에 따라 옷 착용 여부 결정

    둘째, 철 지난 갑질을 하는 경우다. 자대에 와서 내심 황당했던 것 중 하나가 BX(Base Exchange의 준말로 군 마트를 뜻한다. 육군은 PX로 주로 쓰인다)에서 판매하는 옷을 입으려면 일정 정도 '짬'이 차야한다는 거였다. 군복은 계급과 무관하게 통일해서 입거늘, 정작 생활관에선 병사의 위계에 따라 옷이 달라지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이것도 윗선임들이 만들어놓고 전통의 계보마냥 이어나가고 있었다.

    밥 먹을 때도 갑질은 이어진다. 식탁보에 팔을 내려놓는 걸 두고 지적하는 선임(관련 기사: 말 하나하나에... 군대 악습, 멀리 있는 게 아니다)과 별개로, 식판을 들어 국물을 마시는 걸 가만두질 않는 선임이 있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 숟가락으로 언제 그 많은 국물을 떠서 먹는단 말인가. 편리함의 차원에서도 국물을 마시는 건 허용될 필요가 있을 텐데 말이다.

    어느 병장은 잘만 국물을 마셨지만 다른 일병은 후임 기수가 국물 마시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계급에 따라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현실. 이거야말로 계급 사회의 결정판이었다. 이전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밥 먹는 것도 신병은 눈치가 필요했다.

    "기상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라"

    셋째, 자신의 과거 겪은 일을 잣대로 후임병의 행동을 강요하려는 태도다. 옛날 일을 꺼내고 나눌 순 있다. 허나 이걸 남에게 강요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보통 공군은 아침에 점호를 하면 바깥에서 점호를 실시한다. 기상하면 시간에 맞춰 생활관에서 나와 행과 열을 맞춰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병과 짬이 낮은 병사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나와 맨 앞줄에 도열해야 했다.

    어느 날, 한 신병이 빨리 도열해야 한다는 걸 미처 몰라 그 신병 윗기수들이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질책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 신병과 함께 너희들도 기상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나와 있으라는 요구가 따라왔다. 이건 분명 기상 시간의 침해였다. 나도 예전에 그런 적 있으니 너희도 따르라는 식이었다. 그 요구가 얼마 안 가 사그라들었다는 걸 안심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사실 대놓고 폭력을 일삼거나 모욕을 하는 병사는 다행히도 부대에 없었다. 이런 배경엔 신고 제도가 효력을 발휘한 탓이라고 본다. 실제 선임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낀 후임 병사들 일부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느낀 거에 대해 신고를 꺼리지 않았다. 군에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내려면 신고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선임도 후임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는 좀처럼 하질 못했다. 어떻게 보면 선임과 후임의 유대관계가 싹텄음은 물론일 것이다. 화목한 병영생활의 시작은 서로간의 존중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러한 신고 제도의 밑바탕은 존중을 한층 배양하는 토대가 됐다. 의식적으로라도 후임병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신고했는지 드러나... 신고 제도의 허점

    ▲  SBS 8시 뉴스 방송 갈무리
    ⓒ SBS



    그렇다고 신고 제도가 온전하게만 운영되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신고자의 신원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헌병실이나 감찰실에 신고를 하면 부대 소속 장교가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자체적으로 떠벌리는 사례가 흔했다. 그러면 누가 신고를 했고 어느 누가 신고를 당했는지 부대 내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신고 당할 만하다'란 인식이 부대에서 공유되던 선임이 신고를 받으면 그 신고자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잘못은 했는데 신고할 정돈 아니라는 인식이 깔린 상황이라면 신고자는 난처한 상황에 내몰리곤 했다. 결국 신고자의 신원이 보호되지 않는 한, 신고 제도는 반쪽자리 일 수밖에 없다. 

    '군기'를 그토록 옹호하는 혹자는 신고 제도가 선임이 후임을 눈치보는 문화를 만들어졌다며 개탄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진정한 군기는 강요와 압박에서 세워진 권위가 아닌 존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각자 맡은 분야, 직무껏 최선을 다하고 절차를 존중하면 애초 신고 당할 토양이 사라진다. 오히려 신고 제도가 군기가 무너지는 걸 막을 밑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부제보자를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군 신뢰의 차원에서도 신고 제도의 온전한 운영은 반드시 필요하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