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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직해도 월급 170만원... 돈 없어 고향 못가는 청년들
    쓴 기사/기고 2017. 11. 15. 16:50

    [2017 추석 열전] "생활비 버거운 마당에..." 왕복 10만원 깨지는 추석연휴 귀성은 '사치'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예지]

    "'학생'이라는 게... 경제적 자립이 아직 어렵잖아요. 취업 준비하다가 알바로 번 최저임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란 너무 힘들고... 방값, 밥값, 책값, 토익이나 자격증 응시료를 대는 것도 벅차니까. 포기하기 쉬운 게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 것 같아요. 푯값이라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대학생 김애린(23, 여)씨는 이번 추석 연휴, 고향에 내려갈지 고민이 깊어졌다. 부모님이 전남 나주에 있는 김씨는 대학 재학을 위해 지난 2013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김씨가 고향에 내려가는 때는 설날과 추석뿐이지만 이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현재 4학년 마지막 학기인 김씨의 월 생활비는 아끼고 아껴 약 60만 원. 기숙사비와 밥값, 교재값, 교통비 등을 합한 것이다. 평일엔 수업과 과제를 비롯해 학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 주말에 알바를 하고 있지만 한 달 김씨가 손에 쥐는 돈은 2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 주마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 10만 원으로 가계부 적자를 메운다. 

    "생활비 생각하면 귀성 횟수 줄인다"

    ▲  열차타고 가는 길. 고향을 향한 마음은 변함없지만 고향으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 고동완


    김씨가 전남 나주에 가려면 열차 푯값으로 드는 비용만 KTX 편도 기준 4만8500원이다. 왕복이면 9만7000원, 10만 원에 육박한다. 추석 연휴 기간, 서울역에서 나주역으로 가는 열차는 KTX가 유일하다. 무궁화호 이용으로 가격 부담을 낮출 수가 없다. 버스로 가더라도 일반고속 기준 편도로 1만8400원이 든다. 

    김씨는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생활비가 버거운 마당에 귀성 횟수를 줄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주말 알바를 하고 있는 김씨는 추석 전주 금요일에 버스로 귀성할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 날 수업이 오후 6시에 끝나는 데다 버스 막차가 오후 6시 35분이라 터미널에 도착하면 밤 11시가 된다. 그는 "그 시각엔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긴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대학원을 졸업한 최정수(가명, 29, 남)씨의 사정도 김씨와 엇비슷하다. 서울에 사는 최씨의 고향은 대구. 연휴 기간,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 기준 편도로 4만3500원이 든다. 왕복만 8만7000원이다. 특실 가격은 6만500원부터다. 수서역 SRT를 이용하더라도 편도만 최소 3만7100원이다. 

    최씨는 다행히 직장을 얻어 월 170만 원가량을 벌고 있으나 서울의 치솟는 전셋값과 생활비를 고려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대학생 때 돈 아끼려고 명절 아니면 고향에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는 최씨는 이번엔 울며 겨자 먹기로 KTX를 예매했다. 무궁화호(요금 2만1100원)를 이용하면 돈을 아낄 수 있지만 KTX에 견줘 편성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탓이다.

    무궁화호·버스 대신 KTX 택해야만 했던 이유

    ▲  서울역. 열차들이 출발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다.
    ⓒ 고동완


    코레일 예약 현황을 보면 추석 연휴 중간인 10월 3일 화요일에 서울역에서 동대구역으로 가는 94편의 열차 중 무궁화호는 19편에 불과했다. 요금이 3만1400원으로 무궁화호보다 1만 원가량 비싼 ITX-새마을은 10편에 머물렀다. 나머지 열차는 모두 KTX다. 다른 날도 비슷했다.

    9월 24일 오후 8시 기준, 10월 3일 오전 5시 40분에서 오후 6시 19분까지 무궁화호 14편은 모두 매진된 반면, KTX는 입석을 받는 열차가 4편, 좌석에 여유가 있는 열차는 3편이 있었다. 최씨는 "명절이 되면 무궁화호 표가 별로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열차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 건 어떨까. 최씨에게 버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최씨는 지난 2013년 추석을 상기하며 치를 떨었다. 서울과 동대구간 고속버스 소요 시간은 터미널 운행 정보에 따르면 3시간 30분으로 명시돼 있으나 당시 최씨는 9시간 동안 버스에 머물러야 했다. 

    "열차는 시간에 맞게 갈 수 있잖아요. 버스는 주말만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차가 밀려버리면 오가는데 4~5시간이 족히 걸려요. 명절엔 9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차에 있다 생각해보세요. 화장실에 못 간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 이후로 명절에 버스를 타려 한 적 없어요."

    KTX '청년 할인 혜택', 명절 기간엔 모두 '중지'

    ▲  부산역 전경.
    ⓒ 고동완



    대학 4학년인 심동현(23, 남)씨도 고향이 대구다. 서울로 올라온 지 4년이 된 심씨는 올해 봄에 한 번 고향에 내려가고 그 이후엔 내려가질 못했다. 이번 추석 기간에도 심씨는 생활비를 벌어볼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심씨는 "왕복 8만~9만 원하는 열차푯값이 부담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지방은 무너지고 서울에만 청년이 올라오는 이 상황이 청년의 고향 방문을 힘들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명절 연휴 기간(9월 29일~10월 9일)에는 열차 예매 할인이 중지돼 귀성하려는 청년의 시름이 더 깊어진다. 29세였던 최정수씨 역시 만 25세~33세에 10%~40%의 KTX 할인이 제공되는 '힘내라 청춘' 대상에 포함되지만, 명절 기간에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만 24세까지 10%~30% 할인이 주어지는 '청소년 드림'도 혜택에서 빠진다. 코레일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좌석이 거의 매진되는 상황이라 할인 적용에 제한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석을 맞아 KTX 운임의 30%와 40%를 할인하는 '역귀성 상품'이 나오기는 했으나 10월 1일에서 3일은 상행만, 10월 5일에서 7일은 하행만 할인이 가능하다. 즉, 지방으로 대거 내려가는 10월 2일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경우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5일부터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역귀성'에만 적용되는 할인이다.

    지수경(가명, 23, 여)씨는 "청년에게 주어졌던 열차 할인 제도를 귀성에도 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지씨의 고향은 부산. 편도가 5만9800원에 달하는 KTX 열차표만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장학금과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지씨는 "푯값을 부모님이 보조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귀성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복 20만원 넘는 제주 "돈 없어서 주저하다니..."

    ▲  제주 시내 모습.
    ⓒ 고동완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청년의 사정은 어떨까. 대학 마지막 학기를 재학 중인 이따끔(24, 여)씨. 이씨는 2014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입학 이후, 이씨가 추석에 제주로 내려간 적은 딱 한 번. 성수기에 제주로 가는 표 구하기가 어려운 건 둘째 치고, 왕복 비행기값만 20~30만 원이 깨져 귀성을 망설인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김포에서 제주로 가는 국내 항공사 항공 현황을 살펴보니 24일 기준 10월 2일 제주로 가는 표는 이미 동이 났고 10월 3일 오후 8시 50분에 제주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하나 남았으나 11만9200원이었다. 10월 4일을 보니 저가항공사로 분류되는 진에어와 이스타항공도 제주로 가는 푯값이 최소 10만3900원이었다. 명절 마지막 다음날인 10일, 항공사 푯값이 최소 3만5100원로 떨어진다는 점과 견주면 명절에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김찬호(20, 남)씨는 부모님이 제주에 있다. 그는 "책값, 기숙사비 등 안 그래도 나갈 돈이 많은데 비행기표를 부모님이 끊어주지 않았더라면 제주로 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다른 제주 친구들도 못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푯값이 비싸니 내년 추석엔 굳이 안 내려가도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향이 제주인  대학교 3학년생 김홍범(23, 남)씨는 "자취하는 학생들은 한달 생활비가 빠듯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추석엔 2~3년에 한 번 제주에 간다. 명절 때 돈이 없어서 내려가길 주저한다는 게 슬프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고향에 가는 것도, 부모님 만나러 가는 것도 용기가 요구되는 게 2017년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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