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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심한 밤, 성매매 전단 잡는 '대포킬러' 효과는?
    쓴 기사/기고 2017. 11. 30. 16:33

    [현장] 성매매 전단지 근절 나선 민생사법경찰단 "대포킬러 효과 체감"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김예지]

    ▲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캐비닛에 보관된 상자. 수거 과정에서 모은 성매매 전단지가 빼곡히 담겼다.
    ⓒ 고동완


    상자 안이 빨강과 노랑 일색이다. 더 가까이서 보니 여성의 신체 사진과 전화번호가 담겨있는 명함 크기의 종이가 빼곡하다. 유흥가에 무차별로 뿌려지는 성매매 전단지다. 

    "이건 새 발의 피예요. 많이 버려서 이 정도입니다. 다 모아놨으면 사무실 캐비닛 다 찼을 겁니다."

    이상철(가명)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수사관이 혀를 내둘렀다. 이곳저곳에 다량으로 성매매 전단지가 유포되다 보니 한 번 수거에 나서면 많게는 150여 장까지 모인다는 게 이 수사관의 설명이다. 수거 건수를 집계하는 건 어림도 못 낸다. 이 전단지를 없애려면 보통의 방법으론 안 될 터.

    지난 29일 밤, 경찰단이 활동하는 서울시청 남산별관 2층은 고요하다가도 연거푸 울리는 울림소리에 정적이 깨졌다. 울림소리는 성매매 전단지 신고가 접수됐다는 알림.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민생사법경찰단은 더 예민해진다. 전단지 배포가 집중되는 10시 이후에 신고가 몰리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희민(가명) 수사관의 눈길이 신고접수용 휴대전화로 옮겨간다. 김 수사관은 경찰단 경력은 1년이지만 경찰관으로 7년간 일하다 특채된 베테랑. 폰에 성매매 전단지 사진이 들어왔다.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와 수사관이 전단지를 찍어 전송해온 것이다.

    ▲  대포킬러 작동 화면. 성매매 업자 번호로 전화가 걸리는 게 빨간 통화 표시이고, 녹색 표시는 번호가 등록이 안 돼 있거나 전화가 걸리지 않을 때다.
    ⓒ 고동완


    간단한 원리로 성매매 대포폰 퇴치

    이때 비장의 무기가 위력을 발휘한다. 특수 개발된 프로그램,'대포킬러'다. 대포킬러는 이름대로 대포폰의 성매매 영업을 무력화시킨다. 성매매 업자들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대포폰으로 번호를 만든다.

    프로그램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전단지에 써진 전화번호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3초 단위로 그 번호에 전화가 걸리고 성매매 영업을 경고하는 멘트가 전달된다.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 뜨면서 먹통이 되고 성매매 업자와 성구매자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대포킬러를 처음 고안하게 된 건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한 사건 때문이다. 지난 3월 15일, 수사관과 단속을 하던 구청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단지를 뿌리던 사람을 잡았으나 오토바이가 그대로 질주하면서 구청 직원이 내동댕이쳐졌다. 그 직원은 다행히 찰과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면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 

    이 사건은 전단지를 근절하려면 검거 외에 다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경찰단에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시시각각 변하는 성매매 업소의 영업망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대포킬러는 필수였다. 지난 2013년 서울시는 통신사와 협약을 맺어 성매매 업소로 판별된 전화는 정지할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사나흘의 시간이 걸려 대포폰을 재빨리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 두 수사관이 신고 접수를 처리하고 있다.
    ⓒ 고동완


    밤 9시 이후 급증하는 신고

    대포킬러가 작동을 시작한 건 지난 14일. 추산 중인 것까지 더해 14일부터 29일까지 30여 건의 성매매 번호가 적발됐다. 경찰단에 따르면 지난해 번호 정지 건수는 93건. 대포킬러가 불과 3주도 안 되는 기간에 30여 번호를 무력화한 것과 견주면 효과가 입증된 셈이다. 김희민 수사관은 "대포킬러 도입 전후로 나뉠 정도로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포킬러 도입 이전엔 전단지 배포를 검거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후엔 번호 차단도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정해진 범위에 한해 수사와 검찰 송치까지 가능한 경찰단은 지난해 전단지를 배포한 4명을 입건했다. 이상철 수사관은 "지역을 밝힐 순 없지만 주로 유흥가와 모텔이 밀집한 곳에 전단지가 자주 출몰한다"고 설명했다.

    전단지 신고는 밤 9시 이후에 집중해서 들어왔다. 9시 11분 신고가 접수된 데 이어 23분, 48분 전단지 사진이 접수됐다. 총 9명 인력이 번갈아 2인으로 팀을 이뤄 사무실에 밤늦게까지 상주해 신고를 처리한다. 10시엔 23분, 27분, 30분 등 5분 내외 간격으로 울림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수사관이 집 근처를 걷다가 전단지를 발견해 전송해오는 상황도 벌어졌다.

    ▲  29일, 이날 신고가 접수된 것 중 신종으로 분류되는 전단지다. 010이 아니라 070으로 번호가 시작하고, 키스로 성매매 언급을 대신했다.
    ⓒ 고동완


    전단지 통한 성매매 영업 여전히 활개

    전날에 비가 와서 그런지 전단지 배포가 잠시 주춤하다 29일 다시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루 최종 접수된 신고는 총 12건. 중복 번호를 제외하면 4건이 대포킬러로 정지됐다. 김희민 수사관은 "하루 평균 3건 내외가 적발돼 대포킬러에 등록된다"고 말했다.

    이 수치는 중복을 제외하고 매일 새롭게 등록되는 번호를 기준으로 집계된 것으로, 전화를 통한 성매매 영업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어떻게든 정지를 피하려는 방법은 다양하다. 2~3개 번호를 만들어놓고 날마다 바꿔 전단지에 기재하는 경우, 성매매 뉘앙스를 빼고 '키스'와 같은 암시적 문구를 넣는 경우도 있다.

    이상철 수사관은 "사무실 번호인 070으로 번호를 기재해놔도 010 대포폰으로 연결되는 번호도 있기 때문에 전단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며 "성매매를 위장한 변종 유해업소가 아닌지도 살핀다"고 말했다.

    대포킬러 도입이 언론 보도 등으로 세간에 알려지면서 자원봉사로 전단지 신고에 나서겠다는 주민들의 문의도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민생사법경찰단 이강국(가명) 반장은 "각 구청 광고물 관할과에 자원봉사를 요청하면 심사 후 자원봉사자로 합류하게 된다"며 "번호를 정지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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