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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생>, 아들과 딸은 누구를 통탄해할까(2017.9.18)
    생각/영화 2018. 1. 27. 19:35

      시대가 격동하면 거기에 부속된 개인의 삶도 요동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은 집단의 구호에, 사회의 단결에 쉽사리 묻히고 만다. 영화 <인생>은 1940년대 이후 정세가 급변해왔던 중국의 시대상을 어느 가족을 통해 관조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개인의 삶들을 길어 올린다. 1940년대와 1950년대, 1960년대를 조망하는 영화는 각각의 시대상에 따라 가정의 삶도 급변하는 면모를 고스란히 내보인다.


      1940년대 국공내전이 발발하던 시기, 부귀는 지주의 아들이지만 도박에 빠져있다. 아내의 만류에도 도박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집을 홀라당 잃고 만다. 아내가 떠남은 물론이요, 아버지까지 충격으로 횡사했다. 이는 지주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부귀의 변곡점이기도 하다. 도박은 멀리하고 그림도구를 얻어 생계를 이어나가려던 부귀는 세상의 파고가 가만 내버려두질 않는다. 얼떨결에 국민당에 끌려가고 다시 공산당 군대의 물결에 두 손을 들어버리는 해학 아닌 해학이 펼쳐진다.


    닥친 세파 속 미약하기만 한 개인




      집에 부귀는 가까스로 돌아왔지만 딸은 그 사이 열병을 앓고 벙어리가 됐다. 급변하는 정국에서 아버지는 딸의 옆을 지키지 못했고 그 책임은 오롯이 가족이 짊어져야 했다. 국민당이 패퇴하고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1950년대에도 부귀의 가족은 울퉁불퉁 도로 한 가운데를 지나다 평탄함에는 안착하지 못한다. 지주 노릇을 했던 이는 반동으로 끌려가서 총살을 당하고 무엇이든 잘못을 해도 반동 소리를 들으면 겁을 지레 먹었던 시대, 부귀 역시 이런 시대상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이 반동이란 소리를 듣자 매를 주저 없이 든다. 


      더 커다란 충격파가 온 건 그 다음이다. 부귀의 아들이 피곤함에 잠을 무심코 자다 위원장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의 지시라면 옴짝달싹 못하던 시대, 아버지는 잠에 곤히 빠져있던 부귀를 일으켜 세우고, 끝내 학교에 가서 철을 모으란 얘기를 거역하지 못한 채 학교에 부귀를 보낸 결과였다. 개인의 상황과 의견은 뒤로 밀리고 상부의 지시가 우위일 수밖에 없던 그 시절, 아들의 죽음은 그래서 너무도 안타깝게 다가온다. 아내와 부귀는 슬픔에 젖어 어찌할 바 몰라 하지만, 이들은 딸과 함께 세파를 견디며 생을 이어나간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가 찾아왔다. 딸은 숙녀가 됐다. 쩔뚝거리는 노동자와 혼례를 치른 딸. 역시나 세상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다. 집 주변은 모택동 벽화 일색이고 이장과 부귀의 동료였던 춘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반동분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에 이른다. 딸의 혼례에도 모택동은 거의 신격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상의 자유가 철저하게 억눌려졌던 그 시대, 모택동을 비판하거나 자본주의에 흘깃하면 위기의 한복판에 서던 그 시대, 세상은 자유가 탁해지고 계급으로 사람이 다시 나눠지는 불합리가 횡행해졌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귀착하는 비극


      이것이 딸에게도 영향을 미칠지 누가 알았겠나. 출산을 앞둔 딸의 병원을 가보니 실력이 숙련될 법한 노교수는 모두 감옥에 가 있고, 갓 간호병원에서 온 이들이 의사 행세를 하고 있다. 출산은 성공적으로 됐지만 이내 딸에게 과도한 출혈이 생기고 누구 하나 제대로 처치하는 이가 없다. 의심과 불신, 갖가지 죄목으로 계급을 나눠 사람을 탄압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부귀와 그 아내는 딸을 살려 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부귀와 아내는 아들을 잃고 딸을 잃은 이 모든 걸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상부를 비판할 수 없었던 그 시대상, 비판 의식마저 거세된 채로 살다가 모든 책임을 자신의 원죄로 돌리는 상황마저 개의치 않게 된 걸까. 세상에 들이닥친 파고의 물결이 좀 더 잔잔했더라면 부귀 가족의 삶은 전보다 더 나아졌으리라 생각된다. 그 물결을 바로 잡는 건 부귀가 아니라 위정자였고 권력자였다. 그들이 판단한 행위에 따라 세상이 출렁이고 그 파급은 사회와 집단과 개인, 이어 부귀에게 이어진 것이다. 목숨을 허망하게 잃었던 아들과 딸은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까. 아닐 테다. 오히려 부모의 이러한 모습에 하늘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비극의 결과를 개인에게 귀착하는 비극을 통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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