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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쯤되면 장르가 최민식' 그 묵직한 존재감이 아쉽다
    생각/영화 2017. 12. 22. 21:35

    [리뷰] 영화 <침묵> 18년 만에 다시 만난 정지우 감독-최민식, 한층 진화한 욕망 그려내

    [오마이뉴스 글:고동완, 편집:오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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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엔터테인먼트


    정지우 감독이 또 한 번 욕망의 '선'을 건드렸다. 다루려는 욕망의 크기는 전보다 커졌다. 정 감독은 2015년 전작인 영화 <4등>에선 '점수'를 통한 인정의 욕구를, 2012년 영화 <은교>에서는 젊음을 향한 선망을, 1995년 영화 <해피엔드>에서는 일탈한 욕망의 치정극을 그려냈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침묵>에선 욕망의 '집약'을 보여준다. <침묵>은 <해피엔드>와 2005년 영화 <사랑니>의 삼각구도를 따라갔지만 사랑에만 욕망이 머물지 않는다.

    재벌 회장 임태산(최민식 분)은 유명 가수 유나(이하늬 분)와 약혼을 한다. 전처 딸인 임미라(이수경 분)는 유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나가 살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유력한 용의자로 딸, 미라가 지목된다. 딸의 범죄 유무를 가리고자 법정이 열리고 동성식 검사(박해준 분)와 최희정 변호사(박신혜 분)간에 공방이 시작된다.

    2014년 개봉한 중국 영화 <침묵의 목격자>가 원작인 <침묵>은 욕망의 경계선을 거미줄처럼 쳐놨다. 태산이 가진 지위는 적선보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유나가 태산에게 보내는 사랑은 욕망과는 무관하다고 가늠하기 어렵다. 태산이 유나와의 약혼을 딸의 의사와 아랑곳없이 밀어붙인 것도 욕망의 관철을 위한 행위이며, 태산이 돈과 승진을 내걸고 검사를 꼬드기는 건 욕망으로 욕망을 사려는 것이다.

    욕망이 진화할수록 커지는 날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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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엔터테인먼트


    욕망이 뻗어나가는 곳은 구체적이다. 유나가 전 애인과 정사를 하다 찍힌 '야동'이 휴대폰을 통해 퍼지고, '유나 팬클럽 운영진'을 자임하는 김동명(류준열 분)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CCTV 영상을 빌미로 생전 유나가 살던 집에 찾아가 온갖 것을 탐닉하려 한다. 한때 승진과 돈, 인정, 사랑의 이름으로 욕망이 점철됐다면 <침묵>이 그린 욕망엔 스마트폰과 CCTV 기술을 타고 관음이 더해지고 파멸의 위험성은 커졌다.

    그러한 욕망이 과거의 주류로 인식됐던 욕망에 비해 한참 퇴보했음은 물론일 것이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넘어서서, 돈으로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려는 욕망, 사람이 죽었음에도 고인의 물건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도구화하는 것, 욕망은 진화하지만 그 진화란 사람의 가슴을 깊숙이 찌를 칼날일 테다. <침묵>은 휘둘려지는 욕망을 이야기의 맥락 곳곳에 배치하여 욕망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경보를 울린다.

    그러나 <침묵>은 욕망이 결국 파멸로 직행한다는 익숙한 서사를 밟지 않는다. 돈을 철저히 숭배하여 '부패'의 화신이 된 태산의 결말은 '인과응보식' 예상에 비껴간다. 돈과 소유라는 욕망이 생기는 지점과 과정은 영화들이 보여 왔던 서사가 누적되면서 머리에 그려질 정도로 익숙할 테지만, <침묵>은 다소 색다름이 입혀졌다. 영화를 보다가 욕망과 파멸이란 도식적인 전개를 미리 짜고 결론에 당도해버리면 허에 찔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최민식을 위한 영화...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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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엔터테인먼트


    <해피앤드> 이후 18년 만에 정지우 감독과 의기투합한 최민식은 <침묵>에서 '연기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최민식은 감정의 과잉은 자제하면서, 묵직한 발성과 표정의 움직임, 몸의 동태로 의사를 뚜렷이 전달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태산은 최민식에 의해 치졸한 면모보다 욕망에 표리부동한 단단한 인물로 그려진다. 최민식이 펼치는 논변은 분노를 자아내되, 욕망의 경계선에 서려는 이들을 훅 끌어당기려는 것만 같다.

    요트를 타고 한강을 조망한다던가, 공중에서 이동하는 차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들어간 <침묵>은 정 감독이 그려낸 전작들에 비교하면 장면이 비추는 범위가 다채로워져 한층 미끈해졌다. 다만 영화는 1인칭 시점이 아닌 3자의 시선으로 인물을 관조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이나 욕망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다소 미흡하다는 허점을 남긴다. 특히 법정 스릴러 성격이 가미된 영화임에도 욕망이 잉태하고 행위를 낳는 내면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는 점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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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엔터테인먼트


    태산의 욕망은 인물들 말로써 적극 전달되던 것과 달리, 유나는 태산이 준 피아제 시계를 받고 감동하는 등의 몇 가지 표정과 말로써 태산을 향한 사랑을 내보이는 데 그친다. 욕망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가 원체 적은 탓에 유나는 태산의 욕망을 그려내기 위한 보조적 인물에 머무른 인상을 남긴다. 미라가 유나에게 품었던 적의가 잘못된 양태로 이어지는 과정은 법정 증언으로 축약돼, 유치장에 오고 매번 우는 미라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는 실종된다.

    재벌 회장 뒤치다꺼리를 하는 정승길(조한철 분)이나, 유나를 추종하면서 따라다니는 곳곳마다 CCTV를 붙이는 김동명은 극의 전개를 위한 방편이자 정형화된 인물이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침묵>은 최민식을 위한 영화라는 평이 벌써 나올 정도로, 무게추가 최민식에 쏠려 있으나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협소한 데서 비롯되는 헛헛함은 최민식의 연기력과 강렬함 외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2016년 영화 <특별시민>을 다시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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