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아편전쟁>, 동서양의 벽과 숙고해야 할 문제
    생각/영화 2018. 1. 2. 01:52

    정신의 속박만큼 무서운 게 없다. 속박은 종속을 일컫는다. 삶에 의지가 허물어지고 주체는 사라진다. 그런 마당에 자력으로 종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종속과 삶의 영위는 대척점에 있다. 그래서 무섭다. 현대에 들어서도 각 나라가 마약을 금지하는 배경이다. 마약이 가져다주는 일시의 쾌락에 사람은 넘어간다. 개인과 집단, 사회는 박약해진다. 마약의 폐해는 19세기 청나라가 입증해보였다.

     

    1997년 영화 <아편전쟁>은 청나라의 아편 퇴치기를 그렸다. 아편 퇴치는 난제 중 난제였다. 아편은 삽시간에 퍼졌다. 몽롱함에 중독되어버린 국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쾌락과 중독, 종속은 분리된 게 아니었고 일직선상에서 차례로 진행됐다. 종속은 더 큰 쾌락의 갈망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도를 마련했다. 순환의 끝은 죽음이었다. 희망과 자유의 꽃망울은 짓밟히고 생애는 단축됐다. 결말은 명확했다.

     

    누가 아편을 키웠나



     

    이 비참함을 진작 알았더라면 과연 아편에 손을 댔을까. 사회 기강은 허약했고 아편을 방조했다. 아편이 약으로 둔갑했다. 영화 속 아편에 중독된 한 여성은 만병통치약이라면서요. 피워보라 했잖아요라고 중얼거린다. 찰나의 쾌락에 시름이 사라졌다는 명분을 내세워 아편은 약의 칭호를 달고 활개를 쳤을 것이다. 그 여성의 후회는 중독의 유혹을 이기질 못했다. 후회는 번민을 낳고 아편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편이 만연해진 데는 일차적으로 부를 늘리려는 영국의 야욕에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아편을 팔아 대목을 얻으려던 청나라 상인의 탐욕도 무시할 수 없었다. 조정은 상인의 뇌물을 받고 아편 유통에 협조했다. 기강을 잡아야 할 조정은 아편 세력과 결탁하여 잇속 챙기기에 골몰했다. 아편을 제지할 수단과 세력은 미약했다. 이러한 시류에 아편이 골목골목 퍼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사회의 뼈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편 중독의 책임을 개인의 원죄로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당시 시대상은 인구는 증가하는 반면, 경작지는 감소하여 삶의 곤궁함을 낳았다. 약이란 덧칠이 칠해진 아편이 퍼져나가기 딱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정의 생각은 좀 달랐던 듯하다. 누구 하나 책임 의식을 실천하려는 이가 보이질 않는다. 영화에서 조정은 무능과 탐욕, 책임 회피뿐이다. 그나마 임칙서가 아편을 근절하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 영국의 행동 잘 지워지지 않을 것

     

    아편의 보급을 막으려면 조정의 쇄신이 우선이었다. 조정은 내부 개혁보다는 개인을 압제하는데 치중했다. 조정은 영국군을 달래려 자국 여성을 지휘관에 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편이라는 경제적 침탈의 위기에서도 조정은 민중과 단합을 꾀하지 않았다. 조정은 반란을 걱정한 나머지, 영국군에 대항할 군대를 조직하는 것마저 머뭇거린다. 나라의 세가 약해질수록 권력에 종사하는 이들은 권력을 움켜쥔 윗선만 바라보기 십상이다. 그 결론이 어떠하였는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국의 이율배반적 모습은 가관이다. 영국 의회를 찾아가 우리 국민이 고통 받고 있으니 정의를 실현시켜달라는 상인의 말에선 정의가 얼마나 주관적인 단어인지를 몸소 방증한다. 만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할 종교도 자국 우선주의에 함몰됐다. 영화 속 선교사는 주 이름을 들먹이며 포위된 영국 상인을 풀어달라 임칙서에 요구한다. 종교가 탐욕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례다. 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워 침탈을 강행한 영국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에 자각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도리어 영국 여왕은 중국을 소유한 게 19세기를 소유한 것이라며 욕망을 숨기질 않는다.

     

    청나라는 서양 열강의 위협 아래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었다. 이 치욕은 청나라 내부에서 잉태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패자에게 약육강식의 논리를 들이밀어 올가미를 씌우는 건 다른 얘기다. 서양 세계는 상생을 택하지 않았다. 탐욕의 충족을 위해 패자를 아예 짓이기고 말았다. 서양의 침탈과 야욕이 아시아에서 뒤섞인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벽이 여전하다는 건 아프게 다가온다. 역사는 과거지만 현대와 호흡하고 미래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영국의 과거 행위는 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비단 영국뿐 아니라 침탈을 자행했던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숙고해야 할 문제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