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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세 가지 포인트
    대중문화 2013. 1. 31. 05:27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책을 번역본으로 읽게 되었다. 우선, 책은 전체적 개괄 내용을 아우르며 일본인의 변천, 이룩 과정 등을 탐구하고 있지만, 서평에서는 책에서 다루는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주요 포인트를 다루고자 한다.

     

    1. 일본인과 공명

     책 p.148 에서 한 미국인 노부부의 질문에 시치헤이는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교와 민주주의가 들어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문화와 내부에 축적된 문화가 공통점을 가지고 어울리면 공명합니다. 공명하는 것은 수용되지만 공명하지 못하는 것은 수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와의 공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공명하는 문화가 없었거나 선교사가 일본을 몰라서 공명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공명이란 무엇인가? 상충되는 부분과 공통되는 부분이 절묘하게 조합되면서 양립하는 경우가 공명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아니면 공통관계가 규명된 부분을 받아들여 공존하는 것 또한, 공명의 다른 사례라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공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축적의 과정, 인내의 시일이 필요하다. 즉, 단기간에 거쳐 성립되는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공명은 의지가 발현되어야 성취되는 것이다. 지도부 혹은 집행자의 의욕이 없는 한, 구성원의 자구 노력에 공명을 이룩하는 것은 일정부분 한계에 봉착할 공산이 크다. 특히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 된 현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리스도교는 이용하면서도 배척하는 양자의 길을 취했다. 공명의 성립 과정에서 일본은 이해득실을 검토했으며 자국의 독특한 문화와 결부되면서 특정 공명 현상을 재촉시켰다. 한반도와 공명 현상이 상이한 것 역시, 단일한 원인이 아닌 복합적 원인에 기인한 것이다. 지리적 위치와 구조, 문화적 습성 등이 교차하면서 한반도는 한반도 만의, 일본은 일본 만의 공명 현상을 이룩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전후 시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한국 그리스도는 외연상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낸다. 완전한 공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은 그리스도와 불교가 공존하는 사회임에 분명하다. 이와는 다르게, 일본 그리스도는 공존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종교의 하부 구조에 불과하다. 이것은 철저히 기나긴 역사와 문화적 성립 등 복합적 요인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원인으로 귀결시켜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일일이 사례를 여기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일본은 바쿠후 시대를 거쳐오며 지도부에 의해 특정 공명 현상이 더욱 재촉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2. 시게토키의 의의

     시게토키(p.174 주석 참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설파했다. "아내감은 심성을 잘 보고, 한 사람으로 정해야 한다. 일생 동안 여성을 모르고 지낼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을 범하는 것만으로도 여지없이 불심에 반하는 것이다. 얼마나 죄가 깊을 것인가."(p.175) "여자라고 해서 경시하지 말라. 어리다고 해서 경시하지 말라. 나이가 많고 적고는 평가 기준이 아니다. 마음이 정직하고 군자를 존경하며 민중을 제일로 생각하는 인물이야말로 성인이다.", "좋은 일은 평판을 해도 좋지만 나쁜 일은 감추어야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창피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조금도 고명하지 못하다.(p.178)

     

     인용이 좀 길어질 것 같다. 다음은 책 p.182에 소개된 시게토키 훈계 내용이다. "상대가 누구든 먼저 길을 양보하라, 복장은 수수하게 하고 큰 칼이나 눈에 띄는 갑옷과 투구를 갖지 마라, 자신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들어라, 알고 있는 것이라도 일단 들어라,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시게토기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케토키의 생각은 페미니즘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대가 아닌, 1200년대 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즉, 페미니즘의 선구격이라는 것이다. 둘째, 우월주의에서 탈피하고 평등주의와 인본주의의 결합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셋째, 현실과 더불어 미래 인류를 염려했다는 것이다. 현 인류는 물론이거니와 설파 내용이 후대에게 지속적으로 전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미래의 인류를 염두해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시게토기의 설파는 사무라이 교훈으로 이어져 일본 무사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 다섯째, 일천한 책임 의식이 아닌 귀족으로서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행실로 나타낸 것이다.

     

    3. 일본인과 합리주의

     p.373 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쇄국 시대에도 남만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독교를 철저히 배제하는 가운데에서도 합리성에 근거하여 종교와 사상을 받아들인다. 또한 경제 생산성에 의거하여 노예제보다는 청작 청부제를 도입한다.(p.259) 합리주의는 이른바 자력, 집단, 능력주의와 결합되면서 일본인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p.256)

     

     아집으로 불편을 초래하기 보다는 합리성에 근거하여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일 수 있다. 과거엔 아집과 독선에 합리주의가 함몰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최근엔 자분주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화되면서 대의보다는 합리성에 근거를 두는 구성원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합리주의는 일본인만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이제는 전인류, 보편적 특성으로 진화되고 있으며 일본인과 합리성의 특별함은 과거 사례에 국한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즉 현대에까지 일본 위에 합리성이라는 색칠을 덧씌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살펴볼 점은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과거에도 일본은 합리성을 근거로 판단,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다. 서구를 모두 배척해야된다는 절대적 아집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의 정신을 곁들여 합리성을 표방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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