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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풍산부인과'가 없는 세상
    생각/대중문화 2013. 6. 7. 11:18

    2000년을 맞이 하기 전, 대한민국은 시트콤 전성기였다. 전성기의 포문을 연 대표주자는 SBS '순풍산부인과'였다. 당시 순풍산부인과는 SBS 8시 뉴스가 끝난 후 9시 무렵 방송됐는데, 타 방송사 9시 뉴스보다 시청률이 앞서 장안의 화제를 남겼다. 그때만 해도 9시 뉴스를 시트콤이 무찔렀다는 건 기이한 현상이었다.


    순풍산부인과가 선풍적 인기를 몰고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모티브로 따다가 자연스런 웃음으로 승화했다는 것이다. 개그나 오락 컨텐츠에서 억지 웃음을 제조하려 역량을 쥐어짜내다가 망한 게 한 둘이 아니다. 그것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기가 없었거니와 웃음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소재가 일반 대중과 괴리감이 있었다. 순풍산부인과는 주변에서 한번쯤 본듯한 인간의 특성을 웃음 소재로 삼아, 웃음 유발 요인의 괴리감을 상당부분 제거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우면서도 포복절도할 수 있는 웃음을 제조해냈다.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구축한 것도 한몫했다. 오 박사와 미달이, 박영규와 권오중, 오미선 등은 각자 웃음을 생성하는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오 박사는 흥분하는 모습에서, 미달이는 엉뚱하고 먹을거리만 찾는 모습에서, 박영규는 장인과 대결하며 자주 삐지는 모습에서 웃음 유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신선함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했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볼 수 있는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기와 신인 배우들의 발굴은 그 자체로 신선함이었다. 조폭 연기의 대가였던 오지명씨가 코미디 도전에 나선 것과, 카리스마를 내뿜던 박영규씨가 코믹 배우로 변신한 것은 시청자들에겐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이 밖에 송혜교, 김소연 등 신인 연기자들을 집중 발굴한 것도 같은 연장선상이다.

     

    아쉬운 건 순풍산부인과에 필적할 시트콤이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공중파에선 시트콤이 고사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흥행에서 참패를 이어갔다. MBC의 경우,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재미를 보는 듯 싶더니 '엄마를 부탁해'의 씁쓸한 시청률 성적표를 받아들이고 시트콤 조기종영을 택했다. 시트콤의 명가 SBS도 순풍산부인과 종영 이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다양한 시트콤을 내놓았지만 전작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시트콤 제작을 포기했다.

     

    공중파가 포기한 시트콤을 최근 케이블TV에서 실험중이다. CJ E&M의 tvN은 시트콤을 시리즈로 특화 편성해 시트콤의 명맥을 잇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CJ E&M의 전략은 공중파의 시트콤 포기 선택을 파고드는 틈새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청률과 흥행 면에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안타까운 건, 케이블과 위성 보급 가구수가 공중파 시청 가구수엔 못 미친다는 점이다. 공중파 시트콤이 실종됐다는 건, 그만큼 웃음을 갈구하여 크게 웃음을 내고 싶은 대중의 욕구를 해소할 공간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순풍산부인과'의 아련한 추억을 넘어 제2의 순풍 열풍을 몰고 올 공중파 시트콤의 탄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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