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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 영화 <야스쿠니>, ‘직시’의 실종과 그로 인한 예감(과제 제출)
    생각/영화 2018. 6. 30. 19:38


    역사를 직시한다는 건 안다는 것과 또 다른 논의의 범주다. 앎이 역사의 뭉치를 펼쳐 사실과 맥락을 아는 것이라면, 직시는 자기 성찰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역사적 사실을 안다는 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 어찌 보면 쉽고도 간편한 경우에 속할 수 있으나, 사실의 직시는 편협과 아집, 자기 관념에 빠진 나머지 생기는 오류를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부단한 작업 없이는 사실의 직시는 요원하며, 이로 인해서 역사적 사실을 조망하는 것 또한 입맛에 따라 왜곡을 부를 소지가 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결국 동시대인뿐 아니라 후대가 짊어야 할 몫이 됨은 물론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야스쿠니>는 관조적 입장에서 역사의 직시를 묻는다. 카메라는 개입을 주저한다. 벌어지는 상황을 따라갈 뿐이다. 상황의 장소는 야스쿠니신사다. 매년 815일 열리는 신사 참배를 앞두고 술자리를 갖은 세 중년 일본인이 일본의 과거 침략을 두고 얘기를 한다. 이들은 일본의 침략을 영국의 사례와 견준다. 영국은 대영박물관에서 약탈한 물건을 대놓고 전시하는데 일본은 그러진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일본은 해적을 흉내 낸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건 흡사 영국도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왜 일본만 문제 삼느냐는 태도인 것 같다. 영국도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우리가 한 짓이 못할 일이었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들의 말에선 침략의 행태에 대한 직시는 실상 결여된 거나 다를 바 없다. 직시를 위해선 실체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지, ‘그러나그리고같은 변명의 여지를 둘 접속사의 사용은 직시를 손쉽게 막는다. 영국이 했고, 일본도 그럴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엔 역사의 직시가 빠지고 그리고가 들어갔다. 독립적 개체로 진행되어야 할 판단에 영국을 끄집어와 과거 행위의 판단은 실종되고 말았다. 야스쿠니신사엔 78년 도조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이 합사됐다. 전범이 합사된 건 알지만 추모하는 뜻에서 참배를 하겠다는 주장엔 그러나가 들어가, 직시보단 추모에 방점이 두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배타성상생의 실종

     

    카메라는 신사 앞에서 일본군 복장을 한 반백의 노인을 비춘다. 노인은 신사에 합사된 이의 희생 위에 오늘의 일본이 있으며 은덕을 입고 산다고 외친다. 이를 한걸음 더 들어가 살피면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태평양 전쟁에서 희생한 병사가 그 밑바탕이 되어줬을 것이란 시각이 담겨있는 셈이다. 희생에서 싹튼 일본의 성장에 노인은 집중했지만 그 희생의 과정에서 비롯된 참극은 좀처럼 바라보질 않았다. 사실의 선택과 이로 인한 역사적 아집은 역사의 직시를 봉쇄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현대에 다시 불러일으키는 경로가 된다.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노인의 그 외침은 일본과 일본인에 중심을 둔 외눈박이 역사인식이다.

     

    신사엔 난징대학살을 부정한다는 서명 운동도 열렸다. 일본의 전쟁 행위는 침략이 아니라 자국의 보호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미국인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찬성한다는 주장을 펼치다 성조기를 신사에 반입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대목은 일장기가 아니면 용납을 않겠다는 서슬 퍼런 배타성이 보인다. 이 같은 역사 인식은 토론과 숙의가 실종된 자리에 분열과 갈등을 고스란히 야기하는 단초가 된다. 신사엔 합사를 원하지 않는 조선인과 대만인, 심지어 일본군 유가족이 있으나 이들의 요구는 직시되지 않은 역사 인식에 한 줌 가루가 되어 날릴 뿐이다. 결국 합의와 상생을 통한 미래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과거 가운데 유가족은 마음의 생채기를 반복해서 내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 인식의 편협함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직시한다는 건 나눔의 과정이다. 왜곡된 과거사를 다시 꺼내 직시하는 건 내면의 혼란과 아픔을 초래한다. 예컨대 강고한 분단 체제 안에서 좌우 이데올로기로 빚어진 희생을 직시한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또 현대사의 굴곡을 따라가다 은폐된 역사를 다시 들춰낸다는 건 마음만으로 따라갈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직시를 통해 누군가는 회생의 과정을 밟는다. 나의 시각과 생각의 성찰과 고통이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어줄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직시는 그러한 과정이다. 일본이 난징대학살, 종군위안부, 731부대와 같은 과오를 직시하는 데 나선다면 이미 할퀴어진 피해자의 마음이 정상으로 복구되진 않을지라도 잠시의 평안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이 같은 과정이 결여된 채로 매해 일본의 각료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선다는 건, 특히 야스쿠니엔 전범자가 합사된 상황에서 이는 피해자의 마음을 헤집어놓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직시를 한다는 건 역사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쉬운 여정이 아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신사참배에 동의하거나 과거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여론이 소수가 아닌데, 더구나 국가 권력을 틀어쥔 자민당이 역사를 직시하는 데 있어서 선뜻 나설 리 만무하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 또한 직시에서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자국의 편의와 득실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직시는 꿈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역사는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패색이 짙어지던 1943, 일본군에 참전하여 다음해 전사한 한 병사의 유족이 합사를 반대하며 죽어서도 혼이 국가 소유가 됐다는 말은 이어지는 역사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소 비현실처럼 비춰지는 가정이지만 일본과 야스쿠니신사가 이들 유가족의 외침을 받아들어 역사를 직시하고 진일보한 조치를 취했다면 어쨌을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으며 자못 괴로워하던 유족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순 있지 않았을까. 자존과 명예라는 이유로 과거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덧난 상처를 방치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덧난 상처는 다시 사회 내 소수가 되어 치유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횡행했던 전체주의적 시각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직시는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한 밑돌이다. 역사를 회피하는 것은 역사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이해관계와 명예가 그 비중에 일부를 차지한 탓이다. 그런 외피를 거둬버리고, 속살을 바라본다면 피해자와 마주를 하고 상생을 논할 수 있게 된다. 갈등과 반목보다는 상생의 실익이 사회와 인류 사회를 위해서 크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가 바라보던 야스쿠니도의 장인, 92세 할아버지는 칼을 묵묵히 만들더니 칼은 벼려진다. 벼려진 칼들은 이제 어디에 쓰일 것인가. 직시 없는 역사엔 과거 상흔이 되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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