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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회복의 몫’
    생각/단상 2018. 6. 30. 19:42

    이데올로기가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기능할 때 인간성은 자취를 잃어버린다. 연대와 신뢰, 신념은 파괴되고, 반목과 질시, 억압이 똬리를 튼다. 대의란 명분으로 개별자의 외침은 소거된다. 그로 인한 상처는 마음 한편에 눌어붙어 만지기만 하면 핏물이 나올 것 같은 흉터가 된다. 한 세상에선 소멸되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 상흔을 동반한다. 거기엔 치유가 아닌, 잠깐 아무는 회복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회복은 피해자만으로 이뤄질 게 아니었다. 지난 331(), 임흥순 감독의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전시가 비추는 대상은 네 할머니다. 이 중 정정화(1900~1991) 할머니와 김동일(1932~2017) 할머니는 유명을 달리했고, 고계연(1932~) 할머니와 이정숙(1944~) 할머니는 생의 궤적을 이어가고 있다. 할머니들 모두 출생연도는 다르지만 현대사의 풍파를 빗겨가진 못했다. 정 할머니는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는 독립운동가였고, 김 할머니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을 경험했으며, 고 할머니는 1950625일 동족산장의 비극을 거쳤고, 이 할머니는 6.25 전쟁과 베트남전을 목도했다.


    현대사의 굴곡을 지나면서 할머니들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전시실 5’<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선 내벽 영상을 통해 지리산 토벌 당시 죽음의 갈림길에서 목숨은 건졌으나 영하의 날씨 가운데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라야 했던 김동일 할머니의 삶이 채록된다. 이데올로기가 밀어 오른 역사는 그렇게 누군가의 상실을 낳았고, 상실은 시대와 교유하는 이의 것이 됐다. 영상의 채록이 정정화 할머니의 손녀와 남과 북 출신의 세 여성으로 이뤄진 점은 과거의 상실이 동시대와 단절된 게 아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과거라는 시를 써보자>에서 네 할머니들의 소품은 그런 인식을 강화한다. 김동일 할머니의 형형색색 뜨개 소품, 고계연 할머니가 93년 받은 낚시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분절적 인식을 깨뜨리는 매개체다. 결국엔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들의 상흔은 동시대인과 무관한 것인가? 사람은 끝내 떠나지만 사람의 자취는 남는다. 상흔의 기억은 우리네 자취와 분리된 게 아니다. 인간성보다 이데올로기에 우위를 두는 비극은 한국 사회가 마주한 그림자의 일부다. 이로 인한 상흔은 다시금 재현되고, 이어진다.


    그래서 명확해지는 게 있다. 할머니들의 상실감은 할머니들만으로 회복할 수 없다. 상흔을 인식·공유하고, 기억할 때만이 연대체가 형성되고, 회복의 매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전은 이를 위한 공간이었다. 또한 그것이 역사를 학습하는 이유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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